[조효제] ‘우리 모두 난민의 후예’ > 회원칼럼·언론보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회원칼럼·언론보도

[조효제] ‘우리 모두 난민의 후예’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9-22 22:01 조회32,366회 댓글0건

본문

난민을 받아들이는 상위 10개국 중 이른바 선진국은 독일밖에 없다. 유대인 난민 문제를 풀기 위해 1938년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미국 등 32개국이 참여했지만 자국에 할당된 수보다 더 많은 난민을 수용한 나라는 개도국인 도미니카공화국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나도 어릴 때 집안 어른들로부터 6·25 때 피난살이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다음달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역시 난민 스토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 우리 모두 난민의 후예가 아니던가.


공자, 모세, 마르크스, 달라이 라마,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니체, 쇼팽.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모두 난민이나 망명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점이다. 난민 역사는 곧 인류 역사다. 자기 땅에서 살기 어려워 타지로 옮겨 다닌, 자의 반 타의 반 인구 이동의 역사가 호모사피엔스의 진화기 자체다. 터키 해변에 떠내려온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어린아이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 한 장에 많은 이들의 마음이 먹먹해진 것도 어쩌면 우리 인간의 무의식에 원형질처럼 새겨져 있는 유민(流民)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지닌 난민 현상이 국제사회의 의제로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사이, 민족주의의 발흥 그리고 국민국가 체제의 보편화가 진행되면서 난민이 국제적 이슈가 되었다. 지난 백년 사이 국제사회에서 난민에 관해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났다. 하나는 제도화 경향. 국제연맹은 1921년 역사상 최초로 난민 최고대표실을 신설한다.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과 내전으로 약 80만에서 15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레닌이 이들의 시민권을 박탈했으므로 수많은 무국적자들이 유럽 각지를 떠돌게 된 것이 새로운 기구 창설의 동기가 되었다. 북극 탐험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프리드쇼프 난센이 초대 대표로 취임하여 무국적자들에게 국제 여행증명서, 이른바 ‘난센 여권’을 발급해 주었다. 45만명이 이 조처의 혜택을 받았다. 샤갈, 나보코프, 라흐마니노프, 스트라빈스키도 난센 여권을 품에 지니고 살았다. 그 뒤 여러 국제기구에서 난민을 다루다가 1951년 유엔에서 난민지위협약이 제정된 후 오늘날의 유엔 난민 최고대표실이 결성되었다.


또 하나는 ‘난민’ 개념의 확대다. 알다시피 난민협약에 나와 있는 난민 규정은 엄격하다. 자기 나라를 벗어나 있어야 하고, 박해를 받았으며, 자국으로 돌아갔을 때 박해를 받을 근거 있는 우려가 있고,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소속, 정치적 견해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 사회, 경제적 조건이 변하여 원래의 난민 개념은 아니지만 어쨌든 여러 이유로 삶의 터전을 (반)강제로 떠날 수밖에 없이 내몰린 사람들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자국 내에서 내전이나 기근으로 삶의 뿌리가 뽑혀 고향을 떠나게 된 사람도 크게 늘었다. 요즘은 공식적 난민과 비공식적 난민을 뭉뚱그려 ‘강제 이재민’(Forcibly Displaced Persons)이라고 부르곤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이 표현을 사용하는 빈도가 높다. 최근에는 성소수자 정체성에 의한 탄압 혹은 여성 생식기 절제를 피해 타국에 비호 신청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유엔 추산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전세계적으로 약 5960만명의 이재민이 있다. 이 중 약 3분의 1이 국제 이재민(공식적 난민 포함)이고, 나머지는 국내 이재민이다.


지난 30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난민이 가장 많이 발생했지만 최근 시리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요즘 유럽에서 시리아 난민 수용을 놓고 논란이 많지만 실제로는 국제 이재민 중 86% 이상이 개도국에 수용되어 있다. 터키, 파키스탄, 요르단, 레바논, 이란, 케냐, 차드, 중국 등이다. 이 중엔 자기들도 어려운 나라가 많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상위 10개국 중 이른바 선진국은 독일뿐이다. 선진국들의 이기적인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나치에 의해 추방된 유대인 난민 문제를 풀기 위해 1938년 프랑스 에비앙에서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때 미국을 위시해 32개국이 참여했지만 자국에 할당된 수보다 더 많은 난민을 수용한 나라는 개도국인 도미니카공화국밖에 없다.


난민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발생 원인을 알아야 한다. 국가간 전쟁과 내전이 가장 큰 원인을 차지한다. 국가 내부의 모순과 국제적 외부개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군사비 지출이 높고 무기 거래가 활발할수록 난민이 늘어날 개연성이 커진다. 대인지뢰 매설 지역이 늘어나면 농경지가 줄면서 강제 이재민들이 급증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캄보디아의 지뢰를 모두 제거하면 농업생산량이 당장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치도 있다. 빈곤 문제도 난민을 발생시키는 요인이다. 토지개혁이 안 되어 소농들의 삶이 팍팍한 나라, 국제 농산물 대기업들이 토지를 대거 매입한 나라, 정치적 문제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 식량과 의약품의 금수 조처를 당한 나라에서도 난민이 늘어난다. 인권침해가 심한 곳에서 난민이 증가하며, 정권이 바뀐 후 이전 정권 지지자들을 박해하는 나라에서도 난민이 발생하곤 한다. 민족, 종교, 정치적 이유로 소수집단을 박해하는 국가도 고위험군에 속한다. 세계 40%의 국가들이 5개 이상 민족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 역시 주요 난민 발생국이다. 지난달 연재한 글에서 다룬 기후변화도 국제 이재민을 양산하는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신문, 2015년 9월 15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08965.html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Segyo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TEL. 02-3143-2902 FAX. 02-3143-2903 E-Mail. segyo@segyo.org
04004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로12길 7 (서교동 475-34) 창비서교빌딩 2층 (사)세교연구소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