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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고교체제 개편을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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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4-12 09:30 조회27,0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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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 개혁을 비롯하여 중등교육 정상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절박하지만, 작년의 대입 공론화 과정은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탄탄하게 형성하지 못한 우리 현실을 잘 보여줬다. 하지만 고교체제 개편의 일환인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교육 공약 중에 자사고 등의 일반고 전환은 국민적 지지가 높은 공약이었다. 2017년 실시된 여론조사들에서 예외 없이 국민 과반수가 찬성했으며(리얼미터 52.5%, TV조선 62.3% 등), 반대 역시 한결같이 30% 미만이었다. 또 2017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과 함께 실시한 교사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학교, 일반고, 영재학교·자사고·특목고 등 총 512개교 3494명의 응답 교사 중에 무려 82.4%가 현행 고교체제로 인해 고교서열화의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교사와 일반 국민 모두가 고교체제 개편에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된 실망 끝에 입시개혁과 중등교육 정상화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도 널리 퍼져 있지만,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육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할 꽃다운 청소년들이 과로사의 국제기준시간을 훌쩍 넘겨 학업에 시달리는 중이며, 새 시대를 앞서서 이끌 창의적 능력과 자질을 키우지 못한 채 시들어가고 있다.  

 

애초에 자사고 등의 일반고 전환은 정부가 적절한 보완책과 함께 초·중등교육법 시행령만 바꾸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지정 평가를 통한 일반고 전환이라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며 각 지역 교육청에 부담을 떠넘기고 말았고, 그 덕에 자사고의 집단적 평가거부 소동도 벌어졌다. 그러나 지금도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교육개혁의 동력을 살리는 불씨가 될 잠재력이 크다.

재지정을 위한 자사고 평가제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자사고는 5년마다 재지정 평가를 받지만, 이 제도 자체가 상식에 어긋난다. 특정한 학교가 자사고로 지정되어 교육 다양성의 명분 아래 학생 우선 선발권을 가지고 일반고와 크게 다른 교육과정을 운영하다 5년 만에 평가에서 떨어지면 도로 일반고가 되어야 한다. 불안정한 제도이며 자율이나 자유와도 거리가 멀다. 짐작하건대 자사고 도입에 대한 반발을 회피하려고 만든 무원칙하고 편의적인 장치이며, 입시 위주의 학교를 허용하는 특혜임을 자인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아예 재지정 평가가 불필요한 자사고 폐지의 길을 택해야 옳다.

 

자사고의 일반고 환원의 명분은 차고 넘친다. 대부분의 자사고 교육과정은 학생의 재능과 적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을 함으로써 우리 교육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또 중학교 내신성적 상위 10% 이내 학생이 서울 시내 일반고 204개교에는 8.5%이지만, 23개 자사고는 18.5%, 전국단위 자사고 3개교는 무려 88.0%이다.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좋은 자사고를 가려는 과열 경쟁과 사교육이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공약이 법적 소송과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은 2017년 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이 ‘꼼수’였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정공법이 아닌 일반고와 자사고의 ‘고입 동시 실시’라는 우회로를 택해 시행령을 손질했지만, 자사고와 일반고의 중복지원 불허로 자사고에 낙방한 학생이 거주지에서 가까운 일반고에 갈 수 없게 되었다. 타당성이 높은 정책 전환이 아니라 죄 없는 어린 학생에 대한 권리 침해의 측면이 컸다. 이런 허점 탓에 2018년 6월 헌법재판소가 이 대목만큼은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작년 10월19일 서울행정법원은 서울 시내 자사고들이 제기한 2019학년도 고입전형 기본계획 취소 소송을 기각했다. 자사고 측은 학생 우선 선발권이 사학 운영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권리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 학생 우선 선발권은 교육의 다양성을 명분으로 주어진 특전이었다. 그러나 자사고가 내세우는 교육의 다양성이 대부분 허구임이 명백한 터에 우선 선발권은 성적 좋은 학생을 독점하는 부당한 특혜일 뿐이며,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정당하다. 어제 4월11일의 헌재 결정도 기본적으로 같은 맥락이지만, 사회적 논란을 끝내기는 역부족인 듯하다.

 

정부의 소극적이고 일관성 없는 정책 탓에 벌어진 혼선과 갈등을 해결할 길은 자사고 등의 일반고 환원을 흔들림 없이 실천하는 일이다. 만만치 않은 반발과 부작용이 있겠지만, 그런 어려움을 극복할 길도 얼마든지 있다. 고교체제 개편은 대학입시 개선과 중등교육 정상화, 나아가 고등교육체제 개편에 이르는 종합적 교육개혁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과 교수

 

경향신문 2019년 4월 11일

원문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4112042035&code=9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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