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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언]새소리가 들리는 당신이 궁금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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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05-08 13:00 조회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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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없는 그림책
남지은 지음 l 문학동네(2024) 


당신은 어떤 소리를 들으며 사는가. 다양한 응답이 가능한 질문이다. 어떤 이는 혼잡한 거리로부터 들리는 소리를 떠올릴 듯한데, 이때 질문은 우리가 머무는 장소가 어떤 풍경인지를 묻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자신이 최근에 만난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말을 떠올리는 이도 있겠다. 이 경우 저 질문에는 우리가 맺는 관계가 어떤지 살펴보라는 제안이 담긴다. 청각이 아닌 감각으로 세상의 기척을 접하는 이에게는 자신의 내부와 외부가 마주할 때 일어나는 다양한 반응을 떠올리라는 요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각종 소식으로 마음이 복잡해질 때도 우리는 ‘속 시끄럽다’는 표현을 쓴다.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기회를 막는 소리도 많다는 얘기이다.

남지은 시인의 첫 시집 ‘그림 없는 그림책’에는 우리가 무엇을 들으며 사는지에 골몰하다 정작 들어야 할 소리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시들이 실려 있다. 이때 ‘소리’는 귀청을 울리면서 다가오는 소리 그 자체만을 뜻하지 않는다. 존재를 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소리’라 할 수 있다. 어떤 존재든지 태어나기 위해서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그 자신을 깨우는 소리에 노출되어야 하듯, 시인은 세상의 질서에 섞여 있는 소리 중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깨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소리에 몸을 더 기울여보길 권한다. 김지은 평론가가 남지은 시인의 ‘시 쓰기’를 일컬어 했던 ‘시의 양육’이란 표현처럼, 우리가 집중해야 할 소리에 몸을 열다 보면 우리 내부에도 시가 ‘길러질’ 것이다.

“새소리는 어디서 왔을까/ 새도 숲도 없는 이곳에 새소리가 들려왔다면/ 내 안에서 네 안에서 그도 아니면// 신이 있다면 새소리로 왔을까/ 늪 같은 잠 속에서 사람들을 건져내고/ 아침이면 문가로 달아나는/ 반복되는 장난/ 은빛 깃털만이 신의 화답으로 놓인다면 그도 신이라 부를까// 내가 새소리를 듣는다면/ 잠결에도 아기 이마를 짚는 손과/ 손을 얹을 때 자라는 조그만 그늘에도// 내려앉는/ 포개지는 글자들//(중략)// 아침이면 사라지는/ 신발 한 쌍을 되찾기 위해// 몸을 수그리는 사람/ 옷을 느리게 갈아입는 사람/ 벌목된 꿈을 일으켜 돌아갈 집을 짓는 사람/ 이곳에서 새소리를 듣고 있다면”(‘호각’ 부분)

“새소리”는 “늪 같은 잠”에 든 사람을 깨워 아침을 맞이하게 하고, “잠결”인 “아기”를 지키는 손에 드리운 그늘을 거둔다. 하루는 “새소리”가 들리는 때로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셈이다. 하지만 시는 새소리가 들리고 난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보다도, 그런 새소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더 궁금해한다. 겸손하게 몸을 숙이고 신발을 신어 하루의 출발선에 떳떳이 자리하려는 이들, 한때 잘려나갈 뻔한 꿈을 고이 회수해 하루하루를 꿈과 함께 나란히 두고자 하는 이들, 그러니까 저마다의 새로운 시간을 시작하려는 사람들. 이들은 새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이들 자신이 깨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적극적으로 그를 듣고자 하는 이들이 여기 있으므로, 새소리는 새의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시는 묻고 싶은지도 모른다. 번잡한 소음 속에서 새소리를 가려들을 줄 아는지, 혹은 그런 소리를 귀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지. 새소리에 즉각적으로 화답하는 어린이들처럼, 살아 있는지. 

양경언 문학평론가

한겨레신문 2024년 5월 3일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391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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