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호] 포럼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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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10-27 17:59 조회2,76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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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단상
장애인 인권 운동 최전선에서 돌아본 역사, 내다본 미래
―176차 세교포럼: ‘역사에서 희망을 만나다 : 장애인 인권을 만나다’
한영인(문학평론가)
제176차 세교포럼에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박옥순 사무총장을 초대해서 장애인 인권운동의 역사와 현황,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주제 삼아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했다. 올해 초 일어난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는 과거와 다르게 커다란 사회적 ‘논란’으로 비화되었다.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전장연을 겨냥해 정치적 공세를 퍼부으면서 ‘불순한 장애인 단체의 탐욕 vs 선량한 시민들의 피해’라는 대립구도가 만들어졌고 날선 증오와 혐오의 반응들이 선정적으로 부각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장연이 내세웠던 요구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그 요구가 얼마나 타당한지, 만약 그것이 타당한 요구라면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지에 대한 차분한 토론의 기회를 우리 사회는 거의 마련하지 못했다.
박옥순 사무총장은 준비한 발표 자료를 통해 장애인 인권담론이 시대에 따라 변화한 양상과 그 변화를 이끌어 온 투쟁의 역사를 자상하게 짚어주었다. 내용 중에는 내가 전혀 알지 못했거나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1984년 김순석 열사가 ‘도로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함으로써 한국사회가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처음 대면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박 사무총장의 발표는 이동권 투쟁의 역사를 거쳐 장애인 노동권에 대한 주제로 옮겨갔다. 노동을 시장 원리 내에서 이윤 창출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넘어 장애인의 ‘노동할 권리’를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권리중심노동이라는 개념은 특히 포럼에 참여한 회원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이번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에는 탈시설 관련 예산을 확보하라는 요구가 담겨 있었다. 이준석을 비롯해 전장연 시위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왜 이동권 투쟁을 한다면서 거기에 탈시설을 비롯한 다른 의제를 끼워 넣느냐고 전장연을 성토했지만 이동권 투쟁과 결합시키지 않았다면 탈시설이 사회적 의제로 이만큼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홍은전의 칼럼모음집 『그냥, 사람』과 장혜영 감독의 『어른이 되면』을 통해 ‘탈시설’에 대한 문제의식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수많은 장애인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시설에 갇혀 일생을 보내는 현실은 분명 야만적이었다. 중증 장애인들도 한국 사회의 동등한 시민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며 좋은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당연한 주장도 시설의 높은 담벼락을 넘지는 못했다. 하지만 중증 장애인을 돌봐야 하는 가족들이 어쩔 수 없이 시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었다. 발표에 이어지는 토론에서 나는 탈시설을 둘러싼 쟁점들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물었고 박옥순 사무총장은 중증 장애인들이 지역 사회에 완전히 통합되어 자립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답변했다. 탈시설에 대한 공포는 중증 장애인 가족 구성원을 오롯이 혼자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증폭된다. 따라서 국가와 지역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탈시설의 명분이 아무리 정당해도 현실에서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옥순 사무총장의 발표 자료에는 “예산 없이 권리는 없다!”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펄럭이는 사진이 있었다. 장애인 인권 운동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을 요구하지만 그 전환된 인식이 실질적인 조치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큰 힘을 지닐 수 없다. 그리고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하다. OECD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한 장애인 예산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까 기다려보라’는 말이 한가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양환승 부장판사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박경석 전장연 대표에게 징역 4개월의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박경석 대표과 전장연은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10월 20일에 출근길 시위를 벌였다. 다시 지하철이 멈췄고 사람들은 전장연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우리가 잊고 지내는 사이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장애인과 시민들 사이의 드잡이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이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다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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