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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그린벨트 해제는 민주주의의 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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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03-04 15:51 조회1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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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맷 데이먼이 주연으로 출연한 <엘리시움>(2013)은 너무도 빤한 할리우드 SF 액션물이다. 오래전에 봤던 기억으로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지구에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로봇을 생산하는 공장 노동자들을 놔두고 부자들은 지구 바깥에 ‘엘리시움’이라는 인공 별로 이주해 산다. 생긴 모양은 지금 현존하는 국제우주정거장을 닮았다. 폐허가 된 지구를 버린 부자들은 거기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는데 몇번의 스캔으로 모든 병을 고치는 기계가 집집마다 구비되어 있기도 하다. 버려진 지구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로봇 경찰의 강압적인 통제를 받지만 엘리시움에서는 로봇이 시민들을 보호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엘리시움(Elysium)은 사람이 죽으면 가는 어두운 하데스와 달리 신에 의해 선택된 자들이나 선하게 산 사람들, 또는 영웅들이 죽으면 가는 이상적인 사후 세계라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돈이 신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난 2월21일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 일자리를 만들고 활력을 불어넣을 첨단산업단지”를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민생토론회 자리에서 말이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지역전략산업을 추진할 경우 국무회의에서 추인하면 무한대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는 게 골자다. 덧붙여 도로나 택지, 산업단지 개발을 하다가 개발지역에 포함되지 않은 자투리 농지에 대해서도 개발을 허가하겠다고 했다. 현재 절대농지로 묶인 이런 자투리 농지의 면적은 전국적으로 여의도 면적의 70배에 달하는 약 2만1000㏊이다. 그동안 녹지와 농지의 파괴는 꾸준히 진행돼왔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이번에 ‘선거용’으로 발표된 ‘토지이용규제 개선 방안’도 별다를 게 없는 것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이왕 망가진 거 좀 더 망가지는 게 무슨 대수랴 하는 무관심과 체념이 분명히 있다는 얘기다. 

대지와 자연은 자본이 망가뜨려 

민주주의를 말할 때, 우리는 이를테면 집회·결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등을 먼저 떠올리고는 한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은 자유롭게 모여서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거론되는 마당에, 사법관료인 검찰이 사법 권력을 독점한 상태에서 행정 권력을 차지하고 이제는 입법권력까지 노리는 우리의 상태를 일러 검찰 독재라 부르곤 한다. 현상적으로 검사 출신의 대통령에, 검사 출신의 여당 대표에, 여러 요직에 검사 출신들이 앉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검찰 독재가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영화 <엘리시움>에서처럼 자유와 권리가 부나 권력이 기준이 되어 배분되는 사회는 확실히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단지 시민들에게 선거권이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라고 부른다면 민주주의는 그냥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또 집회·결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만 가지고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설 수가 없다. 그런데 집회는 왜 하는가? ‘말’하기 위함이 아닌가?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며 “언어라는 가옥 안에 인간은 거주한다”(<휴머니즘 서간>)고 한 적이 있는데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는 인간의 ‘말’로는 명료하게 규정하기 힘든 것이다. 다만 하이데거가 ‘존재’를 언급할 때 대지와 자연(physis)을 같이 말하는 것을 보면, 최소한 대지와 자연이 ‘존재’에 다가가는 실마리 정도는 될 것이다. 따라서 대지와 자연이 망가질수록 존재는 궁핍해지고 궁핍한 존재가 거주하는 언어 또한 부실해진다는 말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대지와 자연은 무엇이 망가뜨리는가? 앞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드러났듯 자본(의 결과물이면서 다른 형태의 자본인 기술)이다. 자본의 증식, 즉 무한한 경제성장에 대한 망상이 대지와 자연을 폐허로 만들고 그에 비례해 우리의 언어는 처참해지며, 그 처참한 언어로 말하고 표현하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과연 무얼 가리킬지 의문이 든다. 물론 ‘존재의 집’으로서의 언어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따로 떨어져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할 때, 그 근저에 대지와 자연의 파괴가 있지 않은지 의심을 가지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민주사회 위해 대지·자연 지켜야 

이미 오래전에 고 김종철 선생은 대지와 자연의 파괴가 민주주의와 불가분하게 연결돼 있음을 간파한 바 있는데, 2002년에 발표된 <땅의 옹호>에서 “미국의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엄청난 규모로 발달함에 따라서 사실상 미국사회는 갈수록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와는 거리가 먼 사회가 되었”다고 비판했다. 결국 엘리트들의 특권과 부의 편중을 막고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려면 근본적으로 대지와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대지와 자연의 파괴가 자행되는 만큼 민주주의도 무너진다면, 그린벨트 해제는 민주주의 해제와 같은 의미가 되는 게 아닐까?


황규관 시인 

경향신문 2024년 3월 3일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3031956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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