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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나의 몸, 나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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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04-01 18:50 조회1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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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성도 해석하기 나름이다. 미완성 작품이 태반이고, 실패한 아이디어에 아예 실현불가능한 구상도 여럿이었다. 독학에 그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발휘하여 세상과 사물을 관찰했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나 타인과 협력하거나 공개적 검증을 받은 적이 없고, 책이나 논문을 내지 않았다. 어느 부분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그의 모습은 달라진다.

 

레오나르도는 인체의 해부에도 매달렸다. 상세한 해부도는 감탄할 만하고, 추론 일부는 경이롭다. 심장을 살핀 결과, 대동맥 판막이 닫히는 원리가 일정 구간을 통과하는 혈액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소용돌이 때문이라고 했다. 물과 바람과 곱슬머리에 매혹된 지적 관찰력이 내린 결론이었다. 노트에 기록된 그 내용은 450년 이상 아포리즘 정도로 취급되거나 아예 읽히지 않았다. 1960년대까지 심장전문의들의 통설은 대동맥으로 유입된 이후 혈액의 역류가 생기면서 판막이 닫힌다는 것이었다. 옥스퍼드 연구팀이 방사선 기술로 혈류를 관찰하고 나서야 레오나르도가 옳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레오나르도는 꽤 많은 해부를 했는데, 여성의 시신을 다룰 기회는 없었다. 생명의 잉태와 관련해서는 암소를 해부한 경험을 토대로 그리고 썼다. 자궁 속의 태아 스케치는 예술과 과학을 결합한 멋진 작품으로, “한눈에 불안감과 경외심을 자극하는 영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인간의 상태를 포착했다”는 찬사를 받는다.

 

몇 년이 지난 뒤 레오나르도는 태아 그림 하단에 메모를 붙였다. “배아는 양수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숨을 쉬지 않는다.” 뒤쪽에 법률적으로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보탰다. “배아는 어머니의 손이나 발처럼 여전히 모체의 일부다.” 수정 단계에서부터 생명이 시작된다고 믿던 교회의 입장에서는 이단의 주장이었다.

 

태아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생각은 500년이 더 지나 프랑스에서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으로 실현됐다. 지난주 월요일, 프랑스 상하원 합동회의는 낙태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기로 의결했다. 지금까지도 낙태를 법률로 금지하지는 않았으나, 이제 임신중지를 헌법의 권리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재작년 여름 낙태 금지를 위헌이 아니라고 번복한 미국 연방대법원과 대조를 이룬다.

 

미국 독립전쟁과 제헌 운동 그리고 프랑스의 대혁명과 헌법 제정 과정에서 두 국가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21세기에 와서 두 헌법은 왜 하나의 문제를 두고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게 되었을까? 헌법이 살아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헌법은 제정할 때 인쇄된 문자의 의미로 확정되어버리는 상징물이 아니다. 헌법은 성장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정치적 상황, 경제적 사정, 사회적 갈등, 문화적 양상에 따라 헌법의 실질이 변화한다.

헌법이 고정된 절대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다. 대체로 모든 것이 그렇다. 과거만 하더라도,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면 항상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는 현재를 살면서 필요할 때마다 끌어와 의미를 재해석하는 가운데 가치를 지닌다. 과거도 움직이는 것이다. 지난날 만든 헌법이 화강암에 새긴 격률이라면 현실의 삶에는 잘 맞지 않은 옷이 될 뿐이다.

 

레오나르도의 뛰어난 통찰은 비밀 노트에 새긴 내면의 지식으로만 머물러 타인과의 소통을 통한 성장의 길이 막혀 있었기에 사상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모든 것은 성장을 통해 인류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다만 그 성장의 방향은 여러 갈래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총선을 한 달 앞두고 벌어지는 우리 정치 현상은 민주주의 이념과 이론적 관점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 너무 많다. 저마다 해석한 민주주의를 행동으로 옮기는 형국이다. 민주주의가 움직이며 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방향은 새 질서의 형성에서 파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길로 열려 있다.

 

차병직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한결)·편집인

법률신문 2024년 3월 14일

https://www.lawtimes.co.kr/opinion/196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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