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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근] 피아노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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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07-05 17:18 조회4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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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파 궐은 큰 재산을 물려받은 청년 부호다. 본처가 죽자 신식 여성과 결혼했다. 큰 집에서 침모와 찬모를 두고 행복한 신혼살림을 꾸린다. “이상적 가정에 필요한 물품을 사들이는 것”이 부부의 기쁨이다. 그렇게 피아노도 들였다. 궐이 권한다. “한번 쳐볼 것 아니오, 이상적 아내의 음악에 대한 솜씨를 좀 봅시다그려.” 궐녀도 권한다. “먼저 한번 쳐보셔요.” 침묵이 흐른다. “그러지 말고 한번 쳐보구려. 그렇게 부끄러워할 거야 무엇 있소.” “나 칠 줄 몰라….” 처가 눈물을 흘린다. “그것을 모른담.” 득의양양 웃으며 피아노 앞에 앉은 궐이 건반을 진짜로 ‘친다.’ 안심한 아내가 말한다. “참, 잘 치시는구려.”


현진건의 단편소설 ‘피아노’(1922)의 줄거리다. 문화와 계급 사이의 관계를 잘 풍자했다. 인스타 허세의 역사가 유구하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 시기 피아노는 상류층의 상징이었다. 돈만으로는 안 되고 교양과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하니 진짜 상류층의 상징이었다. 1970~80년대를 거치며 상위 중산층에 보급됐다. 사치재라 거실을 차지했다. 동네마다 피아노 학원도 들어섰다. 음대 입시 과열과 외환위기를 거치며 피아노 열기가 식었다. 과시의 효용이 사라지자 중산층은 피아노를 처분하거나 아이 방의 값싼 디지털 피아노로 만족하게 됐다. 진짜 상류층은 그랜드 피아노로 옮겨갔다.


고도 성장기에 피아노는 상위 중산층을 향한 욕망을 집약했다.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만의 피아노가 있지 않았을까? 내 마음속 피아노는 그야말로 피아노였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다. 그 시절 피아노는 제법 사는 집 여자아이들의 특권이었다. 피아노 치는 남성은 상상계 속에 없었다. 그래서 더 피아노 치는 남자가 되고 싶었으리라. 피아노 대신 내게 주어진 건 서울 고모가 선물한 화음이 안 되는 전기 멜로디언이었다. 그걸로 심지어 ‘엘리제를 위하여’를 쳤다. 물론 멜로디만. 피아노를 사 달라거나 배우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건 꿈꿀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공교육에서 피아노를 가르쳐야 한다는 건 생각도 못 해봤다.


중학교 2학년 때 반장 집에 놀러 갔더니 반장이 7년간 배웠다며 바이올린을 켰다. 부모님은 명문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 부부였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수화기 끝이 꼬부라진 전화기도 처음 실물로 봤다. 죄다 문화충격이었다. 진짜 햄으로 도시락 반찬을 싸 오던 그와는 소원해졌다.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었다.


입시 지옥이던 고등학교 시절과 ‘민중문화’가 대세였던 대학 시절은 그런대로 지나갔다. 대학원에 가 보니 취향의 높이가 넘사벽인 이들이 있었다. 알바 수입을 클래식과 재즈 음반 구입에 쏟고, 서양미술 교양서 따위를 읽으며 따라가려 했지만 뱁새 다리로 황새 쫓기는 무리였다. 유학파 동료들이 미국 학계 이야기를 나누며 ‘프로젝트’를 ‘프롸젝’이라고 발음하는 걸 들으면 반감과 부러움이 교차했다.


202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는 영세 자영업자의 딸로 자랐다. 공부를 잘해서 부르주아의 세계로 들어갔다. 자전적 소설 ‘남자의 자리’에서 교양 넘치는 그 세계에서 느낀 수치심을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이 떠나온 세계를 떠올린다. 무취향 무교양의 아버지는 모든 값비싼 물건을 신성시했다. 그는 “무엇이 아름다운지,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몰랐다. 딸은 아버지가 부끄러웠고 점차 멀어졌다. 아버지가 죽은 후 지갑에서 딸이 2등으로 나온 사범학교 입시 결과가 인쇄된 낡은 신문 기사 조각이 나온다. 아버지가 평생 품었을 기사를 보며 딸은 생각한다. “어쩌면 그의 가장 커다란 자부심, 아니 심지어 그의 존재 이유는 자신을 멸시하는 세상에 내가 속해 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돈으로는 안 되는 문화의 힘을 문화자본으로 개념화했다. 지식, 취향, 능력, 자격 등으로 이뤄지는 문화자본은 가족 속에서 어릴 때부터 체화되는 것이라 노력으로 얻기 어렵다. 단기간에 부자는 될 수 있지만, 교양을 쌓고 고급 취향을 기르기는 어렵다.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이 물질적 전유 능력인 경제자본, 사회적 역량과 관계망을 뜻하는 사회자본과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강화한다고 설파한다. 경제자본이 충분해야 문화자본을 축적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좋은 인맥 등 사회자본을 쌓을 수 있으며, 이는 다시 더 큰 경제자본 축적으로 이어진다.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다. 계급사회가 성장할수록 문화가 계급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핵심 수단이 되는 이유다.


얼마 전 영국 사회의 문화 차이와 계급 불평등을 다룬 ‘계급 천장’이라는 책에 대해 유튜브에서 북토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노동계급 출신으로 엘리트 직업의 세계로 상승한 ‘개천 용’들의 자기 제거라는 주제가 흥미로웠다. 엘리트 직종의 고급문화 취향 속에서 늘 긴장과 스트레스를 겪던 이들이 결국 최상위층으로의 상승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몇년 전 “한국 사회의 지식 생산 체제에 문제 제기”를 한다며 대학을 떠난 나지만, 상위 중산층 출신이 가득한 교수 사회에서 느낀 문화적 긴장도 한몫하지는 않았을까?


독자의 사전 질의 중에 상승에 성공한 이들이 겪는 문화적 스트레스가 과연 중요한 문제인지, 그보다는 아예 상승 궤도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하지 않은지 질문이 있었다. 아픈 물음이었다. 시선을 위쪽의 소수가 아니라 좀 더 많은 이들 쪽으로 돌려보면 우리 삶에서 문화는 과연 어떤 의미인지 묻게 된다. 문화의 불평등이 밥의 불평등 해결 뒤에야 따질 일은 아닐 것이다.


고급문화가 아니라 대중문화의 시대, ‘케이컬처’의 시대여서인지 문화 불평등은 이제 관심을 끌지 못하는 주제처럼 보인다. 아이돌 지망생들의 치열한 경쟁이든, 스타 경영진 사이의 막장 경영권 다툼이든 관심은 온통 산업으로서의 문화로 쏠린다. 그 안의 불평등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문화민주주의나 문화권처럼 문화를 누릴 평등한 권리에 대한 관심은 언감생심이다. 지금도 형편이 안 돼서 피아노 배우기를 포기하는 이들이 있으리라. 원한다면 누구나 노래와 악기, 그림을 배울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문화가 불평등의 무기가 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조형근 사회학자


한겨레 2024년 6월 19일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454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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