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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인권도 상전벽해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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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5-04 16:37 조회10,0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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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총선 결과를 보도한 각 언론의 헤드라인을 보면서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인권에서도 이런 상전벽해가 일어날 수 있을까. 기대의 높이와 결과의 높이가 이번에는 좀 가까워질 수 있을까.

 

일단 우려되는 것은 권력의 역설적 속성이다. 권력이 커질수록 책임도 커질 수밖에 없다. 잘하든 못하든 모든 책임을 몽땅 뒤집어써야 한다. 큰 권력은 다른 누구에게 핑계를 댈 수도 없다. 국민의 심리적 균형추도 한쪽으로 쏠리기 쉽다. 잘한 것은 당연시되고 못한 것은 극대화된다.

 

새 국회는 올 6월에 개원한다. 다음 대통령 선거는 2022년 3월에 열린다. 그러고 석달 뒤엔 지방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21대 국회는 두 행정부와 절반씩 병립하는데 현 정부 아래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1년 반 미만이다. 내년 가을 정기국회는 이미 대선의 격랑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짧은 1년 반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에 집중할지를 결정하는 안목 자체가 정치적 능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가치판단이 곧 정치적 유능함이다.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을 시점이 되어 2년 전에 왜 그런 문제에 시간을 허비했는가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 사회의 토대가 민주화 세대로 교체된 것이 이번 선거에서 극적으로 표출되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구조-인구학적 분석은 거시적인 전망으로 보아 설득력이 크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민주정치의 패턴과 역사의 장기 추세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선거에서는 우회와 역류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당대 사람들의 삶의 경험과 특정한 국면에 좌우되기도 한다.

 

인권의 관점에서 앞으로 1년 반 동안 국회에 바라는 바가 있다. 인권을 위해서,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사항들이라고 믿는다.

 

우선 반드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권하고 싶다. 혐오·차별을 받는 사람들의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의 생명, 자유, 행복을 보장한다는 국가가 왜 필요한지를 입증하는 차원에서 실천해야 할 일이다. 같은 동료 인간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찍어서 괴롭히는 나쁜 인간들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왜 입법하지 않는가. 현 정부 출범 뒤 제일 먼저 했던 약속이 인권국가의 건설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행여 차별금지법이 득표에 도움이 안 되고 골치만 아픈 법이 될까봐 주저한다면 한번 더 숙고하기 바란다. 2년 뒤 대선에서 어떤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될지 상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현 시대상황이 그렇다. 정서적으로 인화성이 높은 인권 관련 이슈를 물고 늘어지는 후보가 반드시 등장한다. 그런 문제를 고리로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조직화를 꾀하는 반인권 세력이 이미 존재한다. 대권을 놓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마당에 이들이 금도를 지키겠는가.

 

이런 공세를 막느라 진을 빼다 보면 다른 주요 쟁점들을 깊게 토론할 공간이 줄어든다. 선거가 인권 논란에 ‘하이재킹’ 당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의 손실이고 비극이다. ‘전체 국민을 똑같이 보호하는 선치’와 ‘일부 국민을 기필코 배제하는 악치’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국민에게 묻는 방식의 메시지를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발산해야 한다. 일찌감치 쐐기를 박아놓아야 한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미 때가 늦다. 이렇게 많은 의석을 갖고도 차별금지법을 못 만들면 ‘나중에’ 언제 만들 것인가.

 

차별금지법이 인권의 가시적 침해를 막는 대증요법이라면, 다수 대중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원인 치료에 해당한다. 코로나 사태의 역학적 단계가 지나면 경제사회적 후폭풍이 본격적으로 불어닥칠 것이다. 이미 일시 휴직자가 사상 최대 규모로 늘었고 취업자는 크게 떨어졌다. 노인 일자리 사업이 연기되고 서비스업종에서 무급휴직이 증가했으며 고용률도 추락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제적으로 한국의 경제 전망이 그나마 덜 나쁘다고 하지만 오십보백보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울 때쯤 다음 대선이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요즘 재난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많은데 정치적 상상력을 더 넓힐 필요가 있다. 두가지를 함께 고려하면 어떨까 싶다.

 

하나는 ‘창조적 파괴’를 이참에 과감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상자 바깥으로 나와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 위기가 끝나도 기후위기는 여전히, 더 심각한 문제로 남는다. 총선 전에 여당은 그린뉴딜기본법을 제정하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각 정당 연합체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이것과 기본소득을 연계하여 ‘녹색기본소득’을 구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강상구가 저술한 <걷기만 하면 돼>에 나오는 아이디어 등을 연결고리로 해서 정책연합을 추진할 정도의 파격적인 행보가 필요하다.

 

또 하나는 경제 논의를 단순한 정책의 차원을 넘어 경제사회적 권리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문제다. 좋은 정책과 인권 정책은 동의어가 아니다. 좋은 정책은 공공성이 높고 혜택이 최대 다수에게 돌아가는 착한 정책이긴 하다. 하지만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할 수 있고, 후퇴할 수도 있다. 인권 정책은 모든 사람이 권리로 요구할 수 있는 정책이다. 일단 확정되면 되돌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기존질서가 해체되고 있는 현시점이 경제사회 정책의 권리화를 제도로 보장하기에 적기라 할 수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1944년에 제안했던 ‘경제권리장전’이 떠오른다. 미국의 연방헌법 수정조항에 나오는 ‘권리장전’이 주로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다루었으므로 추가로 헌법 개정을 해서 제2권리장전을 더하자는 주장이었다. 구체적으로 노동, 의식주, 농민 소득 보장, 불공정 경쟁 금지, 의료, 사회보장, 교육 등을 인권으로 못박아 영속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였다.

 

애석하게도 경제권리장전은 성공하지 못했다. 만일 루스벨트의 구상이 실현되어 제일 영향력이 큰 나라에서 경제사회 정책의 기본틀이 되었더라면 그것의 전세계적 파급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권리장전의 기본 구도는 오늘날 경제적·사회적 권리로 계승되었다. 이 부분을 지금 이 땅에서 적극적으로 실현한다면 그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 되겠는가.

 

여러 논자들이 지적했듯이 한국은 ―여전히 모순을 안고 있지만― 이제 단순히 서구 따라잡기, 배우기가 통하지 않는 독특한 정치공동체로 진화했다.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이 외부에서 준거를 찾을 필요도, 찾을 수도 없는 영역이 많아졌다. 우리의 경험을 공유해달라고 외국에서 요청할 정도가 되었다. 인권에서도 한국이 새로운 희망의 준거점이 되도록 새 국회가 분발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한겨레신문 2020년 4월21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14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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