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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다케시] 무명으로 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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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4-14 14:00 조회31,5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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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년 전 4월3일 새벽, 한라산 중턱의 여러 오름에서 일제히 봉화가 올랐다.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도민들이 일으킨 봉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정부 차원에서 ‘제주4·3사건’이라고 부르고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오는 이 사건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아직 통일된 견해는 없다. 흔히 ‘제주4·3’이라고만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지만, 그 ‘중립적인’ 표현에는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자세도 엿보인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 출신의 역사학자 양정심이 ‘제주4·3’이라는 명칭의 한계를 지적하며, 4·3에 대한 인식을 ‘항쟁’의 영역으로 확장할 필요성을 주장한 것은 중요하다. 그는 2008년에 펴낸 저서에서 정부의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대해 그 의의를 충분히 평가하면서도, 민간인 희생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억울한 양민들이 죽어갔다는 것을 폭로하는 데 그쳤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게 그려지는 ‘수난의 역사’가 결국 “가해자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즉, 수난이라는 서사의 틀을 통해 그려지는 것은 결국 가해자들의 모습뿐, 피해를 입은 이들의 구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난 서사는 피해자 중심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거기서 이야기되는 피해 사실들은 오로지 가해자의 폭력성을 입증하기 위한 사례에 불과하다. 이때, 폭력을 통해 피해자라는 위치에 강제적으로 놓이게 된 이들은 다시 피해자의 위치에 고정된다. 이 ‘피해자의 피해자화’는 그들이 지녔을 다양한 가능성들을 봉인한다.


이런 피해자화에 대한 저항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은 1959년에 일본 규슈 북부의 탄광지대에서 창간된 <무명통신>(無名通信)이라는 간행물이다. 당시 그 지역에서 활동하던 시인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 중심으로 발간된 이 잡지의 성격은 창간사 ‘도덕 귀신을 퇴치하자’에 잘 드러나 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우리는 여자에게 덮어씌워진 이름을 반납하겠습니다. 무명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 글에서 먼저 비판 대상이 되는 것은 가부장제지만, 그 가부장제 속에서 형성된 ‘피해자의 자유’, 즉 아무도 해치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도덕적 안락함을 여성들이 버리지 않는 것이 가부장제가 재생산되는 원인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런 성찰 뒤에 이 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렇게 보면, 과거 가부장제를 만든 권력을 뒤엎기 위해서 피해자로서 모이는 것만으로는 여자들의 근본적인 해방은 이룩할 수 없는 셈입니다. 자신을 가두는 껍데기를 우리 손으로 깨는 것. 그것은 피해자가 권력에 대한 가해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우연히 알게 된 동무들 속에서 이것을 하는 것 외에 다른 자리는 없습니다.” 주어진 이름을 반납하고 무명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새로운 이름을 짓기 위한 첫걸음이며, 그것은 권력에 대한 가해자가 될 때 가능해진다.(후략)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한겨레, 2017년 4월 2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8990.html#csidxa0258ec4ee1c807a60ebb4defa16b89 onebyone.gif?action_id=a0258ec4ee1c807a60ebb4defa16b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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