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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위기의 부평 조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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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3-06 17:43 조회1,3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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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부평 조병창 병원건물 철거를 둘러싼 갈등이, 해를 넘기며 더 심화하고 있다. 인천시가 지난 1월 19일에 캠프마켓 토양오염 정화작업 재개를 국방부에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는 조병창 병원건물 철거를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철거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천막농성과 릴레이 단식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필자 역시 지난해 마지막 칼럼에서 다뤘던 이 문제를 다시금 논하게 됐다.

일찍이 인천시는 부평 캠프마켓 일대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살리겠다며 캠프마켓아카이브 구축을 선포한 바 있다. 조병창은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의 군수공장이었고, 병원건물은 해방 후에는 국군간호장교 양성소로 다시 캠프마켓의 공간으로 활용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장소이다.

그 자체로 부평이라는 도시를 관통한 근현대 역사의 살아 있는 유적이다. 그러한 가치를 외면한 채 철거를 진행하면서도, 또 다른 청사진으로는 근현대 역사를 가로지르는 아카이브를 구축하겠다니. 심각한 근시안이 아닐 수 없다.

토지오염 정화라는 당위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시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그 방식이다. 전면에 드러난 것은 철거에 따른 비용 문제이지만, 사실 이런 식의 밀어붙이기 정책에는 또 다른 이면논리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속도가 바로 그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시간의 단축을 추구하는 속도는 곧 자본의 논리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속도는 자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강력한 정치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용이라는 당위는 종종 그것을 위장하는 가림막이 되고는 한다.

실제로 이것은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많은 지자체가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지역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일에 사활을 건다. 하지만 거기서 말하는 ‘문화’가 그저 수식에 불과한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문화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문화만 쏙 빠진 ‘속 빈 강정’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 문화가 역사와 결합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한 상황에 처하기 쉽다.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자산을 지키는 일에는 많은 비용과 긴 시간이 요구된다. 반면 성과는 느리게 나온다.

하지만 그것을 허물고 새로운 ‘무엇’을 만들면 가시적 성과가 더 빠르게 도출된다. 어떤 지역의 ‘문화’자산이라는 말이 쉽게 왜곡되고 오염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의 공간이 역사적 장소로 호명되는 것은, 그곳이 유의미한 시간과 사건을 관통해서 특별한 의미망을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단 훼손되면 다시는 획득될 수 없는 가치이다.

조병창 병원건물의 철거는 단지 한 건물이 인천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80년이라는 역사와 그것으로 얻을 수 있었던 유무형의 가치를 잃는 것이다.

그것은 그 어떤 속도와 비용으로도 결코 회복될 수 없다. 부디 인천시가 합리성의 비합리성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인천투데이 2023년 2월 5일

http://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26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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