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도 하반기]회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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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1-01-04 11:44 조회7,34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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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인터뷰
리영희 정신으로 본 오늘의 언론 문제
― 리영희 평전 『진실에 복무하다』의 저자 권태선 회원을 만나다
이지영
(창비 교양출판부)
이지영: 안녕하세요? 『진실에 복무하다』 기자간담회 이후 오랜만에 뵙습니다. 권태선 선생님께서는 한겨레 편집인을 역임하셨고 리영희재단 이사이시니 리영희 평전의 필자로서 최적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만찮은 작업이기에 집필을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 평전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권태선: 젊은 시절부터 리영희 선생에 대한 관심이 컸고, 평전 집필 자체에도 관심이 있었죠. 무엇보다 리영희 선생이 소비되는 방식에 아쉬웠던 마음이 컸습니다. 수구보수세력들은 진보진영을 비난할 목적으로 걸핏하면 리영희 선생을 끌어들여 악마화하기 일쑤였고, 진보진영 역시 ‘사상의 은사’ 같은 말로 선생을 떠받들기는 하지만 실제 삶과 사상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부족했다고 봐요. 그리고 이른바 ‘신냉전’이 등장하고 탈진실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선생이 평생 천착하셨던 냉전 해체나 진실 추구 등의 과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며 리영희 선생의 삶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지영: 『진실에 복무하다』는 리영희라는 한 개인의 평전이지만 일제강점기에서 시작해 한국전쟁과 군사정권을 거쳐 2000년대 초반까지 시대적 배경이 이어지다보니 숨 가쁘게 돌아가는 한국현대사의 요약판을 읽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집필하실 때부터 의도한 것인지요.
권태선: 리영희 선생의 삶 자체가 한국현대사에 대한 대응으로 이뤄져 있어요. 리영희 선생 따님의 말씀처럼 선생은 모든 사안에 늘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유예라곤 없는 분이었어요. 그런 분의 평전이기에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지영: 4·19혁명 당시 리영희 선생이 고민 끝에 거리에 나섰던 일화를 읽으며 만약 2016~17년 겨울 선생께서 살아 계셨다면 광화문광장을 지키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영희 선생이 생각한 언론인의 실천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권태선: 분명히 촛불집회에 나가셨을 거예요. 뇌출혈로 쓰러지신 뒤 몸을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도 이라크 파병 반대시위에 나갔던 걸 떠올려보면요. 리 선생님은 현실의 문제에 부닥쳤을 때 기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셨지만 시민으로서의 책임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강하셨어요. 엠네스티나 민주회복국민회의에 참여하셨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는데, 시민이든 기자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게 필요하다고 믿으셨던 거지요.
이지영: 듣고 보니 리영희 선생이 생각한 진정한 언론인의 책임은 진정한 시민의 책임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리영희 선생은 외신부장으로 이름을 널리 떨치셨는데요, 과거보다 전 세계의 뉴스며 각종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지만 편향된 보도가 끊이지 않는 작금의 세태를 보면 개탄하실 것 같습니다. 미국 주류 언론의 시각을 거친 뉴스가 주로 유통된다는 생각도 들고요.
권태선: 오랫동안 서구의 4대 통신사가 국제뉴스를 지배해왔기에 제3세계를 대표하는 통신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었죠. 리 선생님은 다양한 매체를 참고하되 우리의 시각으로 외신을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요즘은 알자지라도 생기고, 찾으려고만 하면 다양한 루트로 정보를 구할 수 있는데도 검증에 자신이 없다보니 이미 평판을 얻은 기성 매체의 필터를 거친 뉴스를 소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시각’에 대한 기자들의 문제의식이 옅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국제뉴스와 우리 현실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고요. 펀드매니저만 빼고(웃음).
이지영: 그러고 보니 경제 관련 국제뉴스는 젊은 사람들도 관심이 많은데, 주로 주식 때문인 것 같네요(웃음). 다시 리영희 선생 이야기로 돌아와보자면, 선생께서 권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동료라 할 수 있는 언론 내부에 대한 비판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 평전을 읽으며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을 취재원이 속한 계층과 동일시하고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인 ‘언론 기술자’들에 대한 비판은 지금 읽어도 서슬 푸른데, 이러한 현실이 현재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 할지요?
권태선: 올해 초 터진 ‘채널A’ 사건이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최근에는 오마이뉴스 기자가 판사 사찰 문건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대검찰청 기자단 투표에 의해 1년 출입정지 당하는 일이 있었죠. 윤석열 검찰총장의 변호사가 제공한 자료였는데도 말이에요. 출입처를 오래 나가다보면 취재 대상들과 가까워지면서 순치되기 십상이라 출입처를 없애야 언론개혁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언론과 권력의 관계 또한 문제인데, KBS 뉴스앵커에서 청와대 대변인으로 변신한 민경욱 전 의원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한겨레 기자 출신도 청와대 대변인으로 갈 정도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일 때, 한겨레 기자를 청와대 비서관으로 데려간 적이 있어요. 제가 문 실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그런 행동은 한겨레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다, 정치와 언론은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항의한 적이 있어요. 당시에는 알겠다고,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대통령이 되셔서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네요.
이지영: 기자들로서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게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권태선: 영영 이직해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유예 기간은 있어야 한다는 거죠. 미국이나 유럽처럼 언론과 언론기관이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아직 아니므로 언론과 권력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기업으로 가는 경우예요. 이건 눈에 잘 띄지 않거든요. 대기업에서 기자를 홍보 담당자로 스카우트할 때는 순수하게 그 사람의 전문성을 본다기보다 인적 네트워크로 이른바 기사를 ‘마사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는 경우가 많아요. 안타까운 것은 언론인들이 언론 자체를 사양산업이라고 여기며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다보니 언론계를 떠나는 동료를 부럽게 바라보는 분위기조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언론이 처한 위기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비롯된 부분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신뢰의 위기예요. 최근 언론 수용자 조사를 봐도 신문 구독률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지만 기사 열독률은 떨어지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신뢰를 얻고 어떻게 소통할지를 고민하는 데 언론의 활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지영: 잠깐 옆으로 새자면, 전통미디어 중 디지털 전환의 성공 모델로 떠오른 뉴욕타임즈나 국내 뉴미디어 뉴닉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권태선: 둘 다 구독 중인데, 뉴욕타임즈는 전 세계에서 탑으로 꼽히는 매체고 영어로 발행돼 전세계에서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우리 언론사가 그 길을 쉬이 따라가긴 어려워요. 하지만 기사의 퀄리티를 높이는 동시에 설명력도 강화하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둔 점은 참고할 만해요. 제가 요즘 흥미롭게 보는 해외의 뉴미디어는 ‘쿼츠’(Quartz, https://qz.com/)인데, 쌍방향 소통 노력이 인상적이에요. 독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다른 매체의 뉴스까지 추천해주거든요. 뉴닉은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떠먹여주는 뉴스’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는데,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별도의 취재 없이 큐레이션만 하다보니 언론으로서 한계가 뚜렷해요. 이런 큐레이션 매체들과 더불어 기사의 전달만을 맡고 있는 포털의 위세 역시 현재 언론이 직면한 큰 문제입니다. 젊은 층이 네이버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언론사 1위로 뽑을 정도죠. 뉴스를 생산하기 위해 수많은 자원을 투입한 언론사 대신 유통만 시키는 매체가 수익은 물론 영예까지 차지하는 현실은 반드시 시정돼야 하고, 따라서 포털과 언론사의 관계를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어요.
이지영: 언론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선생님께서 언론의 자유를 언론 기업의 자유, 언론인의 자유로 오도하는 일부 언론인들에 대해 비판하신 대목을 평전에서 읽고 현재의 위기도 비슷한 데서 유래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를 타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권태선: 저는 언론이 이대로 가면 공멸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문화방송 사장을 역임한 원로 언론인 김중배 선생을 만났는데, “지금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고 일갈하시더군요. 링에 올라간 이들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스스로 링에 올라가 싸우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이런 위기를 타개하려면 무엇보다 언론의 ‘공영성’을 수립하기 위한 공동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검찰개혁 문제를 다룬다고 할 때, 믿을 수 있는 언론사들끼리 협업해서 같이 기사를 쓰는 거죠. 지금은 모든 언론사가 백화점식으로 오만가지 기사를 쓰다보니 받아쓰기만 하게 되고 심층취재에 나서기 어렵습니다. 제가 취재원이 되어보니 대부분의 기자가 전화 한통 없이 확인도 안 하고 기사를 쓴다는 걸 알겠더라구요. 부끄러운 일이지요, 신뢰의 거점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해요. 그런 점에서 KBS나 MBC, 한겨레 같은 공영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언론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 언론인 교육 또한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언론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교육이죠. 언론 수용자 조사를 보면 언론의 신뢰도나 도덕성은 바닥인데 영향력은 여전히 높습니다. 언론이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감을 가질 때 수용자들이 언론을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이지영: 깊이 새길 만한 말씀이네요. 리영희 평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리영희 선생의 자기반성적 태도였습니다. 여성학자 정희진이 『대화』 서평에서 “보살핌 노동에서 면제된 남성 특권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 당신이 미처 몰랐던 것들을 자각하게 해주었다며 인정한 일화를 보고 감탄했는데요.
권태선: 저 역시 리 선생님이 정희진씨에게 보낸 엽서를 보고 감동받았습니다. 몸이 불편해서 글씨를 쓰기도 힘드셨을 때인데, 다섯번이나 읽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답장을 쓰셨으니까요. 리영희 선생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될 때는 언제나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사회주의권 붕괴를 비판적으로 성찰한 것이나, 친일 문제를 비판하면서 우리 내부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도 그러한 예죠. 또 사실 확인을 늘 철저히 여기셨는데, 제가 한겨레신문에 입사해서 쓴 첫 기사가 1988년 5월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대한 것이었어요. 그 창간호가 나온 저녁 바로 찾아오셔서 소련군 사망자 숫자가 너무 크다고 지적하시는 거예요. AP통신에 나온 대로 썼다고 말씀드렸더니, 해외통신사도 틀릴 수 있으니 크로스체크해보라고 하셨는데, 선생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AP통신이 틀린 거였어요. 그 이후로 기사 쓸 때마다 선생님이 어떻게 보실까를 염두에 두게 됐지요.
이지영: 처음 듣는 에피소드인데 재밌네요(웃음).
권태선: 공적인 활동만 보면 선생이 아주 딱딱하고 냉철하실 것 같지만, 백낙청 선생님도 얘기하셨듯이 ‘천진난만한’ 면도 있는 분이셨어요. 술잔을 드실 때는 ‘우리의 행복한 나날을 위하여’라고 건배사를 할 정도로 삶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좋아하셨죠. 저희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장난감을 사주실 만큼 다정하시기도 했고요.
이지영: 따뜻한 일화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세교연구소 회원 중 드물게 언론인 출신이신데, 언론인의 입장에서 세교연구소에 바라는 말씀 마지막으로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권태선: 세교포럼에서 늘 시의적절한 주제가 선택되고 수준 높은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세교포럼의 논의가 참여한 사람들 안에 머물고 만다는 것인데, 저는 세교포럼의 발제나 이후 이어지는 질문과 토론이 참여자들의 식견을 키워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포럼이 널리 공유되지 않고 단속적으로 끝나버리는 듯해 아쉽습니다. 세교 뉴스레터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겠으나 창비의 조직과 매체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세교포럼과 세교연구소의 작업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공유하려는 노력을 좀더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지영: 긴 시간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교연구소가 더 많은 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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