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호] 학술동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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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7-14 16:45 조회3,12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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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1
‘개벽’의 학술적 의미와 실천
이정숙(현대문학 연구자)
지난 2019년 봄 ‘한국근현대사상사’ 연구모임이 꾸려지고 나서 3년 동안 공부한 결실이 『개벽의 사상사-최제우에서 김수영까지, 문명전환기의 한국사상』(창비, 2022)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공부모임은 최종적으로는 사상사 집필에 이른다는 목표로 출발했지만, 지난 3년간의 시간은 ‘개벽 사상’이라는 화두를 풀기 위해 역사, 철학, 종교, 문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의 전공자들이 저마다 경험한 ‘근대’를 학술적으로 벼려보는 간단치 않은 과정이었다. 지난 7월 7일에 있었던 공개 심포지엄 <‘개벽의 사상사’, 이룬 것과 이뤄야 할 것>은 『개벽의 사상사』에 대한 서평 형식을 띤 학술 토론회로, 1부는 백민정, 김용휘, 김성문 세 분의 발제를 듣고 2부는 ‘원탁토론’으로 진행됐다. 발제문들이 저작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놓인 위치를 점검하는 엄중한 질문을 던진 때문인지, 개인적으로는 지난 3년간 연구모임이 거쳐 온 고민 속에 노정된 애초의 막막함이 환기되었다.
첫 발제자인 백민정의 질문은 ‘위기의 진단과 처방, 문명 전환기의 사유들’이라는 제목이 함축하고 있듯이 ‘문명 전환기’라는 열쇠어 속에 핵심이 담겨 있다. ‘문명’은 연구모임에서도 ‘영성(靈性)’ 및 ‘영성적 근대’와 더불어 씨실과 날실처럼 공부 과정 내내 가로놓였던 용어들인바, “19세기 이후 우리 사상사에 무엇인가 내재적인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 발제자의 자의식은 연구모임에서도 공유한 것이었다. 발제자는 문명전환기를 현재와 연결 짓는 사유 혹은 학술 담론에 연구자의 지적 욕망이 개입하지는 않는지를 점검하면서 ‘개벽’ 개념에 접근한다. 그가 ‘개벽’ 개념의 최대치를 ‘창조적 폭발성/폭발적 창조성’이라고 규정한 점에서도 깨달음이 있었지만, 개벽사상이 19세기 민중들이 지닌 정치적 감각들과 만나는 지점에 대한 설명이 매우 흥미로웠다. 동학과 신흥종교 사상들이 “유교가 제공하지 못하는 윤리의 사각지대”를 보듬고자 하는 “민중친화적 윤리”로 민중에 다가갔다는 해명이, ‘문명’에 대해 접근할 열쇠를 쥐어주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저작 전반의 의미를 관통하는 쟁점들로써 그가 분석한 ‘公私之間, 有無之間, 自他之間’의 개념이 개벽의 과제 속에서 차지하는 바가 오롯이 더 잘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두 번째 발제자인 김용휘의 「한국현대사의 새날 열기―가슴에서 우주가 열리다」는 현재적 관점에서 『개벽의 사상사』가 지닌 의의를 점검하는 글로, 오늘날의 기후위기, 생태위기, 양극화와 전쟁위기 등 문명의 갈림길에서 개벽사상을 계승할 방법론과 보완책을 제시한다. 발제자 자신이 농부로서, 학자로서 겪는 일상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직면한 ‘마음의 위기’가 수운이 제기한 ‘각자위심(各自爲心)’의 문제에 이미 담겨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현재 부상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길을 가로막는 벽일 수 있음을 ‘급박해지는 마음’이라는 표현으로 맞세운다. 그는 ‘개벽의 사상(가)’들의 공통점이 종교적 영성과 사회변혁을 동시에 추구한 점이며 이점이 서양 근대적 문법에서는 다분히 이질적인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실상 “만민평등에 입각한 개인수양”이라는 견지는 ‘개벽’을 이해하는 하나의 ‘독법’이(라는 점을 연구모임에서 배웠)다. ‘성찰’을 넘는 수양이 민본과 민중을 놓치지 않고 근현대사를 관통했기에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이라는 이중과제에 대한 실천적 사례가 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발제자인 김성문의 「한국현대사상사연구, 왜&어떻게―외부자의 시선」은 해외에서(City University of Hong Kong) 정치철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동아시아 철학과 사상사 연구가 여전히 소수자의 학문임을 피력하면서 현재적 관점에서 적실성을 갖는 ‘개벽’의 의미를 묻는다. 철학개념으로서 ‘개벽’은 아직 낯설다고 밝히면서 조심스레 이의를 제기하는 지점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외부자로서의 자의식 배면에 놓인 우리 내부의 문제부터 발본적으로 살펴보려는 의식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 및 모종의 ‘자기 교육’에 대한 인식을 표방한 점이 와닿았는데, 그가 밝힌 대로 “『개벽의 사상사』에서 ‘개벽’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제시된 근대는 한국인이 체험한 독특한 근대”이고 분단체제의 고난을 거치면서도 좋은 심성으로 이어져 온 사상사적 자산을 좀더 일상의 습속으로 체질화하여 전승하지 못한 데서 생긴 모종의 ‘단절’이 뼈아프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소 ‘과도한’ 비판이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은 어떠한 철학 연구와 지적 작업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줄 철학자 혹은 사상가로 성장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제기로부터 탐구심이 새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부의 토론에서는 ‘심학(心學)’을 예시로 같은 기표에 대한 상이한 해석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와 연동하여 한국인이 사유하는 언어 자체가 서양의 언어에 오염이 된 채로 용어 해석에 오류를 낳는 지점들에 대한 인식과 해명이 필요하다는 점이 제기되었는데, 이 점은 연구모임에서도 유사하게 논의된 바 있다. 근현대사상사 100여 년 동안 숱한 용어들이 원뜻에서 점점 멀어지고 잊혀지는 문제를 비롯하여 용어의 역사성 자체가 하나의 학술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한편 동아시아에서 말하는 ‘사상’과 서양의 ‘철학’ 중 어느 쪽이 상위 코드로써 가능할까 하는 물음을 던져보았을 때, 잠재적으로 ‘철학’은 변환될 수 있으나 동아시아의 ‘개벽 사상’은 서양 철학의 코드로 변환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이와 더불어 무엇보다 중요한 언급은 “근대적 이중과제의 수행과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과 변혁적 중도주의의 실천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개벽’의 차원까지 가지 않고서는 해결이 어려울 것”(백낙청)이라는 문제제기였다. 『개벽의 사상사』가 현재의 문제의식으로부터 노정을 시작했던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개벽의 사상사』에 이은 제도권 학술장의 지속적인 화답에 이어 ‘개벽’이 살림살이의 작동 윤리로 거듭나기를 기원해본다. 이번 심포지엄이 남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바로 이를 실천할 방법을 강구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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