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호] 학술동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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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12-15 14:48 조회4,17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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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2
개벽으로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상사
한영인(문학평론가)
최근 서구 근대가 맞닥뜨린 한계를 우리 고유의 사상적 자원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다. 2021년 9월 4일 원광대학교에서는 ‘개벽의 시선에서 다시 쓰는 한국근현대사상사’라는 제목 하에 그와 같은 지향을 공유하며 공부모임을 꾸려온 학자들이 함께 연구한 내용을 중간결산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총 열한 명의 발표자와 여섯 명의 토론자가 참여한 학술대회였던 만큼 다양한 주제와 대상을 망라한 연구들을 선보였다.
원광대 박맹수 총장과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김정현 소장의 환영사로 문을 연 행사(세교연구소/원광대 공동주최)는 탁사 최병헌의 서구문명에 대한 인식과 그 연장선에서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 허남진의 발표로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허남진은 이 발표에서 서구 문명의 모태로서의 기독교와 그 문명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 질서의 수립을 탐구했던 탁사의 사상을 면밀하게 검토함으로써 한국근현대 사상사가 서구 근대와의 만남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벼려갔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종교와 정치와의 관련성에 주목한 논의는 장진영의 「정산 송규의 개벽사상과 전개」에서도 이어졌다. 장진영은 여기서 정산의 『건국론』에 주목했는데 그에 따르면 정산의 건국론은 새로운 국가를 열어가는 시점에서 도덕을 체(體)를 삼고 정치를 용(用)을 삼아 근본정신의 확립과 마음의 혁명을 통해 궁극적인 새로운 국가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보는 관점을 제시한 글이다. 장진영은 정산의 관점을 백낙청이 분단체제의 변혁이나 통일에 있어서 ‘변혁적 중도주의’를 주장하며 마음공부를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위치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했다. 한편 김선희는 「통제의 윤리에서 규약의 윤리로: 최성환의 중인(中人) 결사와 권선서 출판」에서 유교에 의해 주변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던 한국의 도교 사상을 재조명하면서 최성환의 권선서(勸善書)를 매개로 한 세속윤리의 창안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주기도 했다.
동학과 개벽에 대한 다각도의 검토는 이번 학술대회의 큰 줄기를 이루었다. 박소정의 「동학・천도교의 철학적 근대 : 손병희의 ‘개벽’ 개념 연구」는 최시형과 손병희의 교설 자료를 중심으로 개벽 개념 속에서 “철학적 근대”에 대한 전망이 전개되어 가는 과정을 개념사적으로 고찰하였으며 허수의 「개벽 주도층의 억제된 욕망 : 후천개벽론을 중심으로」는 1910~20년대의 천도교 출판물들, 대표적으로 혁신파와 신파의 이론가인 오지영, 이돈화 및 천도교 청년층의 언설을 중심으로 1920년대의 개념화 양상을 다루는 지성사적 작업에 주력했다. 그리고 정혜정은 「김형준의 동학사회주의와 인간주체론 : 변증법적 사상변천론과 네오휴머니즘을 중심으로」에서 1930년대 초 사회주의와의 사상논쟁의 중심에 섰던 김형준을 중심으로 일제하 동학사상의 사회주의적 전개 양상을 치밀하게 살폈다. 이 발표들은 공통적으로 동학의 종교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동학 내외부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담론들을 객관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동학 연구에 있어 지속적인 참조점이 될 중요한 연구들이었다.
강경석의 「도산 안창호의 점진혁명론」과 백영서의 「경계를 횡단하는 조소앙과 변혁적 중도주의」는 한국 현대사에서 미진하게 평가되어 온 도산과 조소앙이라는 두 정치인/사상가의 면모를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새로운 담론의 관점에서 되살리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강경석은 도산의 사유를 따라 동양평화의 구조적 지속에 이바지할 수 있는 독립국가, 세계평화의 중심이 되는 동양평화를 실현하려면 현재로선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이 당면과제로 되며 이때 분단체제를 보다 상위에서 규정하고 있는 자본주의세계체제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인식은 피할 수 없는 선결조건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고, 백영서는 ‘변혁적 중도주의’를 세계체제의 한 양상인 일본제국의 식민지배의 문제점을 철저하게 인식하면서 그에 대해 개량이 아닌 변혁을 지향하되 양 극단을 배제한 ‘정도의 중간 길’을 추구한 이념이자 실천노선으로 규정한 뒤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이와 같은 ‘변혁적 중도주의’의 관점에서 재검토했다.
이번 학술대회의 다른 큰 줄기 중 하나는 문학이었다. 한용운, 김수영, 신동엽 세 시인을 검토한 발표는 문학에 대한 사상사적인 접근의 범례를 보여주었다. 먼저 조성환은 「만해 한용운의 님의 형이상학과 생명평화사상」을 통해 만해의 작품에 나타난 ‘님’의 의미를 한국사상사, 그 중에서도 특히 동학사상과의 관련 속에서 고찰했으며 황정아는 「김수영과 근대의 이중과제」에서 여전히 김수영을 근대성과 연결시켜 살필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는 한편 더 나아가 김수영을 통해 근대성을 다시 들여다보자고 제안했다. 특히 김수영이 보여주는 ‘이상한 역설’을 통해 그가 ‘회고주의자’가 아니면서도 ‘근대성(현대성)에의 도피’에 저항하려 했으며 더 나아가 이 땅에 ‘거대한 뿌리’를 박는 방식을 통해 또 다른 종류의 ‘근대성(현대성)’을 도모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이정숙은 「신동엽의 근대정신과 정치적 언어」에서 한국근현대사상사라는 관점에서 신동엽의 시정신을 어떻게 다시 독해할 수 있을지를 탐문했다. 이정숙은 이를 위해 먼저 ‘개벽 사상’을 통해 신동엽의 문명관을 검토하고 근대의 적응과 극복이라는 이중과제의 측면에서 신동엽의 시적 언어가 지닌 현재성을 도출하는데 주력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서구 근대의 규정력을 관념적으로 기각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근대를 내적으로 상대화하고 극복할 수 있는 사상의 잠재력을 우리 고유의 역사적, 사상적, 문학적 실천 속에서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다양한 주제와 대상을 아우른 만큼 각각의 논의들이 유기적 통일성을 체현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세계를 희구하며 치열하게 고투했던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감각되는 ‘정치적 영성(靈性)’의 뚜렷한 존재감은 이 간단치 않은 프로젝트가 헤쳐 나갈 앞날에 응원과 기대를 걸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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