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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9-07-01 17:41 조회9,38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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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촨(防川) 가는 길
6월 중순 연변대학 강연을 위해 연길시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컸던 일은 북한, 러시아, 중국이 접하는 팡촨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움직이고 일정도 다소 빡빡했던 지난 몇차례의 연길시 방문과는 달리 이번에는 조금 자유롭게 일정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연변대학 측에서 내 계획을 듣고 팡촨까지 차로 동행해주는 편의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편한 여정이 되었다. 실제로 길도 대중교통편으로는 연결이 어렵고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야 해서 관계자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팡촨은 동북아 지정학에서도 매우 특별하다. 두만강이 동해로 나가는 지점에서 6.5킬로미터 정도 거슬러 올라간 지점에 위치해 있고 중국 영토의 최동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타이완을 제외하면). 이는 중국의 영토 경계가 두만강 하류까지 나가지 못하고, 즉 동해와 접하지 못하고 내륙에서 끝난다는 의미이다. 사진은 팡촨 전망대에서 두만강 하류를 향해 찍은 것인데 사진 속의 두만강을 가로지는 철교는 러시아와 북한을 연결하는 유일한 육로이다. 철교 왼편은 러시아 영토(접경 도시 하산)이고 오른편은 북한 영토이다. 동해선이 이 철교를 거쳐 러시아로 연결되니 우리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다른 한편 이곳은 중국이 한탄하는 소위 ‘출해권(出海權)’ 상실의 현장이다. 자료로만 보았을 때 이 문제가 뭐가 그렇게 대단한가 싶었는데 장 쩌민(江澤民) 등 최근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역임한 사람들이 이 편벽한 곳을 방문했던 기록을 보니 중국이 얼마나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기록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러시아와 국경협상을 할 때 중국이 신장 지역의 상당 부분을 양보하는 대신 영토를 동해까지 확장하려는 구상을 러시아가 끝내 거부했다는 이야기도 이곳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동북삼성에서 동해로 나가는 길이 없다는 사실이 개혁개방 이후에도 이 지역이 경제적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최근에 지목되고 있다.
팡촨까지 가는 길도 흥미롭다. 연길시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 방향으로 가면 투먼시(圖們市, 이곳에는 북의 남양과 이어지는 투먼대교가 있다)을 경유해 훈춘시(琿春市)로 이어진다. 중국의 고속철도가 여기까지 건설되어 있다. 훈춘시에서 동남 방향으로 두만강을 따라가다보면 북한으로 통하는 마지막 세관이 설치되어 있는 취안허(圈河, 여기서 2016년에 완공된 신두만강대교를 건너면 북측 세관인 원정리로 이어진다)를 만난다. 새로운 세관 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이 세관을 통과해 나선시 관광을 가는 중국 관광버스들도 볼 수 있었다. 중국인들은 자유롭게 건너는 길을 구경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막상 현장에서 보니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취안허를 지나니 왕복 1차선 도로를 왕복 2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사가 완공되면 팡촨 가는 길이 훨씬 편해질 예정이다.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일부 구간은 오른편으로는 두만강이고 왼편으로는 중·러 국경을 가르는 펜스가 설치되어 있는데 양쪽 사이의 폭이 100미터도 되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힘겹게 동해로 나아가려는 중국의 시도가 두만강의 끝을 6.5킬로미터 앞둔 팡촨에서 끝난 셈이다.
팡촨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관심이 간 것은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이 지역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고 어떤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는가였다. 19세기 말부터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청·러·일 사이의 각축이 치열하게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냉전체제가 무너지던 1991년에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두만강유역개발계획’을 추진하는 등 이 지역에는 동북아질서 변화에 매우 중요한 함의가 있다. 이 계획의 핵심은 천혜의 항구인 북한 나선시 개발이지만 북핵문제 등으로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두만강유역개발계획은 2005년 한국, 중국, 러시아, 몽골 등이 참여하는 ‘광역두만개발계획’(GTI, Greater Tumen Initiative)로 확장되었으나 정작 북한은 2009년 대북제재에 대한 반발로 탈퇴했다. 그런데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추진되고 북·중·러 사이의 협력이 본격화되면 이 지역은 다시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작년의 GTI 회의는 북한에 재가입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문재인정부의 신한반도경제구상 중 환동해경제권 형성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특히 중국은 훈춘시까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가 이어져 있기 때문에 협력 사업이 가능해지기만 하면 북·중은 매우 빠른 속도로 연결될 전망이다. 이 지역에 새로 건설된 화력발전소는 나선시에 대한 전력 공급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 팡촨까지의 도로 확장도 이러한 변화를 염두에 둔 사업이다. 두만강 하구에서의 북·중·러 공동개발사업도 활발해질 것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중국 중앙정부와 동북지역이 이에 실질적으로 자원을 투입할 의지와 능력을 갖고 있다. 만사구비 지흠동풍(萬事俱備 只欠東風, 모든 일이 준비되어 있고 동풍만 불기만 하면 되는) 형국이다. 이렇게 보면 남북경협만이 북의 대안이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지역의 잠재력은 한국과 일본으로 협력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을 중국은 명확히 알고 있다. 이는 서진 전략으로 추진한 일대일로 사업이 최근 다시 동쪽을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지리적 감각을 요구한다. 남북경협도 다소 추상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운데 이처럼 장소와 결합되어 논의될 경우에는 구체성을 쉽게 얻을 수 있다. 팡촨만이 아니라 단둥, 개성, 금강산, DMZ 등이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올 때 ‘신 한반도체제’ 같은 구상도 실질적인 힘을 얻게 된다. 지금 남북관계에서 필요한 것도 이같은 현장에서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최근 다시 시작될 조짐이 보이는 대화가 이번에는 실질적 진전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세교연구소장
이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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