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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아파트-건축무한육면각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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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10-06 15:37 조회31,4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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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이상·건축무한육면각체 : AU MAGASIN DE NOUVEAUTES)

`건축-육면각체`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사물은 사각형의 입방체를 무수히 내부에 끌어안고 있는 3차원 현실의 건축물이다. 한 시인은 20세기 초 자기 동네에 들어온 이 `새로운 상점(MAGASIN DE NOUVEAUTES)`을 보자마자 이것이 `도시`라는 새로운 공간의 랜드마크가 될 것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가 본 사물은 영화 `암살`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무대,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현 신세계백화점)이었다.

시인이 이 사물의 외양을 과장되게 묘사하고 있는 건 아니다. 무한 반복되는 육면각체라고 말할 때, 그가 `백화점` `내부`에서 본 것은 소비적 욕망의 무한 반복과 탕진의 메커니즘이었으며, 이 욕망의 끝에는 `현대`로 불리는 새로운 시대가 필연적으로 배태할 공허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 1930년대 `모던보이`가 요즘 태어났다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 `사각형위에사각형위에사각형위에사각형위에사각형` 또는 `사각형옆에사각형옆에사각형옆에사각형옆에사각형`. 당시 `건축무한육면각체`라 봐야 내부에 많은 사각형들을 거느리고 있는 백화점이 전부였겠지만, 지금 서울이란 도시는 외형적으로 이미 무수한 육면각체의 거대한 레고블록이다. `아파트`는 도시에 다른 기하학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각형 제국주의, 진정한 `건축무한육면각체`다.

20세기 초 시인이 주목한 백화점 육면각체가 재화의 소비와 관련된 박래품이었던 것과는 달리, 아파트는 `부동산`(`움직이지 않는 재화`란 뜻이다)이라는 형식을 통해 욕망을 `깔고 앉아` 있다. 이 사물은 재화의 탕진을 지연시키며 소비보다는 축적과 재생산의 욕망과 관계한다. 이 육면각체 블록에 일단 들어가면 20평의 입방체를 30평으로 40평으로, 1층을 5층으로 `로열층`으로 계속 넓히고 높이려는 욕망에 시달린다. 하나만 더, 지방의 것은 서울로, 강북의 것은 강남의 것으로, 옛것은 부수고 재건축으로, 자기 것은 다음 세대에 물려주거나 그 몫으로 하나 더 확보해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5년 10월 2일)


기사 전문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94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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