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도 4월]학술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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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04-27 15:03 조회5,8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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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
존재론적 ‘전회’ 또는 ‘반걸음’
황정아
(한림대 HK교수)
최근에 번역된 레비 R. 브라이언트의 『객체들의 민주주의』에 나오는 “얼룩말은 우리가 쳐다보지 않더라도 무사히 사바나를 가로질러 달린다”(62-3면)는 구절(이 대목은 더 길게 진술된 브루노 라뚜르의 말을 요약한 것이다)은 순식간에 나를 수십 년 전(정확히 헤아리는 일은 생략하겠다…) 학부 신입생 시절로 데려가, 우리의 관념 바깥에 현실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유물론이라고, 그러니 유물론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일갈하던 어느 선배 앞에 세워놓는다. 그 구절을 받아들임으로써 간단히 유물론자가 될 수 있던 시절에 대한 온갖 환멸과 각성마저 잊혀져가는 지금, 예상치 못한 이 귀환을 두고 솔직히 약간 우스꽝스럽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혹시 서구철학사에 새겨진 저주 같은 순환회로?, 아니면 한 번은 비극 또 한 번은 소극으로 반복된다는 역사의 사례?, 그것도 아니면 설마 내가 너무 오래 산 것인가?
따지고 보면 학부 시절 이래로도 우리의 관념 바깥에 현실이 있음을 부인한 적은 없었지만 ‘우리’도 문제가 되고 ‘바깥’도 ‘현실’도 모두 문제적이 된 이론적 상황에서 그 점을 표명하는 일이 매우 부적절하고 무용하다는 점을 눈치 챘기에 ‘지시대상을 괄호 쳤다’ 같은 비판에나 살짝 편승하는 정도에서 조심하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날 객체지향존재론이나 사변적 실재론 등의 물질적 또는 존재론적 전회 이론들이 구태여 심문한다면, 물론 우리가 쳐다보지 않아도 얼룩말이 무사히 사바나를 달리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나아가 우리가 쳐다보지 않을수록 더 무사히 달릴 가능성이 많아진다고 흔쾌히 답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어째서 ‘의미 있는’ 진술이 되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존재론적 전회 이론들을 ‘얼룩말’ 구절로 요약하는 것은 당연히 부당한 일이다. 그것들은 객체나 사물이 우리가 지각하고 경험하고 파악한 성질과 동일하다는 ‘소박실재론’이 아니며 객체, 실체, 내지 존재 자체에 어떤 ‘물러서 있음’의 차원이 있다고 본다. 다만 그런 ‘물러서 있음’을 이제까지처럼 인식론적인 문제로 파악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체의 언어와 인식에 내재한 분열과 한계와 간극 등으로 귀속시키지 말고, 존재와 그것이 현재 취하고 있는 성질이나 관계 같은 현실태 사이의 분열이라는, 존재 자체의 존재론적 특징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바로 그런 존재 고유의 분열에 우리의 탐구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존재론적 전회란 퀑탱 메이야수가 지칭한 ‘상관주의’라는 감옥, 즉 인간의 인식과 사유와의 상관관계라는 감옥을 부수고, 존재에 대한 우리의 접근 여부가 아니라 존재 자체에 집중하는 일을 뜻한다.
그에 따라 존재론적 전회 이론들은 객체/존재/실체/사물을 대상화하고 인간의 인식을 특권화하여 모든 형태의 실재론(realism)을 불신하고 경멸하게 만든 인식론적 편향을 주요 표적으로 삼는다. 그런데 그들이 비판하는 특권화는 사실 다분히 양가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한편에서는 텍스트의 바깥이란 없고 심지어 가장 자연적인 것도 언어적∙사회적으로 구성되거나 상상된 것이라는 지적이 무수히 있어왔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반복되어온 것은 인식론적 ‘불가능성’에 대한 언급이다. 지시대상에, 물 자체에, 실재 등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언어와 인식의 실패라는 ‘부정성’ 역시 반복 강조되어왔던 것이다. (지시대상, 물 자체, 실재 등이 언어와 인식의 실패가 낳은 효과라는 주장은 양자에 걸쳐있는 셈이다.) 후자에 초점을 둔다면 존재론적 전회는 인식론의 우위가 결과적으로 다다른 곳에서 단지 반걸음 옮겨갔거나 지젝의 표현대로 ‘시차적 차이’일 따름으로 보인다.
존재론적 전회에 과연 ‘전회’급 의의가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그 반걸음의 의의라면 비교적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언어적 전회’가 궁극적으로 도달한 듯 보이는 불가능성에 대한 반복된 지적, 이론에서의 PC주의처럼 보이는 겸허하지만 지겨운 실패의 인정을 생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회귀한 이 존재론들 자체도 ‘인간중심주의’ 비판이라는 또 다른 상투화로 귀착될 조짐이 없지 않고, 그럼으로써 정작 인간중심주의라는 이 ‘객체’가 실제로 무엇인지 더 탐구할 필요를 잊게 만들 수 있다. 인간은 객체와 사물을 가두기도 했지만 동시에 객체와 사물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왔다. ‘상관주의’라는 표현은 이 양 측면을 다 살펴야 그 본래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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