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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정상회담의 끝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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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06-03 14:56 조회5,7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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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 노병 양옆에서 한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 랠프 퍼켓 예비역 대령, 그는 미국의 전쟁영웅이다. 1949년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배치됐던 신참 소위 퍼켓은 한국전쟁에 자원했다. 미8군 특수부대에 ‘백의종군’이라도 하겠다며 자원한 그를 높이 본 존 맥기 중령이 그를 중대장에 임명했다. 특수부대는 바로 북진작전에 투입되어 1950년 11월 청천강 북쪽 요충지 205고지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이 전투에서 퍼켓은 위험을 무릅쓰고 선두에서 부대를 이끌었다. 그 와중에 수류탄에 다치고, 또 박격포 공격을 받아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는 부대원들에게 자신을 남기고 대피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부대원들이 명령을 거부하고 그를 구해냈다.

 

이 경험은 그에게 깊은 교훈을 남겼다. ‘모름지기 지휘관은 위험 앞에서 솔선수범하며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사병들이 지휘관을 믿고 따른다. 혼연일체가 된 부대만이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이후 참전한 베트남 전쟁에서도 그는 앞장섰다. 퇴역 후에도 명예 대령으로 지휘관들과 사병들을 고무했다. ‘군인은 모름지기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부대의 명예를 위해서는 자신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전쟁 중 이라크에 가서 미군들을 격려하고 고취했다. 미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군인은 명령에 복종하고 필요하다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전사의 윤리’를 전파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전쟁영웅 퍼켓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톰 무어는 영국의 노병이다. 2020년 코로나19로 모두가 주저앉아 있을 때 그가 일어섰다. 99살의 노구를 보조기에 의지해서 힘겹게 발걸음을 떼었다. 멀리 갈 수는 없었다. 자기 집 정원을 되풀이해 왕복했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희망으로 채워져 있었다.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영국 의료진, 감염자,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두에게 용기를 주겠다는. 한 걸음마다 후원금을 받아 100살 생일까지 1천파운드를 모금해 영국 보건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목표는 낮았지만 고개는 치켜들었다. 걷고 또 걸었다.

 

그의 걸음은 외롭지 않았다. 노구의 힘겹지만 힘찬 걸음에 모두가 감동했다. 기금의 행진이 이어졌다. 가수 마이클 볼이 톰 무어와 함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유 윌 네버 워크 얼론’(당신은 절대로 홀로 걷지 않을 거예요), 세월의 풍상이 할퀴고 남겨놓은 깊은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했다. 2020년 4월30일, 그의 100살 생일 아침까지 모금된 액수는 3천만파운드. 1940년대 대영제국 육군 장교로 인도에 파병됐었고 버마에서 대영제국의 최전선에 섰던 그였다. 하지만 생애의 마지막 고비에서 그는 죽임의 길이 아니라 살림의 길을 선택했다. 모든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걸음을 걸었다. 많은 영국인들과 세계인들의 가슴을 희망으로 고취했다. 많은 이들이 그와 함께 생명의 길을 걸었다. ‘캡틴 톰’은 인간 생명의, 인간 안보의 영웅이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는 퍼켓과 무어의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동시에 ‘확장억제’(미국의 북에 대한 핵무기 사용·위협)를 공약했다.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를 확인하면서도 “동맹의 억제 태세 강화” “합동 군사준비태세 유지”를 강조했다.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동시에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를 완전히 이행할 것”(대북 경제제재 이행)도 촉구했다. “태평양 도서국들과의 협력 강화”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를 얘기하면서 아시아 대륙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는 언급하지 않고 ‘쿼드’의 중요성만을 적시했다. 글로벌 보건 도전과제에 협력을 다짐했지만 구체적인 우선과제는 한국군에 대한 백신 공급이다. 우주 탐사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우주에서의 안보협력을 구체적으로 거명했다. 기후변화 위협에 대응한다고 하면서도 한국은 지금도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고, 수출하고 있다.

 

스웨덴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이번 피포지(P4G) 정상회의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미 밝힌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한다’고 말했다면, 행동으로 증명해주면 좋겠다. 행동이 말보다 훨씬 더 의미가 있다.” 화려한 정상회담은 끝났다. 행동이 남았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경향신문 2021년 5월30일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7249.html#csidx3c35340c62d6356862d78a04627836b onebyone.gif?action_id=3c35340c62d6356862d78a0462783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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