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호] 학술동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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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12-15 14:47 조회4,0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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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1
몽골 연구의 새로운 진전
이남주(세교연구소 소장)
얼마 전 우리 연구소 백지운 회원이 몽골 학자들과 공동으로 편한 『몽골의 체제전환과 동북아 평화지정학』(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1)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2017년부터 진행한 몽골과의 학술교류 결과물이다. 앞으로 이 방면의 연구가 심화 확장될 필요가 절실하다는 점이 학술동향 소개로 이 글을 내보내는 중요한 이유이다.
이 책은 정치와 경제, 그리고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 등의 영역에서 냉전체제 해체 이후 몽골 공화국(1992년 이전에는 몽골인민공화국)의 변화과정을 다루었다. 필자가 과문한 탓일지 몰라도 몽골의 최근 변화를 이처럼 종합적이고 깊이 있게 다룬 책은 한국에서는 처음이지 싶다. 이 글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대륙 깊숙한 곳에서 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몽골이 새로운 국제환경 속에서 주체적 위치를 확보하고자 경주해온 노력과 그 성과에 대한 논의이다. 백지운은 서문에서 몽골에서 진행된 “체제전환의 더 큰 의미는 냉전시기 몽골의 어깨를 짓눌렀던 고립의 멍에를 벗고 자기와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조직함으로써 ‘갇힌 자’에서 ‘연결하는 자’로 자기 정체성을 바꿔낸 데 있었다”(25쪽)고 평가했다. 이것이 책 제목에 ‘동북아 평화지정학’이라는 표현이 더해진 이유이다.
한국인에게 몽골은 국가의 명칭이기 이전에 사유를 대륙으로 확장시킬 수 있도록 하는 기호로서 역할을 해왔다. 몽골의 침입을 받았던 불행한 역사가 있었음에도 이것이 가능했던 데는 몽골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국 간 경쟁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동병상련의 감정도 일정한 역할을 했지 싶다. 몽골은 대륙의 여러 세력을 연결시킬 수 있었던 그 지리적 위치로 인해 매우 고달픈 역사적 과정을 겪었다. 중국 청조의 통치를 받던 몽골은 17세기 초 러시아의 동진이 시작된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권으로 나뉘어졌다. 중국의 신해혁명 이후에야 현재 몽골의 영토에 해당되는 지역(중국에 속한 내몽골과 구별해 외몽골로도 불림)에서 자치 단계를 거쳐 1921년 독립 국가를 수립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소련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독립된 주권 국가로서의 지위를 온전하게 누리지 못했다. 그렇지만 독립 과정에 러시아의 지원이 컸기 때문에 몽골의 러시아에 대한 인식은 지금도 긍정적이라고 한다(213쪽).
냉전체제가 해체된 이후 몽골은 비핵지대화, 비동맹, 그리고 제3의 이웃이라는 외교 독트린을 발전시키고 이를 실행함으로써 주권 안전을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평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연결국가로서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현실화시켰다. 국토면적은 세계 18위(156만 ㎢, 남한은 10만 ㎢)에 달하지만 인구는 약 330만 명에 불과하고 1인당 GDP도 약 4천 달러에 머무르고 있는 국가가 독자적 외교 독트린을 만들고 이를 실행해왔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이 책에 실린 몽골 필자들의 글에서도 이러한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최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되었다고 자축하지만 외교적으로나 안보적으로 이렇다 할 독자적 독트린을 제시하고 못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대비된다.
한 몽골 필자는 현실주의와 일정 정도의 이상주의를 결합시킬 수 있었던 것을 이러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의 하나로 평가했다(44쪽). 이 ‘이상주의’의 역할은 적지 않다. 몽골 대외정책의 현실주의적 측면은 무엇보다 자신이 대국(러시아와 중국)들 사이의 완충국가로서의 위치에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한 데 있다. 이상주의적 측면은 이러한 지리적 위치를 국가 간 적대행위가 아니라 안정과 협력을 증진하는 도약대로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45쪽)
그리고 대외정책의 실행에 있어서 현실주의는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제3의 이웃이라는 미국 등 다른 선진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외교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여러 대국들과의 관계를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에 도움이 되도록 잘 활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시기 가장 빛나는 성취인 몽골의 비핵지위의 확보도 이상주의의 인도가 없었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기획이었다.
1988년 소련이 몽골 주둔군의 철수를 선언한 이후 몽골은 새로운 안보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이는 1992년 9월 유엔총회에서 몽골 대통령이 자국 영토를 비핵지대로 선포하고 그 지위를 국제적으로 승인받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는 것으로 이어졌다. ‘단독국가 비핵지대’는 전례가 없는 발상이었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승인이 관건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몽골에 이러한 지위를 보장해주는 것이 자신의 핵정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 때문에 몽골의 구상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선제핵공격 옵션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우려가 가장 큰 장애 요인이었다. 다른 나라들이 몽골의 선례를 따를 경우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큰 제약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비핵화를 촉진하고자 조직된 몽골 시민단체 블루베너의 의장인 엥응사이항은 그 사정을 완곡하지만(미국을 바로 거명하기보다는 미국, 영국, 프랑스를 P3로 묶어서 비핵지대 구상에 대한 반응을 서술)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316~325쪽).
그러나 몽골의 비핵지대화를 위한 노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는 컸고 1998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몽골의 국제안보 및 비핵지위’라는 제목의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이 결의안에서는 ‘비핵지대’ 대신 ‘비핵지위(nuclear-weapon free status)’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이때부터 10년 이상 지난 2012년 9월에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주유엔 대사들이 몽골의 비핵지위에 대한 병행 선언에 서명했다.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못하지만 정치적 구속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몽골의 비핵지위가 국제적 승인을 받게 된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몽골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지만 지금까지 문제가 더 심각해진 것과 차이가 큰 결과이다.
몽골의 이러한 성과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몽골의 비핵지위가 손상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미중의 전략경쟁과 중·러협력의 강화는 몽골의 외교적 자율성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제3의 이웃이라는 외교방침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경우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있는 중·러와의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고, 중·러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몽골의 외교적 공간을 축소시킬 수 있다. 둘 사이의 균형을 확보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 몽골이 이에 어떻게 대응해갈지 주목된다.
따라서 몽골의 연결국가로서의 위치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몽골의 국력이 주변 대국들의 계산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따라서 몽골은 자신의 평화와 주권 안전이 유라시아 대륙의 평화에 중요하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를 유지하는 것을 우선적 목표로 삼아야 하고 몽골의 지정학적 역할을 지나치게 높이 설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외정책적 측면에서의 성과-주권안전 및 비핵지위 확보-를 몽골의 지정학적 역할을 높이는 데 활용하기보다는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시키는 데 활용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몽골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생태환경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국가의 근대화, 특히 공업화 모델을 따르기 어렵다. 필자가 몽골의 한 학술회의에 참석했을 때도 몽골 측의 공업화에 대한 열망을 확인한 바 있는데 노동력 부족이라는 문제만으로도 이러한 접근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생태문제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주윤정이 이 책에서 양모산업을 사례로 몽골이 경제발전 과정에서 직면한 딜레마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몽골은 아직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국과 몽골 협력의 새로운 장이 될 만하다. 즉 한국과 몽골 사이에 지정학을 넘어서는 협력, 양측을 더 좋은 사회로 만들어갈 수 있는 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이 유라시아를 더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몽골은 소국이지만 우리를 관성적 사고에서 벗어나도록 지적 자극을 줄 수 있는 상대이다. 실제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와 관련해 몽골의 중립국적 성격과 한반도 접근성으로 인해 하노이보다 먼저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검토된 바도 있다(인프라 부족 문제로 하노이로 최종 확정된 것으로 알려짐). 몽골도 한국에 대해 우호적 감정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서로 상호보완적 성격이 큰 주요 협력국가로 보고 있다. 한국과 몽골의 만남은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책의 출판이 이러한 가능성을 찾고 구현하는 새로운 연구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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