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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미투 운동과 지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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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04-17 10:02 조회38,14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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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뭘 가지고 ‘지천명’이라고 하는지 아세요?”

몇해 전 나이 든 선생님 한분이 이렇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공자가 50세에 이르러 천명(天命)을 알게 됐다는 뻔한 말이 답일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답을 맞히기도 쉽지 않은 법. 모두가 궁금해하면서 답을 재촉하자, “남자가 50세가 넘으면 자기가 천명인 줄 알고 아무 데서나 설쳐대는 것이 지천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자 모두 자기 주변에서 지천명의 새로운 풀이에 딱 들어맞는 한두명쯤은 알고 있다는 듯 탄성인지 탄식인지 알 수 없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덧붙이면 지천명의 새로운 풀이를 한 분은 남성이었다. 그 자리에는 50대 남성들도 여럿 있었는데 그들 역시 씁쓸해하면서도 자신들 또래가 그런 행태를 종종 보인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한동안 잊고 있던 이 이야기가 다시 생각난 것은 올해 들어 시작된 미투 운동 때문이다. 조그마한 권력만 쥐고 있어도 내가 하늘인 듯 군림하며 여성과 약자들을 성적으로 희롱해온 지천명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성폭력에 대한 세대별 감수성이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여러 계기를 통해 확인돼오던 세대간의 인식차와 갈등이 미투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중년 이상의 남성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시간 동안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고, 관행 비슷하게 이뤄져온 여러가지 일들이 성폭력이나 성희롱이란 이름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를 더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렇지만 ‘명백한 강간은 문제지만 저 정도면 성폭력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으냐’ ‘피해자 여성들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으냐’ ‘이렇게 일일이 문제를 삼으면 어디 남녀간에 연애가 가능하겠느냐’는 말을 조심스레 내비치는 나이 든 남성들에 대해 젊은 세대, 특히 젊은 여성들의 시각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그들 사이에는 자신의 나이 정도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안다는 생각과 자기가 천명인 줄 알고 설친다고 바라보는 시각만큼의 차이가 존재한다. (후략)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양학부 교수

(농민신문, 2018년 4월 11일)


원문보기: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FRE/288770/view 

댓글목록

유희석님의 댓글

유희석 작성일

백영경 회원의 칼럼, 잘 읽었습니다. 그 '지천명'의 50대를 사는 남성으로서 공자님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군요. 우리 사회에 "자기가 천명인 줄 알고 아무 데서나 설쳐대는" 사람들은 가지각색이고 30줄에 천명 행세하는 대기업 오너일가의 여성도 있지요. 아무튼 미투운동 자체는 단기적 싸움---어떤 면에서는 장기적인 싸움---이고, 그  성패의 상당 부분도 남성들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싸움의 당사자인 여성들도 세심하게 헤아리면서 직시할 필요가 있지 싶습니다.  일단 문제 있는 (힘센) 남자들을 조지는 건 열심히하면서  말이지요. 회원 칼럼에는 아무도 댓글을 안 달지만 미투운동은 시대의 화두여서 한마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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