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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인권의 시각으로 보는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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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7-08-23 09:56 조회35,0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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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7846.html#csidxe3b56f3ab98c383bba4298447b55376


다음 내용 중 공통점이 무엇일까? 살충제 달걀, 사드 환경영향평가, 몰카 피해, 핵무기, 국정원 댓글부대, 대륙간탄도미사일, 문케어, 자주포 사고, 핵발전 공론화, 통신비 할인, 용가리 과자…. 이 모든 사안의 공통분모는 과학기술이다. 오늘날 공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있어 과학기술이 개입되지 않은 사례를 찾아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임명을 둘러싼 논란은 과학과 기술이 현대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과학기술이 인권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이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선 역사적 배경부터 소개해 보자. 2차대전 후 유엔에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 중의 하나가 세계인권선언을 제정하는 것이었다. 같은 시기에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일련의 나치 전범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치 의사들의 재판이 주목을 받았다. 우생학적 살인, 생체 실험, 가스실 처형 등 의과학 지식을 악용한 반인도적 범죄의 적나라한 실상이 전세계 언론에 보도되자 사람들은 경악하였다. 이를 접한 인권선언문 집필 위원들 역시 과학기술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유네스코의 줄리언 헉슬리 사무총장은 공교롭게도 생물학자이자 작가로 명성이 높은 사람이었다. 세계인권선언 제정에 유네스코의 견해를 반영해야 한다고 믿었던 헉슬리는 과학기술인을 포함한 각계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제안서를 만들어 인권선언 집필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런 연유로 세계인권선언과 그 이후의 국제인권규약에 과학기술과 관련된 조항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과학기술 인권은 자연계열에만 해당되는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일반대중, 과학기술계, 그리고 국가라는 세 기둥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에 비유할 수 있다. 첫째 기둥인 일반대중을 보자. 모든 사람은 넓은 의미에서의 모든 문화적 생활에 참여할 권리가 있으며, 과학 진보의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 이때 ‘과학’은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라틴어의 ‘스키엔티아’가 뜻하는 학문의 전반을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초기엔 일반인들이 과학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지만, 나중에는 ‘향유’할 수 있다는 식으로 표현이 강화되었다.

국제 무대에서 인권은 흔히 보편적이고 격식 있는 법의 언어로 작성되곤 한다. 하지만 점잖은 표현 뒤에 숨어 있는 깊은 차원에서의 의미를 잘 짚어야만 인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외국어를 구사하고 국제 경험이 있지만 사회를 보는 인식이 철저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제 인권담론을 활용하면 인권을 형식적으로, 그리고 법이나 외교의 지렛대로만 오해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과학 진보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향유’한다는 말의 행간에 숨어 있는 뜻도 마찬가지다. 이 말에는 근본적 차원에서 인권의 평등주의적인 지향이 깔려 있다. 과학기술이 권력자, 엘리트, 지배계층의 전유물이 되어선 안 되고 인종, 국적, 성별, 계급, 지위를 떠나 말 그대로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혜택이 가도록 해야 한다는 근본 원칙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복한 일부 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 반인권적이라는 사실을 똑바로 볼 필요가 있다. 돈 있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혜택을 더 잘 누릴 수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냐고 은연중에 생각한다면 그런 식의 사고방식 자체가 금전만능의 반인권적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권을 규정한 각종 국제 문헌의 진짜 의미를 역사적·사회적·구조적으로 독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인권의 정신임을 잊어선 안 된다.

둘째 기둥인 과학기술계를 보자. 모든 과학기술인은 과학과 문화의 보존, 발전, 확산을 담당하는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은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주체임과 동시에 막중한 책무를 지닌 전문인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지닌다. 국제인권규약은 과학자들이 과학 연구와 창조적 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자유를 맘껏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과학기술인들은 전문가이자 시민으로서 의견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결사와 집회를 백퍼센트 보장받아야 한다. 황우석 사태 당시 젊은 과학자들이 용기 있게 진실을 밝혔던 일은 과학기술인의 자유와 권리의 행사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또한 과학기술인에게는 국제적 교류와 접촉을 할 수 있는 자유 역시 중요한 인권이다. 과학은 흔히 보편적 진리 추구의 이상형에 근접한 패러다임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것은 과학기술이 초국적이고 공동선을 지향하는 활동임을 암시한다. 오철우 <한겨레> 기자가 지적하듯 과학계에서 애국과 경쟁의 목소리만 들린다면 그런 과학계는 과학의 본령에서 한참 벗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기술인이 지켜야 할 책무 또한 중요하다. 연구 활동이 파괴가 아닌 건설, 갈등이 아닌 평화, 일부가 아닌 만인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기본철학을 지녀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뜻있는 과학자들이 적지 않겠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과학계의 모습은 철저하게 도구적 이성으로서의 과학기술뿐이다. 연구 성과 높이기, 국책사업 따오기,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명망 있는 학술지에 이름 올리기를 최고의 가치로 떠받드는 풍토가 우리 과학기술계의 일상적 풍경이 아닌가.

그러나 모든 과학이 이렇게 묻지마식 실적주의 과학은 아니다. 지난 6월 <사이언스>에 중요한 논문 한 편이 실렸다.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해산물에의 의지”라는 이 논문은 동남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 해산물을 수확·가공·포장하는 노동자들이 겪는 노예 상황을 개탄하면서 해양 과학자들이 해산물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와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우리 과학기술인들도, 굳이 국내 정치적 의미에서의 진보-보수 구분을 떠나,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직업윤리에 입각해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최근 번역된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를 모든 과학기술 전공자들이 읽고 새겨야 할 것이다.
셋째 기둥인 국가를 보자. 모든 시민이 기본적 차원에서 과학 진보의 결과를 고루 누릴 수 있도록 최대한 정책적 배려를 하는 것에서 과학정책이 출발해야 한다. 또

한 과학기술인을 국가가 원하는 대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 인력풀 정도로 간주하는 시각을 버려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한 정책의 결과로서 국익이 증진된다고 봐야지, 그것의 반대는 곤란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가 차원의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고위 과학기술인, 과학기술 부문 기업인, 그리고 과학기술 전문 관료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 현대국가의 복잡한 정책 과정 속에서 공익을 가장하면서도 매끄럽게 사익 추구를 할 줄 알고, 풍부한 인맥과 산-학-언-군-정을 잇는 네트워크를 통한 로비에 익숙한 구태 인물들에게 과학기술 정책을 맡기면 엘리트 과학, 반인권적 과학, 반평화적 과학의 적폐는 절대 없어질 수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 본다면, 국가의 과학기술 정책을 인권적으로 정립하기 위한 가장 깊은 차원에서의 안전장치는 민주주의의 심화 그리고 평화적이고 탈상품화된 사회 기풍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이 갖춰지지 않으면 어떤 국가, 어떤 체제에서도 과학은 인간의 선익을 위한 것이 되지 못한다. 소련의 리센코 사건, 미국의 핵무기 사용을 기억하면 당장 답이 나온다. (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신문, 2018년 8월 22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7846.html#csidxe3b56f3ab98c383bba4298447b55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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