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호]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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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10-27 18:06 조회2,69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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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부끄러움만큼의 정의로움을 위하여
―조형근,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창비 2022)를 읽고
윤여일(제주대 학술연구교수)
때로 한두 단어로만 이뤄질 때도 있지만, 제목은 한 권의 책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다. 때로는 가장 마지막에, 고심 끝에 결정되는 구절이기도 하다.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이 책에서 접한 첫 문장이다. 지난 글들을 모아낸 책이니 본문의 문장들보다 늦게 작성되었을 수도 있겠다. 무슨 뜻일까. 글만큼 삶은 정의롭지 못했다는 고백처럼 들렸다가, 정의롭고자 글을 쓰겠다는 다짐으로도 읽혔다. 표지를 넘기니 프롤로그에 작가는 이렇게 적고 있었다.
글을 쓸 때면 정의를 찾게 된다. 그렇게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내 삶이 글처럼 정의롭지 않다. 그 격차를 부끄럽게 고백하되, 그 사이 긴장과 모순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수밖에 없다. 그런 발언과 고민들이 이 책의 밑거름이 됐다.
고백이자 다짐이었다. 이런 제목과 프롤로그의 책이라면 책을 통해 작가를 읽고 싶어진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 책을 “세상을 비판하는 시론이면서 나를 성찰하는 고백록”이라고 밝혔다. 나는 고백하는 작가를 읽기로 했다.
본문에서 이런 고백들이 눈에 띈다. “너는 얼마나 다르냐는 질문에 스스로 떳떳하지 않다. 비판의 대상에 내가 포함되어 있으니 남 일처럼 나무랄 수 없다.” “이 소수의 메이저 대학 운동권 출신이 기득권이 됐다고 비판하는 것이라면 나 자신도 부족하나마 일익을 맡아왔다. 나의 뼈아픈 자기비판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저하면서도 기득권자들을 향한 그의 비판은 사실 과감하다. 86세대, 남성, 엘리트, (전)대학인, 지식인인 자신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힘 때문이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는 익숙한 관성이 아니라, ‘내가 권력일 수도 있다’는 불편한 통찰이 아닐까?” 작가가 고백한 까닭은 부끄러워서이기도 하겠지만, 굳이 그 고백을 글로 써서 타인에게 꺼낸 이유는 부끄럽기 위해서일 것이다. 부끄러워 한다는 것은 그에게 정의롭고자 한다는 의미이다. 부끄러움은, 그래서 감성적이고 또 지성적인 영위이다.
이 책은 자기기술지의 성격을 띤다. “이 책은 그날 도망간 한 젊은이가 이리저리 세상을 떠돌다가, 자기 딴의 방식으로 찾아온, 돌아온 길이다.” 세상사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지닌 존재가 자신과의 비평적 관계에 들어서서 자신을 구성하고 또 규정하던 사회적 조건들을 성찰함으로써 자기 비평을 통해 사회 비판으로 나아가려는 시도이다.
이 책에서는 작가의 이런 삶이 그려진다. 1980년대 중반 대학생이 되었고, 1988년 사당동 철거촌에서 백골단과 철거용역이 진압하러 오자 “그날 도망간 한 젊은이”가 되었다. 1997~1998년에는 박사과정생이자 연구비 편법 사용을 위해 수백 장의 간이 영수증들을 모아 갖가지 명목으로 보고서를 짜내야 했던 대학 연구소 조교였다. “서른 살까지 딱 서른 번 이사했”던 그는 일제 시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비정규직 연구자와 교원으로 전전하다가, 쉰을 넘어 정규직 교수가 되었으나 1년이 조금 지난 2019년, 사직서를 내고 30년 넘게 머물렀던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파주에서 ‘동네 사회학자’가 되었다.
이 책은 그 선택 이후 3년간의 사색들이 담겨 있다. 그 사색들은 당대 현안에 대한 비판과 30년 간의 자기 삶에 대한 복기가 교직하고 있다. 이 책은 1부 ‘대학과 지식인, 그리고 청년’, 2부 ‘민주주의 리부트?’, 3부 ‘간단하지 않은 대안’으로 짜여 있는데, 사회 비판의 성격이 강한 2부와 3부에서 공통된 주제는 ‘불평등’이며, 이는 1부에서 토로한 ‘86세대’, ‘기득권’으로서의 책임감에서 비롯되고 있다.
20대 남성이야 어떻든 우리가 기득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20대 남성에게 ‘찌질하다’고 힐난하기 전에, 우리가 중산층의 안온한 삶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약자를 위해 무엇을 양보하고 희생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거기에 답해야 한다.
“거기에 답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의 동력이다. 불평등의 사회 문제를 자신에게 건네진 물음으로 받아 안고는 어떻게든 답하고자 한다. 사당동 철거촌의 철거민 금선 할머니를 비롯해 여러 목소리들에 뒤늦게나마 성실하게 응답하고자 한다.
“해결책이 있을까?” 이것이 이 책의 지향이다. 하지만,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주저하고 있다면 주저하기에 주저한다고 쓴다. 답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고민을 소재 삼아 타인과 공유할 사회적 물음을 형상화하고 한다.
신발에 흙이 묻고 몸이 더러워지는 것, 실망하고 실패하는 것, 그것들 없이 우리는 구체적 현실로 나아갈 수 없다. 내적 조망들이 서로 부딪히고 삐걱대지 않으면 우리는 더 나은 구체적 조망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지식인들은 온통 문제시되지만, 그러면서도 부제는 ‘연대사회를 갈구하는 어느 지식인의 자기성찰’일 수 있었을 것이다. 부끄러운 만큼 정의로울 수 있듯 지식인이라는 자기 인식에는 자조감 만큼의 자긍심도 깔려 있을 것이다. 생각하여 쓰고 끊임없이 생각하여 씀으로써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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