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도 4월]포럼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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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04-27 15:04 조회5,8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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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단상
동상이몽 속에서 다른 의료 찾기
― 160차 세교포럼 ‘코로나 시대의 의료공공성,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백영경
(제주대 교수)
한국의 일반인들이 원하는 다른 의료, 좋은 의료란 무엇일까. 의사나 병원에서 겪은 끔찍한 경험담 하나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현재의 한국 의료에 불만은 만연해 있지만, 그렇다고 대안적인 의료의 상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코로나 19로 공공의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높아졌지만, 공공의료를 어떻게 실현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공공의료를 요청하는 시민의 목소리 속에 싼값에 아무 때나 내가 원하는 의료의 혜택을 누리고 싶다는 불가능한 꿈이 섞여드는 장면도 종종 보게 된다. 사람의 목숨이 중하지 돈이 중하냐고들 하지만, 현실의 공공의료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인력의 문턱을 넘지 못하며, 공공병원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감염병에 걸리기 전까지 시민들이 선호하는 병원은 공공병원이 아니다.
1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19로 적어도 의료분야에서는 공공성이 크게 강화될 줄 알았던 희망 섞인 예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전혀 변화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각 지자체가 공공병원 설립을 약속하고 추진하고 있는 것은 수년 전 진주의료원 사태와 비교할 때 큰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하지만 공공의료를 확충하겠다는 정부는 공공병원 확대 예산은 전혀 확보하지 않았지만,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의 확대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한국판 뉴딜의 3대 프로젝트와 10대 중점과제 가운데 하나로 밀어붙이고 있다. 여전히 이어지는 코로나 19 재유행 속에서 현장은 여전히 인력과 지원의 부족과 지속불가능성을 호소한다.
공공의대에 반대하여 코로나 19 위기 속에서도 파업을 감행한 의사들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공공의대가 해결책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공론화가 이루어진 적도 없다. 실제로 시민들의 의견 역시 공공병원이 적자가 발생해도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며, 향후 코로나 19와 같은 감염병을 예방 및 관리 지원방안으로는 감염병 전문 병원 설립보다는 백신 접종비를 무료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이 나온다. 의사와 의료기관 신뢰도 조사에서는 소위 ‘빅5’라는 초대형병원에 대한 신뢰수준이 85%로 다른 병원보다 월등히 높다. (서울대병원 공공의료원 2020년 10~12월 조사, 2021)
실제로 많은 시민이 ‘빅5’라 불리는 초대형종합병원의 불친절에 치를 떨면서도 아프면 큰 병원을 찾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해서 첨단의료를 원하며, 모두가 장벽 없이 빅5에 갈 수 있도록 전국 곳곳에 ‘빅5’에 못지않은 병원이 세워져야 한다고 믿는 모순적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낮은 급여 수준에서도 동료 시민들을 헌신적으로 돌본다며 부러워하지만, 평등한 가난이나 시민적 연대를 원리로 하는 쿠바식 의료보다는 빅5의 의료가 앞선 의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의료 문제를 토론하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각 개인이 환자로서 원하는 것, 시민으로서 지향하는 바가 다른 경우가 많고, 의료를 하나의 생태계로 생각하기보다는 의사 개인의 품성이나 인도주의의 문제 차원에서 한국 의료의 문제를 찾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식인 중에서도, 아니 지식인일수록 국가적 차원에서 의료산업을 진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의사나 병원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문제라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이고 보면, 의료의 문제를 차분하고 길게 토론할 수 있는 장은 매우 드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료공공성에 관한 생각을 두 시간 넘어 함께 나눌 수 있었던 지난 세교 포럼은 뜻깊고도 소중한 자리였다. 의료는 공공재이며 필요한 사람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고들 하지만, 실제 현대 사회에서 의료는 고가의 장비와 약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의료에 수반되는 돌봄은 매우 귀한 자원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의료를 공공재로써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역으로 의료를 공공재로 만들어 줄 정치적 공동체가 필요하다. 시민들의 삶에서 필수적인 부분은 어떤 부분인지를 판단하고, 거기에 집중해서 꼭 필요한 의료에 대해서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만들어가며, 이를 위해 공공과 민간, 전문 의료와 돌봄, 다양한 소수자들을 포괄하는 커먼즈의 존재 없이 의료는 공공재가 될 수 없다.
다른 의료를 말하다 보면, 아니 어떤 영역에서든 전환을 이야기하다 보면 대안이 있느냐 대안을 내놓으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현실을 분석하는 연구자든,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시민이든,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고, 실제로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현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안을 이야기하기 전에 과연 우리가 원하는 의료, 좋은 삶과 죽음의 모습은 무엇인지 짚어보는 것도 중요하다. ‘빅5’에서 태어나서 죽는 삶이 과연 좋은 삶인가? 좋은 삶, 특히 좋은 죽음에 대한 고민 없이 의료를 이야기하게 되면 현재로서는 초대형종합병원의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막막해 할 필요는 없다. 대안을 찾는 작업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이미 현장에서 좋은 삶과 죽음을 고민하는 시민과 의료진들이 있다. 다시 한 번 자리가 마련된다면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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