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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이태원 참사와 책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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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11-07 15:00 조회2,2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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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의 일이다. 세월호 이후 이런 비극을 또 다시 마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서울 시내 한복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목숨을 잃은 초유의 참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이태원 사건 역시 안전 불감증과 행정 책임자들의 태만에서 비롯된 인재, 그로 인한 ‘참사’라는 점에 이견은 없을 듯하다.

이번 사고는 8년 전 그날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한다. 무엇보다 사고는 충분히 예견될 수 있었지만 예방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세월호는 무리한 수리와 증축뿐만 아니라 과적, 평형수의 감축과 같은 안전 불감증에 따른 불법과 관리자의 태만과 이탈에 따른 총체적인 부실로 인한 참사였다.

이번 이태원 사고도 마찬가지이다. 오랜 시간에 축적된 불법적인 증축과 가건물로 인해 협소해진 거리에 3년 만에 이뤄진 노마스크 축제로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그러나 사건의 결정적인 도화선은 이를 예상하면서도 최소한의 질서유지 인력조차 배정하지 않은 행정적인 태만과 안전 불감증이다. 그 결과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가 발생했다.

이처럼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도 닮아 있지만, 그보다 더 닮은 것은 참사 이후 드러나는 총체적인 부실과 무책임이다. 세월호 참사 때 익히 봤던 책임 주체의 실종이라는 현상은,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끔찍한 비극적 사건은 이미 발생했는데 정작 책임의 주체이어야 하는 사람들은 ‘폭탄 돌리기’처럼 변명과 면피로 제 잘못을 회피하는 데만 급급했다.

여론에 등 떠밀린 경창청장의 대국민 사과가 겨우 있었을 뿐, 용산구·서울시·행정안전부·청와대까지 제대로 된 책임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이번 사건은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런데 이러한 말들은 이미 8년 전에도 들었던 이야기이다. 불가항력이라는 말로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들이 누구인가.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일하는 것을 전제로, 또한 그것을 책임지기 위해 권한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이 사과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무엇도 책임질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시대, 그것은 곧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시대임을 의미한다. 이는 무정부 상태에 진배없다.

그러나 우리를 더 두렵게 만드는 것은 이 책임의 폭탄 돌리기가 향한 방향이다. 누군가는 핼러윈이라는 국적 불명의 명절을 비판하고, 어디선가는 가뜩이나 비좁은 길을 더 비좁게 만든 불법 증축과 가건물의 불법을 따진다. 물론 이 역시 불필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작 책임져야 한 자들의 무능과 태만은 어쩐지 뒤로 감춰지는 듯한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월호 참사에서 보았던 수많은 ‘꼬리 자르기’가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되지 않은 채 봉합된 상처는 곪아서 더 큰 통증을 유발한다. 진실을 은폐하는 것은 그런 일이다. 상처의 원인을 치료할 기회조차 잃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사를 사건으로 바꾸고, 피해자를 사망자로 바꾼다고 해서 문제의 본질까지 감춰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고 오만이다. 우리 국민의 눈과 귀는 위정자들의 그것보다 훨씬 넓고 깊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국민에게 위임받은 그 권한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요구하는 것인지 바르게 인식하라. 그리고 마땅히 그 무게를 제대로 감당하라.

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인천투데이 2022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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