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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수] 김군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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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3-21 13:41 조회27,2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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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영상자료원 기획전에서 강상우 감독의 영화 <김군>을 봤다. ‘광주’를 다룬 다큐멘터리로,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아직 정식 개봉 전이라(5월 개봉 예정) 서툰 소개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한 장의 흑백사진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광주항쟁 때 무장한 시민군의 모습이다.(우리는 이들이 왜 무장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알고 있다.) 총이 장착된 가스차 위에서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는 모습인데 눈길이 맵다.(증언에도 나오지만 다들 사진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차에는 ‘전두환 죽여라’라고 구호가 적혀 있다. 영화 <김군>은 이 인물을 찾는 이야기다.

 

영화가 지만원이라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데서 이유가 드러난다. 사진의 젊은이는 지만원이 북한군 ‘광수 1호’로 지목한 이였던 것이다. 말을 옮기기도 무참하지만 1980년 5월 600여명의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로 잠입해 ‘무장 폭동’을 주도했는데, 평양에서 열린 5·18 30돌 기념식에 참석한 북한 인사들 중에서 당시 ‘시민군’과 동일한 인물 세 사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안면 인식 프로그램’ 운운하며 그렇게 확인한 ‘광수’가 567명이라나.

 

그러고 보니 이런 황당한 소리를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듯했다. 제대로 챙겨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거짓 주장의 의도가 너무도 빤히 짐작되었던 때문이리라. 그러나 감독은 이 주장을 일단 자신의 영화 안으로 들여온 뒤, 사진 속 ‘북한군 광수’를 찾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고 보면 지만원 무리의 거짓 선동을 무시하고 내버려두고 있는 동안,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이른바 ‘폭동’의 근거로 지만원의 주장을 인용하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지만원을 발표자로 초청해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광주 왜곡’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그 당의 원내대표는 공청회가 국민의 거센 분노를 사자 한발 물러서는 듯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다”며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광주의 법정에 소환된 전두환은 끝내 아무런 사과의 말도 하지 않았다.

 

영화 <김군>은 지만원이 ‘제1 광수’로 지목한 시민군을 찾았을까. 영화에는 다른 ‘광수들’로 지목된 세 분이 증언자로 나오는데, 사실 당자들로서야 자신이 ‘전직 북한군 특수대원’이 아니라는 반박을 해야 한다는 게 그저 황당할 뿐이리라. 더구나 희생자들의 시신을 관리했던 한 분의 증언처럼 그때의 일들은 많은 이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참상의 시간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은 흐트러져 있고,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그이는 반문한다. 왜 그런 가짜 주장에 반응해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느냐고. 시위대에게 먹을 것을 날랐던 한 여성은 사진 속의 인물을 생생히 기억해낸다. 부모님이 운영하던 식당에도 자주 왔으며, 다들 ‘김군’으로 불렀다고. 그러나 그 ‘김군’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고아 출신의 ‘넝마주이들’이 시민군에 다수 참여했고, 이들의 이후 행적이 많이 지워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영화가 한 시간쯤 진행되어서야 이강갑이란 분이 사진 속 시민군이 확실한 것 같다는 증언이 나오지만 정작 그이에게는 사진이 찍힌 그날의 기억이 많이 없다. 그이는 체포된 뒤 국군통합병원에서 4년 만에 깨어났다고 말한다. 그이는 결국 ‘지만원 고소인단’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다. ‘김군’에 대한 또 다른 증언이 나온다. 1980년 5월24일 광주 송암동에서 벌어진 계엄군들 간의 오인 전투와 이어진 주민과 시민군에 대한 보복 학살(초등학생 둘과 50살 주민 여성 포함 6명 사망) 때 현장에 있었던 최진수씨(1989년 ‘광주청문회’에서도 증언함)가 허옇게 센 머리를 하고, 무릎 꿇린 ‘김군’ 머리에 총구를 대고 계엄군이 방아쇠를 당기던 순간을 울음 속에 증언한다. 그렇다면 송암동 학살 관련 5·18 재판 기록에 나오는 ‘성명 불상 무장시위대 1명’이 바로 그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암매장한 것으로 짐작되는 그이의 유골은 끝내 찾아지지 않는다. ‘김군’은 끝내 직접 증언하지 못한다. 영화 <김군>은 그렇게 사라진 ‘김군’의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증언을 통해 광주의 살아 있는 아픔과 진실에 다가가려 한다.

 

지만원의 블로그 글을 봤다. 그는 영화 <김군>에 대한 기사를 인용한 뒤, 김군을 살아 있는 인물로 확정하고 불러내지 못한 영화의 ‘실패’가 자신의 주장에 대한 ‘간접적 인정’인 양 자랑하고 있다. 사악함 못지않게 이 ‘사유의 무능’이 가련할 뿐이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한겨레신문. 2019년 3월 19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6547.html#csidxb9356b77885ca7a88988d23d2a68f1b onebyone.gif?action_id=b9356b77885ca7a88988d23d2a68f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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