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호] 회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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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경석 작성일21-07-29 15:43 조회5,26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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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통일과 평화 연구의 긴 여정과 새로운 시작
―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 박명규 회원을 만나다
김학재(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김학재 : 박명규 선생님 그간 안녕히 지내셨는지요.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정년퇴임하신 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올해 세종으로 이사를 하셨고, 또 3월부터 광주과기원(GIST)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데 세교연구소 회원들께 인사 겸 근황을 들려주십시오.
박명규 : 40년 가까운 교직생활을 마무리 하고 인생의 한 매듭을 짓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학교 중심의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지요.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사하며 아파트 생활을 벗어난 것도 새롭고 뜻깊은 변화였습니다. GIST 석좌교수로서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교양으로서 인문 사회학을 가르치게 된 것은 가르치고 생각하는 방식을 달리하는 또 다른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김 : 큰 변화와 함께 또 새로운 시작을 하고 계시군요. 선생님께선 사회학자로서 오랜 학문 활동을 해오셨지만, 사실 50대에 10여년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일하시며 많은 일들을 열정적으로 이루셨습니다. 통일과 평화 연구를 하시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요.
박 : 2006년부터 만 10년 시간과 정성을 쏟았던 일인 만큼 당연히 여러 생각이 듭니다. 초기부터 염두에 두었던 것은 정말 제대로 된 남북관계 연구기관을 만들겠다는 것이었지요. 분과학문의 이론적 논의에서도 벗어나고 매일의 정치논평식 논의 수준을 넘어서는 전문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면 정치적 당파성이나 한국에서만 통하는 좁은 시야를 넘어서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방향들의 교집합이 가능하려면 뜻을 같이 하는 유능한 연구자들이 장기적으로 공동의 지적 협력을 해야 할 것이기에 서울대학교가 그런 구심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10년간 노력으로 최소한의 틀은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큰 보람으로 생각하지만, 그런 독자적 입지를 연구내용과 활동에서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아쉬움도 있지요.
김 : 연구원에서 하신 일들에 대해 조금 더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통일 분야의 연구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구축하는 여론조사, 지표를 산출하는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어떤 구상으로 사업을 구상하셨고, 이 연구들의 의미와 사회적 기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 : 저는 남북관계에 대한 연구가 정치현안으로서의 표면적 논의나 당파적 정책론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파도처럼 가변적인 현실 너머 좀처럼 포착되기 어렵지만 분명히 작동하는 정서와 가치의 흐름이 있는 것이지요. 정치인과 저널리스트들의 담론과 구별되는 전문적 담론을 생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에 대한 전문적 연구가 정치인의 정책적 논의에 기여하려면 그것만의 독자적 담론과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여론조사나 각종 지표산출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고 그런 객관적인 지적 인프라가 만들어질 때 정책이나 여론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김 :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네요. 오늘날 급변하는 지식생산 환경 속에서 대학의 연구기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려운 과제를 환기시켜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선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융합하여 평화인문학 연구도 수행하셨는데요, 평화 연구가 특히 한반도 문제를 다룰 때 집중해야 할 분야가 있다면 어떤 주제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박 : 평화학이나 평화담론이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논의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분단평화’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불충분하긴 하지만 오랫동안 무력충돌을 관리하고 있는 현재의 한반도 질서도 소극적 평화의 한 차원이지요. 평화는 정전체제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면서 이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노력이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핵 문제에 대해, 북한의 정책선택방식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 말씀해주신 것처럼, 평화학에서 말하는 소극적 평화, 적극적 평화 개념이 낮은 상태의 평화를 더 높은 상태로 만들어가는 과제들을 포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핵문제를 언급해주셨는데, 지난 1년 반 동안 코로나 19가 확산되며 비핵-평화 프로세스는 물론 남북관계나 주변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전되기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무엇이 필요한 상황일까요?
박 : 모두가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저는 현 상황을 타개할 묘약이나 묘책은 있을 수 없다는 냉정한 인식에서 좀 더 근원적인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3년간 큰 기대도 있었지만 냉정하게 지금이 1991년 상황보다 좋은 상황이라고 말하기 어렵지요. 많은 회담과 합의에도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이나 정책논리를 총체적으로 재점검하는 작업에서 시작했으면 합니다. 외부 탓을 하거나 당위적 명분론에 집착하는 관성적 사고를 벗어나지 않으면 또다시 겉돌 가능성이 크지요. 이 점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는 문제이지만 남북관계 개선에 더 많은 노력과 고민을 해온 진보진영에서 더욱 필요한 자세라 생각합니다. 저는 남북관계의 진전과 후퇴에 있어 북한의 책임과 몫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의 달라진 생각과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관성적 사고, 당파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필요해 보입니다.
김 : 뼈아픈 지적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통일문제와 관련해 선생님이 연구해 오신 내셔널리즘 문제를 넘어갈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또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내셔널리즘의 의미와 특성에 대해 진단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 : 세계적으로는 디지털 네트워크로 전 세계가 연결되면서도 사회문화적 대립과 정치적 분열은 더 심화되는 흐름이 보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이런 이중성이 더 심하고 한반도는 분단상황으로 그 모순이 더 가중되고 있습니다. 우리 경우 내셔널리즘과 민족주의는 구분해서 써야합니다. 같은 헌법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한국의 국가단위로 같은 정체성과 정책지향을 보이는 것과 역사 문화적으로 남북한이 같은 민족에 속한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추구하는 또 다른 집합적 정서 사이의 간격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민족과 국민이 같이 가는 일반적인 상황과는 달리 ‘대한민국 내셔널리즘’과 ‘남북한 민족주의’는 질적으로도 다르고 현실적으로 작동되는 방식도 차별적입니다. 한국은 앞으로도 민족주의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강한 영향을 받을 것이지만 국가주의적 정서와의 긴장과 모순도 커질 것입니다. 민족주의는 분단이나 냉전과 같은 상황을 돌파하는 힘이 있지만, 외부를 향해서는 통제되기 어려운 정서이기도 해서 핸들이 잘 듣지 않는 자동차 같은 양가적 측면을 어떻게 다룰지 숙고해야 합니다.
김 : 선생님께서는 통일, 평화, 민족주의 외에도 코로나 19 사태로 우리사회에 다가온 변화중에 “포스트 휴먼”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계신데요, 선생님의 포스트-휴먼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요?
박 : 지난 몇 년간 기술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의 중요성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그와 더불어 문명론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요. 국가중심, 개인중심, 시장중심 논의를 넘어서 우리의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문명적 차원을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이 이런 생각을 더욱 절실하게 했다고도 여겨집니다. 이런 개인적인 관심 변화 과정에서 포스트 휴먼 담론을 만나게 된 것인데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오늘날까지 우리의 문명적 가치는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에 기반한 것이어서 발본적 성찰에 필요한 논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상황은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재인식이 불가피함을 보여줍니다. 여전히 휴머니즘의 가치를 중시하는 저로서는 휴머니즘을 폐기하자는 주장으로 나갈 수는 없지요. 다만, 비인간적 존재들, 자연과 기계와 동식물과 환경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반성과 성찰이 없으면 휴머니즘의 가치 자체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포스트 휴먼 시대의 휴머니즘을 고민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김: 통일, 분단, 평화와 민족주의 논의에서부터 포스트 휴먼에 대한 고민까지 중요한 의견들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한 주제들은 우리 세교연구소의 관심사와도 여러 면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겸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박 : 준비만 하다가 마무리 못한 작업이 두엇 있는데 국민, 시민, 인민개념을 다룬 작업에 이어서 ‘사회’ 개념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 그 첫번째이고 통일국가 단계 이전의 남북한 평화공존의 가능한 체제형식을 다루어 보려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GIST에서 ‘문명으로 본 21세기’라는 강의를 하고 있는데 미래 세대에게 어떤 전망을 줄 수 있을지 실존적 쟁점에 대한 공부도 가능하다면 정리해보고 싶은데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민족주의의 힘을 어떻게 활용하고 제어할지에 대한 관심도 피하기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에너지를 집중해서 저술작업에 매달릴지, 좀더 자유로운 내 삶을 즐기면서 여유를 가질지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웃음) 앞으로 세교연구소의 여러분들과도 소통하면서 문제의식을 나눠볼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어려운 시기인 만큼 무엇보다 건강하시길 바라겠고요.
김 : 여전히 중요한 주제에 대한 감각과 학문적 열정을 갖고 계신듯하여 즐겁게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풍요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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