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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듣는 귀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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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10-30 09:25 조회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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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유명 시인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시에서 단풍을 화냥기 있는 여자에 비유해 논란이 일었다. “저년이 아무리 예쁘게 단장을 하고 치맛자락을 살랑거리며 화냥기를 드러내 보여도 절대로 거들떠보지 말아라. 저년은 지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화냥기라는 말에는 여성혐오가 내포돼 있고 시 자체도 여성을 비하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여기에 대해 시인은 시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반응이며 독서량이 부족한 사람들의 난독증이라고 반박했다.

사실 이런 논란은 매우 낯익다.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여성을 높이거나 낮추는 비유 방식을 사용해 그 비유가 여성비하냐 아니냐 하는 논란을 낳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몇년 전 한 철학자가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문제에 대해 논평했던 일이 생각난다. 당시 그는 논평 제목을 ‘설악산, 여신으로 남을 것인가 매춘부로 만들 것인가’라고 해서 문제가 됐다. 이런 비유에 분노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도대체가 글쟁이들은 여성의 성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이 끝없이 반복돼왔다.

이처럼 여성을 성녀 아니면 창녀로 구분하는 이분법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런 비유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들 입장에서는 최근 사회 분위기가 당혹스러울 것이다. 요즘은 여성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져 일반인들도 일상 속에서 여성혐오적인 발언에 대해 지적받고 심지어 사과해야 할 일도 생겨서다. 여성을 비하할 의도 없이 단순한 비유였을 뿐이라고 나름 진정을 담아 변명을 해봐도 통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분들도 있다. ‘어디 무서워서 말이나 하겠냐, 이래서 어디 문학이 남아나겠냐’ 하는 말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예전에는 괜찮았던 말들이 모두 말썽이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예전에는 여성을 찬양하거나 비하하는 그 말이 오가는 자리에 여성들이 함께 주인공으로 있지 않았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들 역시 오가는 그 말들을 모두 듣고 함께 말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더이상 말을 알아듣는 꽃이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존재다. 그러니 자신들을 제멋대로 비유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반발할 수밖에.

이는 단지 여성에게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청소년부터 여러 사회적 소수자에 이르기까지 과거에는 공론이 오가는 자리에 끼지 못했던 모두의 이야기다. (후략)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눙민신문, 2018년 10월 24일)

원문 보기: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FRE/300590/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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