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호] 포럼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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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12-15 14:45 조회4,04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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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단상
고등교육 개혁의 절박한 과제들
―167차 포럼 ‘교육 대전환의 필요성과 비전’
김명환(서울대 영문과 교수)
지난 10월 15일의 167차 세교 정기포럼 「교육 대전환의 필요성과 비전」은 토론자로서 배운 것도 많았고 생각거리도 늘어난 자리였다. 포럼 이후 두 달이 지나는 동안 새로운 변화도 있었다.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말 그대로 조각난 상태의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한다.
#1. 고등교육 예산
지난 12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에서 고등교육은 7,554억이 늘어나 6.8% 증가한 반면에 유‧초‧중등교육을 위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무려 11조 8,296억이 늘어나 22.2% 증가했다. 그 이유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이 교부금 규모를 ‘해당 연도 내국세 총액의 1만분의 2,079”라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현실에서 세수가 증가한다는 이유만으로 교부금이 자동으로 증가한다면 부실한 국가 재정운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고등교육 예산 증가분의 대부분은 국가장학금(6,621억)이라서 고등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투자와는 거리가 멀다. 이번 대선에서 고등교육 투자가 쟁점으로 부각되어야 하며 차기 정부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해야 한다. 고등교육 투자는 특정 분야의 투자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이라는 큰 구도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2. 사학비리 척결
고등교육 예산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해결책으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이 반복해서 발의되어왔다. 가장 최근의 법안으로 지난 10월 27일 서동용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 발의한 법안의 제7조는 비리 등으로 학내 분규가 발생한 대학 등에는 보통교부금을 주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사학비리는 단기간에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보통교부금이 전액 거부될 경우 비리사학집단은 오히려 더 강경하게 버티고, 학내 구성원들은 정부가 자신의 학교를 버렸다는 절망감에 자포자기하거나 비리집단에 순응하고 협력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죄 없는 학생들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정부가 보통교부금을 전액 삭감하는 것이 아니라 50-70% 범위에서 감액 지급하는 것이 당장의 대학 부실 운영을 완화하는 동시에 교직원과 학생 등 대학 구성원들이 감액 사유에 대한 책임을 학교 측에 물으면서 대학 민주화에 나서도록 돕는 길이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의 국회 통과 가능성 자체가 희박한 정치 지형이지만, 통과되든 아니든 정부 지원이 사학비리 청산의 동력이 되도록 설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외부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적인 상설감사단을 설치하여 신고된 사학비리에 즉각 대처하는 것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 국회의 두 거대 정당은 한계사학의 퇴로를 열어 줄 사립학교법 개정의 불가피함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비리집단이 폐교를 통해 재산을 챙기면서 복지시설, 평생교육시설 등으로 형태를 바꿔 또 부정을 저지르게 방치하는 일이다.
#3 고교체제 개편
문재인 정부의 원칙 없는 우왕좌왕식 특목고 정책은 대선 교육 공약 중 비교적 쉬운 것마저 내버린 행위였으며, 그 결과 고교체제 개편은 사실상 무척 어려워지고 말았다. 원점에서 다시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며, 과거 박정희 시절의 고교 평준화와 다른, 학생과 학부모의 다양한 수요를 외면하지 않되 평등하고 내실있는 고교체제를 만들어 가야 한다. 기억할 일은, 대선 공약에서 폐지 논의조차 없었던 과학고, 영재고의 여학생 비율이 평균 20% 이하라는 사실이다. 이 하나로도 우리 고교체제가 시대에 뒤졌음을 엿볼 수 있으며, 소위 명문대 이공계나 치·의대에 입학한 남학생들이 왜 그리 쉽게 여성비하적 언행과 경악할 성추행을 저지르는지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4 학술정책
한국의 대학정책에서 가장 소홀한 것이 학술정책이다. 대한민국은 박정희 집권 초기부터 미국 원조를 이용하여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인력 양성에는 적극적인 투자를 해왔지만, 학문 전분야를 아우르는 균형 있는 학술정책이나 인문사회과학정책은 부재했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도 기초과학 연구개발비를 두 배로 늘리겠다는 공약은 거의 실현 단계에 이르고 있지만, 인문사회과학에 배정되는 연구비는 정체되고 있을 뿐이다.
자연과학/공학 분야의 연구자 양성 체제에도 문제는 많지만, 인문사회과학은 집안의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아예 공부길을 외면하게 된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기초학문 인력의 재생산을 위한 대학원 구조조정을 병행하면서 대학원 등록금 면제와 생활장학금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조만간 ‘몰락’에 가까운 지경에 처할 것이며, 국가경쟁력 유지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미국 유학이 국내 수학보다 싸게 먹힌다는 말은 틀린 판단이 아니며, 국내 대학이 해외의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기도 어렵다. 프랑스의 각 지역에 고루 흩어져 있는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는 3만명이 넘는 연구원을 고용하고 있는데, 그 중 25%가 외국인이라고 한다. 인구가 급감하는 현실에서 우리의 대학도 해외에서 인재를 유치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내국인 인재도 공부를 포기하거나 해외로 나갈 지경인 것이다.
#5 서울대 문제
최근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복수의 대선 후보가 서울대 지방 이전을 검토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서울대를 옮기고 현재의 관악 캠퍼스에 아파트를 지어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보도조차 있었다. 고등교육정책의 전망 결여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발상이다.
서울대 문제를 해결해야 한국의 대학 문제 해결이 가능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공룡과 다름없는 서울대가 이질적 집단들로 구성(혹은 분화)되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겉보기에 화려할지 몰라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활력을 상실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기초학문 분야, 서울대의 특권을 아낌없이 활용하여 누릴 것을 누리고 있는 응용학문 분야를 구분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을 구분해서 각각 적절한 정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당일 포럼의 발제자인 이재영 교수의 논지처럼 우리는 ‘대전환’을 앞두고 있다. 이제 고등교육정책은 기후위기 극복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감당할 인재 양성, 수도권 중심 성장이 아닌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거시적 국가 전략 위에서 내실을 다지는 대전환을 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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