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상반기] 회원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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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0-09-28 15:04 조회7,58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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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개혁과 평화를 연결하는 건강한 세력이 성장해야 한다”
―전 청와대 시민참여비서관 정현곤 회원을 만나다
이진혁
(창비 계간지출판부)
이진혁: 안녕하세요, 멀리서 세교연구소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6월에 공직에서 퇴임하셨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정현곤: 6월 한달간은 정말 한가하게 보냈습니다.(웃음) 특히 딸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딸이 한창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거든요. 계속 한가하게 있을 수만은 없어서 강좌 개설 사업에 지원했는데 채택이 되었고, 9월부터 인하대 정책대학원에서 ‘분단체제와 국내 정치’라는 강의를 진행 중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정책위원도 맡게 되었는데, 저로서는 원래 활동하던 영역으로 ‘복귀’한 셈입니다.
이진혁: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실 줄은 몰랐습니다.(웃음) 우선 회원들을 위해서 그간 어떤 일을 하셨는지 들려주세요. 국무총리실에서 ‘시민사회비서관’으로, 청와대에서 ‘시민참여비서관’으로 근무하셨지요.
정현곤: 각각 맡은 업무는 세세하게 달랐지만, 큰 틀에서는 시민사회와 정부 사이의 소통체계를 만드는 일을 꾸준히 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국무총리 훈령으로 만들어진 ‘시민사회발전위원회’라는 기구가 있습니다. 시민사회의 성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자문기구인데요, 제가 총리실로 들어가서 규정을 개정했어요. 정부 측 위원이 없었는데 6개 부서 차관급으로 신설했고 국장급 관계부처 협의회도 만들었죠. 청와대에 가서는 이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상승시켜 장관급 위원회가 되었지요. 시·도 단위에도 이러한 기구를 만들 수 있게 했는데 서울시가 곧바로 해당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이런 채널들을 통해 정부와 시민사회 사이의 의견을 조율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이진혁: ‘소통기구’를 관리하고 확대하는 데 힘을 쓰신 거네요. 시민사회에 오래 몸담은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통이 이어진다고 해도 시민사회와 정부는 늘 긴장관계인데요, 갈등 상황에 마주하신 적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현곤: 그럴 때는 현장으로 갔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때는 갈등이 완전히 봉합되지 않은 채로 ‘제주해군기지’에서 관함식을 개최하려던 2018년 10월입니다. 일본 해군이 욱일기를 달고 오느냐 하는 문제로 시끄러웠던 그 관함식이죠. 저는 당시에 청와대에서 시민참여비서관으로 막 일하기 시작한 때였는데, 해군기지를 인정하지 않는 시민사회 측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그래서 대통령과 주민이 만나는 간담회를 개최했는데 제가 진행을 봐서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후로도 양측을 오가며 갈등을 조정해 문제가 폭발하지는 않았죠. 사드 문제도 제가 다룬 현안이었습니다.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현장에 가서 깊은 이야기도 나눴죠. 제가 근무하던 2년간은 신뢰가 유지되었습니다.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어 사드가 철수하는 날을 기대해보자고 했죠. 그런데 퇴임하기 딱 하루 전에 경찰력이 투입되고 큰 충돌이 있었습니다. 미뤄왔던 공사를 강행한 건데, 저로서는 소성리 주민들에게 정말 죄송한 마음을 안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진혁: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관함식’과 ‘사드’를 둘러싼 문제였다니 우리 시민사회 역시 동아시아적 사건의 자장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또한 이는 세교연구소의 중요한 논의 주제이기도 한데 세교에서 함께한 공부가 도움이 되셨을 것 같습니다.
정현곤: 세교에서 담론을 공부하면서 현상을 둘러싼 여러 관계들을 세심하게 살펴본 게 큰 도움이 되었죠. 갈등을 관리하고 소통을 매개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진심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걸 배우고 나간 것도요.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더 있는데, 지난해 4월에 있었던 대통령과 시민단체 사이의 간담회입니다. 이는 故노무현 대통령 이후 16년 만에 재개된 회의인데 이때 언론에 공개되는 발언자를 누구로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검찰개혁이 화두였으니 한 사람은 민변 회장으로 쉽게 정했는데, 나머지는 들어야 할 목소리가 워낙에 많아야죠. 장고를 거듭하다가 청년들의 아픈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발언자로 나선 청년이 정말 울분을 터뜨리듯이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언론들이 ‘청년의 눈물’로 소개하면서 많이 회자되었고 이것이 청와대에 청년비서관실이 신설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진혁: 그 장면에서도 문재인정부의 개혁적 행보를 뒷받침한 선생님의 숨은 공로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정부의 개혁성에 관해서는 요즘 특히 이견이 많은 듯합니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정부가 개혁 동력을 상실했다는 비판도 심심찮게 들리고요. 정부 안에서 촛불의 동력이 여전히 그리고 충분히 작동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정현곤: 대통령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봅니다. 저는 개혁의 동력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초기 설계’가 부족한 정책들이 지금 말썽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지요. 처음부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잖아요. 오히려 초기 정책들로 시간을 끌다가 그 결과를 뼈아프게 겪으면서 개혁이 강화되는 것이 지금의 모양새입니다. 가령 다주택자 규제 강화나 임대차 제도 보완이 포함된 이번 부동산 대책은 이전보다 더 개혁적이잖아요.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정교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셈이죠.
이진혁: 그렇다고 과감한 변화나, 인사 교체 같은 결단이 일어나지도 않아 국민들이 답답해하는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정현곤: 개혁을 둘러싼 싸움은 마치 진흙탕 속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치열한데 그 내용이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는 것도 그렇게 느껴지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고 봅니다. 기득권의 저항이 언론을 포함한 사회권력을 지닌 채 이루어지고 있고, 유튜브 같은 데서 만들어지는 가짜뉴스도 너무 많죠. 조국 전 장관 때 보세요. 그때 서초동 촛불이 없었다면 사태가 수습될 수 있었을까요? 민주화된 정부의 권능은 분산되기 마련이고 기득권의 저항을 넘어설 만큼 정부의 개혁은 정교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촛불의 힘이 다시 뒷받침이 되었지만요.
이진혁: 개혁동력이 정부 내에 여전하다는 말에서는 어느 정도 위안을 받게 됩니다. 현 정부가 너무 많은 것들을 고려한다는 인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현곤: 그런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교조 법외노조 논란 같은 것은 많이 아쉽죠. 누가 봐도 잘못된 탄압이었는데 노조로 다시 인정받는 데 3년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서 전교조에서는 박근혜정부하에서 법외노조였던 기간과 문재인정부하에서 법외노조였던 기간을 단순 비교해보면 후자가 훨씬 길다고 서운함 속에 분노를 담아 표현합니다. 시민사회에서도 정부의 개혁성을 논할 때 이 문제가 항상 거론됐어요. 순차적인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이번 대법원 결과이기도 하지만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이러한 소극성은 여기저기서 나타나는데, 『창작과비평』 2020년 여름호에 실린 이남주 세교연구소장과 임종석 전 비서실장 사이 대담(「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의 길」)도 그런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타미플루 지원을 찰떡같이 약속해 놓고선 그걸 싣고 가는 트럭에 대해 미국이 고개를 저으니 그냥 주저앉고 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거죠. 이러한 모습도 바뀌어야겠습니다.
이진혁: 시민사회의 의견 표출은 원활한 편인지요. 진보 진영 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는다거나, 시민사회의 의견 개진이 줄어들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정현곤: ‘정규적인’ 소통 채널은 원활한 것 같아요. 당장 제가 일했던 수석실만 해도 소통하는 일이 목적사업이고 여성과 환경 분야는 잘 가동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어요. 그런데 뭐랄까, 결과가 약하다는 것이 못내 아쉬운데 ‘내용적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야 변화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늘 갖고 있어요. 지금 분출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 중 절반 이상은 ‘노동’에 관한 것입니다. ‘노·사·정’이라는 상층의 틀은 있지만, 정규적인 소통 채널로 노동 영역의 갈등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광장에서 거친 목소리가 자주 표출되고요.
이진혁: 앞으로 한국사회의 공론장 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나 방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정현곤: 지역 단위에서 더 많은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풀뿌리 단체도 더 생겨나야 하고요. 큰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미 대중운동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정책집단화되었습니다. 지역의 단위들이 점차 시민사회의 주력이 되도록 현장에서 소통창구가 마련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생활적인 주체’들이 더욱 중요합니다. 최근 이슈가 된 택배 노동자 과로 문제나 임대차 문제 등이 점점 부각될 텐데 이들 또한 새로운 주력이죠. 지역민이나 사회적 약자들은 모두 생활적인 주체라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습니다.
이진혁: 생활적인 주체가 시민사회의 주력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화제를 잠깐 바꿔보겠습니다. 비서관 재직 시절 딱 한번 세교포럼에 토론자로 참여하셨는데 그때 주제가 ‘북미정상회담과 지방선거 이후 한반도, 그리고 시민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 남북관계는 무척 악화되어 있죠. 이러한 갈등 해결을 위해서 시민사회 차원에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정현곤: 정부가 남북 교류를 어마어마하게 탄압할 때도 故문익환 목사 방북 등이 가능했던 것은 북한에 어느 정도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민간교류의 가치 자체에서 비중이 낮아진 것이 확실합니다. 비상한 고민이 필요하죠. 얼마 전 남북교류 프로그램에 모처럼 토론자로 참여했는데, 그때 향후 북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미리 예측하고 판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발언했습니다. 유엔의 대북제재에 대해서는 지원 단체와 더불어 사회개혁 단체들도 적극 나서서 반대활동을 펼치는데, 이제 이 활동이 민간의 독자적인 국제 활동 영역으로 개척되는 중입니다. 저는 남북교류단체와 시민사회 개혁단체가 결합하면서 그런 기획이 나온다고 봅니다. 그렇게 새롭고도 다양한 독자 영역을 구축하고 북한에서도 여러 파트너를 물색해야 ‘새로운 교류의 라인업’이 짜일 수 있을 거예요. 결국 내부의 개혁과 한반도 평화를 동시에 연결하는 건강한 세력이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진혁: 그러한 건강한 세력 형성에 꾸준히 기여하고 있는 것이 세교연구소와 또 회원들의 활동 아닐까 싶습니다.(웃음) 끝으로 향후 계획에 대해 간단히 들려주십시오.
정현곤: 이제 공부를 더 해야겠습니다. 연구도 하고 강의도 하고요. 제 박사논문 주제가 6·15 남측위원회의 활동이 열어젖힌 자율공간과 남북연합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러한 거버넌스에 대한 탐구를 더 깊이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접경지역에서 이뤄지는 지자체와 민간교류 관련 연구를 하고 싶어서 신청 중인데 이 또한 가능하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연구나 교육이라는 면에서 시민사회를 튼튼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진혁: 꼭 그렇게 되리라 믿고, 그렇게 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년 9월 16일, 세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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