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호]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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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4-13 16:12 조회3,93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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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를 통해 본 한국문학
―남상욱․백지연․이정숙 외, 『한국과 일본의 문학과 민주주의: 교통과 횡단』
정주아(강원대 교수)
『한국과 일본의 문학과 민주주의』(계명대출판부, 2020)는 해방 이후 한일 양국이 감당해야 했던 ‘이후’의 시공간에 대한 여덟 편의 연구 성과를 모은 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편된 세계 질서 속으로 다시 진입해야 했던 ‘패전국’이자 ‘전범국’ 일본, 그리고 해방의 환희를 맘껏 누리기도 전에 전쟁으로 초토화되어버린 국가를 어떻게든 재건해야 했던 한국. 비록 저마다 맞닥뜨린 ‘전후’의 시기나 과제의 성격은 달랐지만, 미소 냉전 체제하에서 생존을 도모하면서 내부에서 자라나는 정치적 역량들을 반공(안보)의 논리나 경제성장의 논리로 억압했던 사정은 공통적이다. 이런 국내외의 상황을 감안하면 ‘한국에게 있어 일본이란 존재는 비단 식민지기에 국한하지 않고 언제나 일종의 거울처럼 의식되어 왔다’는 이 책의 기획 의도는 충분히 이해 가능한 것이다. 2018년에 열렸던 학술세미나의 결과물인 이 책은 그간 한일 관계를 식민지기에 집중하여 연구해왔던 국문학계의 연구가 해방 이후 한일 현대사를 향해 어떤 관점으로 그 외연을 넓혀 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령 한국의 1960년대는 한일수교협정을 둘러싼 정치적 저항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정치적 반목이 무색하게도 일본과의 문화교류 재개로 인해 대량 번역 출판된 일본 소설들이 한국인들의 삶에 두루 영향을 미쳤던 시대이기도 했다. 백지연은 1960년대에 번역 소개된 일본 문학 작품들이 “전쟁체험과 인간의 실존의식, 성과 윤리 도덕의 문제, 전후 세대의 가치 혼란과 자유의 문제를 예민하게 다루고 있기에 대중 독자들에게 상당한 반향”((「전후체험의 인식과 민주주의의 상상력: 김승옥과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에 나타난 ‘생명’과 ‘여성’」,p.167)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아울러 서은주는 전후 한국의 젊은 문인들이 일본 문단의 사상적 자유를 동경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합법적으로 공산당이 존재하고 지식인들이 ‘중공’을 오가고 재일동포가 북한으로 가는, “마치 ‘중립국’과도 같은 일본의 ‘사상 공간’”(「1960~70년대 일본문학 수용에 나타난 세대의식과 냉전의 메커니즘」,p.40)이 반공주의에 짓눌린 한국 지식인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일본 문학에 대한 호의는 비단 지식인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서도 확인된다. 이정숙은 당대의 베스트셀러 『빙점』이 전쟁의 경험을 공유한 일본과 한국 사회에서 인권과 생명이라는 윤리적 정동의 근간을 재확인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음을 살펴보고 있다. ‘수수하고 과잉된 감정의 충만함’을 토대로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재배치하고 재명료화하여 ‘옳은 것’의 기호를 찬양”(「전후 윤리적 정동의 정립과 1960~70년대 ‘딸’의 담론: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 수용의 의미」,p.151)하는 멜로드라마의 미덕이 이러한 보편적 공감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당대 한일문학의 접점을 찾아가는 제재나 방식은 다양하지만, 이 책의 모든 논의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핵심어는 민주주의이다.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에서 파생된 정치적 다양성, 자유와 실존에 대한 고민의 진폭, 전쟁에 대한 반성과 보편적 가치의 확인 등이 상대적으로 한국 사회의 정치적 갈망을 드러내는 매개로 작용한다. 주지하듯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는 종전 이후 일본의 정치제도, 외교 및 국방, 시민사회의 구성 등의 시대적 과제를 포괄했던 거대담론이다. 그러나 담론을 주도했던 마루야마 마사오에게 쏟아진 찬사와 비난 사이의 간극에서 알 수 있듯이, 전후 민주주의의 이념적 구체성 혹은 실효성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냉전체제 속에서 중립론을 주장한다거나 미국의 군사기지화를 거부했던 주요 실천적 목표들이 현실 정치 앞에서 힘을 잃고 좌절되면서 ‘전후 민주주의의 허망’이란 조소까지 낳았던 것이다. 이 책의 논자들이 주목하는 일본 전후 민주주의의 덕목이나 그 주역들이 저마다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일부 논의는 이 약점 투성이인 민주주의를 그 자체로 적극 옹호하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이후’의 시대에서 파생된 과제를 실천적으로 끌어안는 적극적 태도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남상욱은 미시마 유키오와 김훈의 문학에서, 지식인들의 언어가 갖는 인공성과 개념성을 불신하고 민주주의에 뒤따르는 대중화를 ‘속물화’로 간주하는 반지성주의의 사례를 읽어낸다. 논자가 작가 김훈의 작품을 독해하는 방식에 대해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그 분석이 “개별자들의 ‘먹고 살기의 고단함’을 핑계로 ‘정의’로부터 눈을 감고자 하는 자들에게,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알리바이를 제공해준다는 점”(「한일문학의 민주주의와 ‘반지성주의’」, p.130.)에서 반지성주의의 폐단을 지목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일본과 한국에서의 하루키 열풍을 조명한 김영찬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그동안 근대문학의 미덕으로 여겨졌던 ‘부정성’을 부정한 결과, 문학이 정치사회적인 거대담론으로부터 단절되어 소비자본주의 속으로 침윤해가는 현상의 매개자 노릇을 했다고 비판한다(「무라카미 하루키, 사라지는 매개자와 1990년대 한국문학」).
비단 결과적으로 목표를 성취하지 못한 민주주의 운동이라 할지라도 그 이념까지 무위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며, 공적 영역과 언어를 냉소하는 반지성주의가 현실적 모순을 방관하는 태도의 일면일 수 있다는 이 책의 결론들은 2022년 신산한 봄을 맞고 있는 지금-여기의 시공간에 깊은 울림을 준다. 민주주의라는, 익숙한 줄 알았지만 낯설어진 단어를 새삼 곱씹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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