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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지방분권을 말하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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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2-24 16:19 조회31,3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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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에너지 반란’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20세기 말에 원자력 전기를 대량으로 공급하던 전력회사를 몰아내고 자기 힘으로 전력회사를 세워서 원자력이 섞이지 않은 전기를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 이 회사는 독일 전역에 퍼져 있는 16만명의 고객에게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에너지 반란 마을은 독일 남서쪽 끝에 있는 셰나우다. 주민은 3000명이 채 안된다. 이렇게 작은 마을 주민들이 거대 전력회사를 몰아내는 일을 이룩한 것이다. 당시에 독일에서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로 평가받은 이 ‘반란’이 성공한 배경은 바로 제대로 작동하는 지방분권제에 있었다.


독일에는 큰 도시뿐만 아니라 1000명이 사는 마을에도 의회가 있다. 의원의 수는 인구수에 따라 달라진다. 작은 마을은 8명, 대도시는 거의 100명 가까이 되는 곳도 있다. 셰나우는 인구가 2000명이 넘기 때문에 의원 수가 12명이다. 의원들은 대부분 급여를 받지 않는다. 회의에 참가할 경우 여비와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을 뿐이다. 그래서 작은 마을의 의원은 한 달에 몇만원 정도만 받기도 한다.


독일 지방의회의 의원은 직접선거로 뽑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정당이나 무당파연합의 명부를 통해서 당선된다. 주민들은 이들 당이나 연합에 투표한다. 우리나라 비례민주주의연대에서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아니고, 완전한 비례대표제다. 사람을 보고 투표하는 것도 아니고 투표일이 일요일인데도 투표율이 낮지 않다. 그리고 급여가 없어도 의원들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지방분권제가 잘 작동하는 것이다. 


독일에서 전력시장이 자유화되기 전까지 전기 공급 책무는 지방자치단체에 있었다. 그런데 셰나우같이 자체 전기공급 능력이 없는 마을은 전력회사에 일정기간 동안 공급위탁을 하는 방식으로 이 책무를 완수했다. 셰나우 주민들은 외부 전력회사의 전력공급 위탁계약이 끝나갈 때 계약연장 시도를 막아내는 운동을 시작으로 마지막에 자체 전력회사를 설립함으로써 반란을 완수했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마을의회에서는 처음에 계약연장을 승인했다. 그러자 주민들이 헌법에 보장된 주민투표를 신청하여 계약연장을 철회시켰고, 여세를 몰아 전력회사를 설립했다. 그렇다고 바로 마을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을의회에서 전력공급 위탁계약 승인을 받아야 했다. 의회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위탁계약을 승인해주었다. 그러자 반대 측에서 다시 주민투표를 신청했고, 여기서도 겨우 승리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원자력 없는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통령 탄핵이 가시거리로 다가옴에 따라, 예비 대선주자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이들은 거의 모두 지방분권 강화를 이야기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수장들도 지방분권형 개헌을 주장한다. 자치경찰권, 사법권, 자치 입법권, 자치 재정권, 검사장 직선제 같은 말들이 쏟아져나온다. 모두 대통령이 된 다음에 개헌을 해서 실현하겠다고 한다. (후략)



이필렬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경향신문, 2017년 2월 23일)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2232112015&code=990100#csidxb162102d2534758ba0ef2d84e557542 onebyone.gif?action_id=b162102d2534758ba0ef2d84e557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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