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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경] 전쟁에서 이기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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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8-30 09:28 조회17,5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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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역사전쟁에 이은 무역분쟁도 모자라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갈등이 격화되면서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번 사태가 단순한 무역분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가간의 전쟁상황으로 본다. 한국 역시 무역분쟁이 장기전으로 갈 것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무역갈등 이전에 한국과 일본 모두가 물러서기 어려운 강제동원에 대한 국가 책임과 보상문제가 걸려 있으니 현재 전쟁이 쉬이 끝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전쟁 수준의 긴박함이 강조되면서, 일본 규제의 최대 피해자이자 무역전쟁의 최전선에 있다고 보는 대기업에 대한 지원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일본의 수출제한에 따른 피해가 직접적인 재해나 재난은 아니지만 사회재난에 뒤따르는 사고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고, 기업의 ‘주 52시간 근로’ 규제를 일부 풀어주기로 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자연재해 상황에서, 또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상으로는 자연·사회 재난과 이에 따르는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를 초과하는 ‘특별연장근로’가 가능하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2015년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총수 일가에 이익을 몰아주는 행위를 차단하기로 한 바 있지만, 일본의 이번 수출규제가 예외조건 중 하나인 ‘긴급성’에 해당하므로 소재·부품·장비에 대해서는 내부거래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5일 정부가 발표한 대책 또한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을 지원한다고 하면서도 실제 대기업에 세제혜택이나 금융 지원을 몰아주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실질적 피해가 예상되는 것은 물론 더 취약한 위치에 있는 중소 하도급 업체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나 노동자를 위한 지원책은 엿보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불법 승계와 회계조작 의혹으로 수사·재판 과정에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무역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꼭 필요한 인물이라는 식으로 분위기가 전환됐다. 이제는 노골적인 불법에 대해서조차 처벌이 이뤄지리라는 확신을 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한시적인 조치라고는 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말로 내세운 개혁방침을 스스로 뒤집는 듯 보이는 결정들이 연이어 발표됐다. 그러니 아직 표면으로야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은 것 같아도, 혹시 악덕기업들이 큰비 올 때 오·폐수 쏟아내듯 국가적 위기를 빙자해 그동안 눈치 보느라 못했던 대기업 소원수리를 해치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커져만 간다.

사실 하나하나의 조치만 본다면 일본과의 무역전쟁에서 이기려면 꼭 필요한 조치였다고 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복지 지원의 지침이 되는 중위 기준소득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면하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비정규직 근로환경 속에서 끝없이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이 이어지는 와중에 대기업에 대한 규제만 계속 풀어주고 국민에게는 인내만 강요한다면 과연 전쟁을 제대로 치를 수 있겠는가.

긴 전쟁에서 이기려면 결국 대중들의 마음을 얻고 명분을 확보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농민신문 2019년 8월 21일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FRE/314614/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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