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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 사상사"출간] 척사·개화 너머 주체적 대응의 길 찾은 개벽사상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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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6-04 19:21 조회4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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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서 교수 등 학자 11명
근대의 이중과제 담론 바탕
동학·안창호·한용운·조소앙 등
근현대사 개벽파 사상 추적
개벽의 사상사
최제우에서 김수영까지, 문명전환기의 한국사상
백영서 외 지음 l 창비 l 2만2000원한국 근현대사의 기점이 되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사상 흐름을 양분한 것으로 흔히 개화파와 척사파가 꼽힌다. 근래에 들어와 이 두 세력 사이에서 제3의 노선을 추구한 세력이 주목받고 있다. 개벽파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동아시아 전통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서학과 서양의 쇄도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려고 분투한 세력이 개벽파로 묶인다. <개벽의 사상사>는 바로 이 개벽파에 주목해 19세기 중반 이래 20세기 후반까지 이 흐름을 이끌어간 이들의 사상을 살피는 저작이다. 수운 최제우부터 시인 김수영까지 종교·정치·문학에서 개벽의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책의 집필에는 모두 11명의 학자(강경석·김선희·박소정·백영서·이정배·장진영·정혜정·조성환·허남진·허수·황정아)가 참여했다. 이들은 지난 3년 동안 한 달에 한 번꼴로 토론한 뒤 각각 한 장씩 집필했다. 사학자 백영서 연세대 명예교수가 서문에 밝힌 대로 이 책의 바탕에 깔린 담론 토대는 ‘근대 적응과 근대 극복의 이중 과제’와 그 과제를 실천할 정치적 방법론이라 할 ‘변혁적 중도주의’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이중 과제 담론과 변혁적 중도주의 담론의 눈으로 개벽파의 사상을 분석하는 책이 됐다.
변혁적 중도주의 선구자 도산 안창호. &lt;한겨레&gt; 자료사진
변혁적 중도주의 선구자 도산 안창호. <한겨레> 자료사진
이 책의 열쇳말인 ‘개벽’이 우리 근현대 사상사의 핵심 어휘로 등장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동학과 그 후신인 천도교다. 그래서 이 책은 세 장에 걸쳐 동학공동체의 개벽사상 전개를 살핀다. 동학의 개벽사상은 수운 최제우의 ‘다시개벽’에서 시작해 해월 최시형의 ‘후천개벽’으로, 의암 손병희의 ‘인물개벽’으로 이어진다. 눈길을 끄는 것은 동학공동체의 주요 이론가 가운데 한 사람인 김형준(1908~1953)의 동학사회주의론이다. 김형준의 동학사회주의는 1930년대에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벌인 종교논쟁 속에서 형성됐는데,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계급사상만으로 계급사회를 지양할 수 없다. 계급사회를 물심일원의 사상으로 극복하자는 것이 수운주의다. 수운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유물(물질)과 유심(정신)은 인간 존재의 양면에 불과하다. 물질과 정신은 우주 실재의 두 가지 현상이고 그 뿌리는 하나다.’ 김형준은 이 수운주의를 토대로 삼아 동학과 사회주의의 결합의 길을 찾았다. 김형준의 이런 사상 투쟁에서 동서를 아우르려는 개벽파의 의지를 읽어내기는 어렵지 않다.한반도 근현대 사상사의 흥미로운 점은 동학이 보여준 대로 종교가 변혁 사상 형성에 주도적인 구실을 했다는 사실이다. 서구의 근대 사상이 기독교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세속화 운동 속에서 성장한 것과 달리, 한반도에선 서양 제국주의 침략에 대응하여 민족종교가 발흥한 것이 이런 차이를 빚었을 것이다. 동학의 개벽사상이 원불교 개벽사상으로 이어지는 것도 그런 양상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원불교 2대 종법사 정산 송규(1900~1962)의 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원불교 개벽사상을 살핀다.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이 내건 개교 표어, 곧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를 이어받은 정산의 개벽사상은 영성의 개벽, 일상의 개벽, 국가의 개벽, 윤리의 개벽으로 전개됐다. 특히 동원도리·동기연계·동척사업의 삼동윤리는 정산의 개벽사상의 중심을 이룬다. 모든 종교가 그 근원에서 보면 하나이고(동원도리), 모든 인종과 생령이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이며(동기연계), 인류 전체가 세상을 개척하는 데 힘이 되는 것이므로(동척사업) 이런 사실을 깨달아 대동화합하자는 것이 정산의 삼동윤리다. 이 삼동윤리를 실천 강령으로 삼아 하나의 세계를 열어가는 것이 삼동개벽 사상이다.
불교사회주의를 주창한 만해 한용운. &lt;한겨레&gt; 자료사진
불교사회주의를 주창한 만해 한용운. <한겨레> 자료사진
이 책에서 개벽 사상가로 안창호와 한용운과 조소앙을 거론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도산 안창호(1878~1938)는 실력양성론을 주장한 준비론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의 도산 사상은 준비론으로 격하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을 지녔다. “진정한 독립전쟁의 의사가 있거든 군사에 대하여 지성을 다함과 같이 외교에 대해서도 지성을 다해야 한다”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도산은 군사적 투쟁을 외면하지 않았다. 다만 도산은 민족해방을 이루려면 민족 역량의 최대 결집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러려면 급진 혁명주의나 군사 모험주의에 빠져서는 안 되고 투쟁과 외교와 교육을 아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산의 실천 사상은 ‘변혁적 중도주의’의 선구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사회주의를 주창한 만해 한용운(1879~1944)도 안으로 불교를 혁신하고 밖으로 서양을 수용해 새로운 불교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개벽파라고 부를 만하다. 한용운의 개벽사상이 잘 드러난 것이 시집 <님의 침묵>이다.
삼균주의 사상을 제창한 조소앙. &lt;한겨레&gt; 자료사진
삼균주의 사상을 제창한 조소앙. <한겨레> 자료사진
이 책이 힘주어 서술하는 또 다른 인물은 조소앙(1887~1958)이다. 조소앙이야말로 ‘근대 적응과 근대 극복의 이중 과제’를 깊이 사유하고 ‘변혁적 중도주의’를 정치적 실천 노선으로 제시한 사상가다. 조소앙은 유불선을 융합한 근대 민족종교, 특히 대종교를 사상의 뿌리로 삼아 동서 사상을 모두 통합하려 했다. 그런 통합 사상 위에 세운 것이 삼균주의다. 삼균주의는 두 차원을 지닌다. 협의의 삼균은 국내적 차원에서 정치·경제·교육의 권리 균등을 가리키며, 광의의 삼균은 개인 대 개인, 국가 대 국가, 민족 대 민족의 균등을 뜻한다. 조소앙은 이 삼균 이념에 입각해 ‘신민주국’ 건설을 목표로 제시했는데, ‘민중을 우롱하는 자본주의’도 아니고 ‘무산자 독재를 표방하는 공산주의’도 아닌 ‘한민족 전체가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조소앙의 정치적 비전이었다. 조소앙은 해방 뒤 좌우합작에 힘쓰다 한국전쟁 와중에 납북됐다. 1956년 조봉암이 남한에서 평화통일론을 제창하자 조소앙은 북한에서 ‘통일 민주자주 연합정부 수립’을 주장했다. 조봉암처럼 조소앙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하지만 좌절은 좌절로 끝나지 않는다. 북한은 조소앙의 유해를 애국열사릉에 모셨고 남한은 1989년 조소앙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양쪽이 함께 기리는 드문 현대사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조소앙은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변혁적 중도주의의 사상적 자원으로 삼을 만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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