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호] 회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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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7-13 11:46 조회3,4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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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미중 대립 시대, 동아시아론의 재구성을 생각할 때
―이욱연 회원을 만나다
이진혁(창비 문학출판부)
이진혁: 이욱연 선생님 안녕하세요. 얼마 전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강연하신 것 잘 보았습니다.(웃음) 중국 전문가로 인기가 높으셔서 많은 미디어에서 찾으실 것 같아요. 올해 초에 세교연구소 이사로 취임하셨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직접 인사할 기회가 아무래도 적었을 것 같습니다. 세교 회원들께 인사를 겸해 근황을 들려주세요.
이욱연: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올해가 한중수교 30주년인 데다 문화갈등 같은 한중관계 이슈가 많아서 잡다한 일이 늘어났습니다. 예전에는 잡지나 언론에 글을 쓰며 중국 이야기를 전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오디오·비디오로 대중과 만나는 경우가 확연히 늘어나는 듯합니다.
이진혁: 작년 세교포럼에 중국 작가 딩링(丁玲)에 관한 토론자로 참여해주신 바 있습니다. 문학과 정치에 관한 말씀들이 무척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요. 요즘은 어떤 연구과제에 집중하고 계신지요.
이욱연: 작년에는 딩링으로 세교 회원들을 찾아뵈었지만 요즘은 루쉰(魯迅)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근대 이중과제 차원에서 루쉰을 읽는 작업을 해왔고 최근에는 루쉰과 이광수를 같이 보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 논문을 한편 쓰기는 했습니다만, 쉽지 않네요. 한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동아시아 근대에 대한 두가지 다른 대응으로서 살펴보려는데, 루쉰과 이광수가 워낙에 다른 면이 있어서 어렵습니다. 이게 학술적인 차원에서 하는 작업이고, 대중서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학술서와 대중서를 번갈아 써왔는데 이번에는 어쩌다보니 동시에 집필 중이에요. 미중대립 시대에 한국인이 어떻게 살아갈지, 이 문명 전환기에 어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지, 그리고 중국의 원리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해할지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이 흔들리거나 신흥세력이 일어날 때 위기를 맞았지요. 미중대립 시대가 최소한 50년 이상 지속된다고 할 때 한국인이 지녀야 할 사고에 관한 대중 학술 에세이입니다. 제가 이런 지식 소매상 역할을 많이 합니다.
이진혁: 한중관계는 세교연구소의 중요한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정권이 바뀌며 한중관계의 진로가 더욱 갈피를 잡기 힘든데, 선생님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이욱연: 한중관계는 문재인정부때부터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난 정부를 흔히 ‘친중’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중국몽에 함께하겠다’는 문대통령의 베이징대 연설이나 노영민 대사의 일부 발언 때문에 ‘친중정권’으로 이미지상 몰린 면이 있지만 실제 한중관계는 안 좋았어요. 보수세력이 ‘친중’이라는 프레임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셈이죠. 현재 윤석열정부의 대중국 기본 원칙은 ‘상호존중’입니다. 중국이 한국을 존중하기를 바라며 세운 원칙이겠으나, 중국은 상호존중을 ‘중국의 특수한 상황과 국익을 한국이 존중하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오히려 중국이 좋아하는 방향이지요. 모호한 상호존중이라는 말만 있을 뿐 새 정부의 중국 전략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실체가 없습니다. 게다가 ‘가치외교’를 하겠다는데, 저 같은 외교 문외한이 봐도 외교의 궁극적 목표가 ‘국익’이 아니라 ‘가치의 실현’이라는 건 이해가 안 됩니다. 패러다임 전환기인 지금 전략적이고 유연한 사고와 외교가 필요한데 오히려 더욱 경직되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진혁: 한국에서 팽배한 중국혐오(혐중) 정서도 빠질 수 없는 문제 같습니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혐중정서 때문에 중국을 균형감 있게 바라보려는 시도 자체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욱연: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인 열명 중 일곱명이 중국을 싫어한다고 해요. 물론 시 진핑 집권 이후 중국이 강경해진 면이 있고, 코로나19로 인해 중국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흐른 면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중국 비판은 거의 ‘묻지마’ 수준입니다. 자극적인 언어로 중국을 비난하지 않으면 누구도 중국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아서 중국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조차도 불가능해요.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우선 중국을 강하게 비판해야만 발언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을 깊이 있게 보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고,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개입이 설 자리가 사라져갑니다.
이진혁: 정치나 대중문화 영역에서 혐중정서는 쉽게 감각이 되는데 학계에서는 어떨지요. 연구의 영역에서 중국은 지금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이욱연: 우선 연구에 대한 수요가 많이 줄었습니다. 중국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의미없다고 보는 분위기가 있어요. 예전에는 ‘그래도 중국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다면 지금은 ‘중국, 그 뻔한 걸 연구해서 뭐해’ 하는 식으로 변했습니다. 미중 대립 속에서 중국을 연구하고 이해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는데 지금 연구의 수요는 한쪽으로 지나치게 편향되거나 소실되고 있어요.
이진혁: 이러한 혐중 분위기는 얼마나 이어질 거라고 보시는지요. 그리고 미중 대립이 세계적인 냉전체제를 다시 불러올 것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이욱연: 혐중정서는 상당히 오래 이어질 것 같습니다. 미중 대립은 격화될 거고, 지금 상황에서 중국체제가 변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시 진핑 체제도 최소한 한차례는 더 연장될 것이라 단기간의 국면전환은 어렵습니다. 미중 대립이 심해질수록 긍정적 미국인식과 부정적 중국인식이 시소처럼 연동하는 상황이 늘어날 것입니다. 미국에 대한 선호도·의존도를 조사해보면 한국인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에요. 그래서 미중관계가 악화되면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듯합니다. 그런데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마지막 해에 미중관계가 무척 험악했지만 그해 월가의 중국 투자는 최고를 기록했어요. 경제적으로는 디커플링(decoupling)이 안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요새 유행하는 ‘신냉전’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아요. 경제적으로 이미 긴밀하게 동조화되어 있는 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세계적인 경제침체가 심각해지며 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미중 대립을 과거 냉전시기에 빗댄 나머지 상당히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진혁: 그렇다면 더욱 현 상황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긴요하겠습니다. 정치나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혐중정서가 공고하다면, 새로운 인식틀을 마련할 새로운 공부가 필요해보입니다. 어떤 공부가 현 상황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요.
이욱연: 다시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 담론들, 가령 리영희 선생님의 비판적 중국연구의 관점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요즘은 혐중정서에 진보와 보수의 인식론적 공모가 있다고 지적한 『짱깨주의의 탄생』(김희교 지음, 보리 2022)를 비롯한 다양한 책이 출간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도 한국 입장에서 발 딛고 사유하는 중국 연구가 활성화되어야겠지요. 혐중은 중국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내 문제인 측면이 큽니다. 중국을 사유한다기보다 한국의 미래를 설정한다는 차원에서 중국을 논의해야겠습니다.
이진혁: 세교연구소의 여러 논의에 귀를 기울여오신 선생님께 의견을 청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중국 관련해서 세교연구소가 가장 먼저 논의해볼 주제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이욱연: 창비담론에서 동아시아론이 사라진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세교연구소에서도 그렇고 『창작과비평』 지면에서도 잘 등장하지 않죠. 동아시아론을 우리가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보면 좋겠습니다. 필요가 있는데 못하는지, 필요가 없으니까 안 하는지를 터놓고 생각을 나눠보면 어떨까요. 동아시아론을 한번 정리하는 작업이 우선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리고 동아시아론의 유효함에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면, ‘미중 대립 시대의 동아시아론’은 어떻게 재구성할지 고민해봐야겠죠.
이진혁: 선생님의 애정 어린 말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언급하신 김에 간단히 여쭙자면 ‘미중 대립 시대의 동아시아론’은 어떤 특징을 지니게 될까요.
이욱연: 미중 대립 시대를 단순히 양국 사이 패권 대립 시기로만 상정하지 않고, 근대 패러다임을 어떻게 동아시아 시각에서 혁신할지 이 전환기를 빌려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동아시아론이 중국 중심 강화나 중국의 주변 동맹을 통한 중국 포위론으로 흐르지 않고, 새로운 문명적 전환을 위해 한·중·일 동아시아 근대 경험과 사상적 자원을 성찰하는 사상적 방법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진혁: 끝으로 짧은 끝인사를 청하겠습니다.
이욱연: 낡은 이야기일 수 있는데, 한국 지식인 사회에 담론이나 지적 쟁점이 부재하는 시대에 좀더 담론이나 지적 쟁점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역할을 세교연구소가 했으면 합니다.
이진혁: 장마가 이어지는 습한 날씨에 귀한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6/27, 서강대 정하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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