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호] 회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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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4-13 16:01 조회3,64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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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더 담대한 소통의 길을 모색할 때
―백영경 신임소장을 만나다
강영규(창비 전문위원)
강영규(이하 강): 올해 세교연구소 소장에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취임 초라 여러 생각이 많으실 텐데요, 이에 대해서는 차차 청해듣기로 하고, 먼저 직장을 제주로 옮기신 이후 근황을 여쭙고 싶습니다. 얼마 전 같은데 제주대 사회학과로 부임하신 지가 벌써 만 3년이 되셨네요.
백영경(이하 백): 2019년에 왔으니 햇수로는 4년차가 됩니다. 서울에 식구들이 남아 있어서 완전히 터전을 옮긴 건 아니지만 제주에 집이 있기도 하고 오래 머무는 편이에요. 매주 서울로 올라가거나 하지 않고요. 학과에서는 애초에는 정해진 수업만 하고 자리를 비우진 않나 염려하신 것 같은데 이번에 제주대 박물관장이라는 보직도 맡게 되면서 생각보다 이곳에 더 얽히게 되었네요. 오히려 우리 연구소 이사장님이 제주에 너무 오래 있는 거 아니냐, 서울에 더 와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 다그치시고.(웃음)
강 : 삶의 터전을 멀리 옮기셨으니 개인사에서도 적잖은 변화가 있으셨을 텐데요, 그해 말부터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었으니 그런 변화를 체감하실 새도 없으셨을 것 같네요. 그러고는 곧장 이와 관련한 책에 착수하셨지요? 의료 전문가 다섯분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모은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가 2020년 말에 나왔습니다. 소장님의 전공 분야가 의료인류학으로 알고 있는데요, 코로나19와 관련하여 다급한 대책에서 벗어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어떤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일까요?
백 : 정부에서는 계속 거리두기를 완화하고 격리기간도 단축한다 하면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죠. 국내에선 백신접종률이 워낙 높고 치명률도 점차 낮아져서 이제는 초기와 같은 무서운 질병은 아니게 됐는데 그렇다고 해서 끝날 것 같아 보이진 않아요. 한번 걸렸다 하더라도 변이가 나타날 때마다 감염 후 3개월이 지나면 다시 걸릴 수 있다고도 하고, 코로나가 아니라도 다른 종류의 인수공통감염병이라든가 기후위기에 따른 여러 질병이 나타날 가능성은 상존하고, 그런 면에서 코로나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가기란 불가능한 것 같아요. 우리가 질병에 걸려서 곧 죽을 것 같은 상태가 된다면 분명 두렵겠지요. 한데 엔데믹(endemic)이 된다, 즉 토착화되고 풍토병처럼 된다고 해서 그게 작은 문제가 되는 것 같진 않아요. AIDS 같은 것도 초기에는 무서운 병이었지만 지금은 잘 관리만 하면 살아갈 수 있는 병이 된 건데, 그랬다 해서 병에 대한 두려움이 줄었나 하면 하면 그렇진 않잖아요. 오히려 관리하며 살아가기가 그 사회의 약점을 더 많이 드러내는 것 같아요. 코로나19 초기에 나온 요양병원 문제, 소수자 차별 문제, 빈곤 문제 등 수많은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이제 코로나19가 만성화하고 엔데믹화 한다면 오히려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겠죠. 위기국면에서 사회가 바짝 긴장하고 대응하긴 쉬워도 길게 관리를 하면서 간다는 것은 비용도 더 들고 끈기도 더 있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더 성의껏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는 시기는 지나고 있지만 ‘코로나와 함께하기’라는 게 단순히 ‘걸려가면서 살기’가 아니라고 한다면, 자가검진 키트 비용은 어떻게 할 거냐, 병원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감염병 관리나 요양병원 문제, 시설격리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거냐 등 코로나가 남긴 문제들이 더 큰 숙제로 다가오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강 : 자연스럽게 소장님의 최근 관심사나 연구주제와 연결되는 것 같은데요, 요 몇년새 쓰신 글들을 훑어보면 탈성장, 돌봄, 전환, 커먼즈(commons, 공동영역) 같은 키워드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주제들은 방금 들려주신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텐데요, 여성과 가족, 복지나 의료 등 여러 분야를 횡단하는 연구자로서 지금의 관심사를 요약해주신다면요?
백 : 말씀하신 여러 주제들은 요청을 받고 글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된 면도 있지만, 커먼즈는 전부터 관심이 있었고 제주와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한국사회가 새로운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이고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할 때 가장 피해야 할 것은 공공성 혹은 국가의 원조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태도 같아요. 예전에 비해 행사할 수 있는 시민의 권리가 많이 늘어났고 국가가 담당해주는 영역이 확장된 것이 사실인데 그러다보니 시민들이 가령 돌봄이나 의료에 대해서 이건 국가의 의무다, 국가가 다 해내라고 요구하기도 하죠. 그런데 돌봄이나 의료는 대개 제한된 자원이고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온 생활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기란 제국적인 삶의 방식에 다름 아니며 제3세계나 생태계에 대한 착취를 전제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필요해요. 국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뿐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가, 시장에만 맡기지 않으면서 옛날처럼 가족단위에서 돌봄을 해결하기도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그렇다고 전적으로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는 것도 아닌, 인간 삶에서 중요한 공통영역으로서 커먼즈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확장해갈 것인가에 관심이 있어요. 저는 원래 서양사 전공이고 인류학으로 학위를 했고 그 다음에 과학기술학으로 박사후연구원을 하면서 과학기술, 의료, 인류학, 여성학 등등에 걸쳐서 잡다한 활동을 해왔는데, 지금은 다시 역사 쪽으로 관심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탈성장, 탈식민을 얘기하다 보면 결국 서구 제국주의 역사, 토착성이 사라져온 역사에 대해 성찰하게 되죠. 특히 제주에 있다 보면 토착성이란 무엇인가, 지역의 고유함이란 무엇인가를 묻게 되고, 과거회귀적이지 않으면서 그 가치를 살려내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역사에 대한 관심, 탈식민에 대한 관심은 한편으로 보면 월러스틴의 책제목처럼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즉 어떻게 기존의 학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회과학을 할 것인가와도 닿아 있겠습니다.
강 : 소장으로 취임하시고 두달 후에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이번 대선은 촛불혁명의 진전인가 엘리트 카르텔의 복귀인가를 놓고 벌어진 한판 승부였던 만큼 적잖은 파장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이는 또한 우리 연구소의 활동이나 역할과도 긴밀히 연관돼 있을 텐데요, 신임소장으로서의 포부와 계획에 앞서 이번 선거가 우리 사회에 대해 말해주는 바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백 : 말씀처럼 올해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연초에 총회를 치르고 나서도 연구소가 새로 출범을 못하고 많은 것들을 선거 이후로 미뤄둔 감이 있습니다. 첫 대면 이사회가 이 인터뷰 이틀 뒤인 4월 8일, 첫 기획운영위는 4월 15일로 예정돼 있으니 지금은 방향을 잡아나가는 시기죠. 선거에 대한 예측은 사람들마다 각양각색이었던 것 같아요. 윤석열 당선을 예상한 사람부터,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사람까지 우리 주변에서도 다양한 예측들을 하셨고, 그 결과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분들도 많죠. 저는 그걸 보면서 참 사람들이 다양하게 생각하고 소통이 잘 안된다, 그리고 소통이 조심스러워지고 점점 더 쪼그라들고 있다, 서로 의견이 맞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리지 다른 의견에 대해 신뢰를 갖고 담대하게 소통하는 문화가 최근에 와서 사라졌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우리 세교연구소의 모습도 돌아보게 됩니다. 세교(細橋)는 이름부터가 ‘가느다란 다리, 잔다리’잖아요. 연구소 창립 시기에 최원식 초대이사장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인데, 한강이라는 큰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물길을 이어주는 작은 다리들을 밟고 가야 한다, 그런 물길을 이어주는 곳이 세교다, 이런 말씀이 참 감명깊었어요. 그런 역할이 앞으로 더 중요해지는 때 같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지혜를 나눠주시는 선배 회원들이 많이 계시고 초청받아 온 분들이 와서 그런 원로들도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에 놀라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회원들을 충원하고 활력을 이어가는 것도 숙제입니다. 문학과 비문학, 여성과 남성뿐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 학자, 활동가 들의 의견에 다리를 놓는 것이 세교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기존의 세교나 창비의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다져나가는 한편 이질적인 흐름과 소통도 많이 하려 합니다. 이번 선거와도 연결되는 얘긴데, 자기 주변과만 소통하는 것을 넘어서야 하지 않나 싶어요. 선거 끝나고 참 마음 아팠던 것이, 많은 분들이 그러세요. 같이 촛불을 들었던 사람이 어떻게 윤석열을 찍을 수 있는가, 그걸 보고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촛불을 들었는데도 윤석열을 찍은 사람들의 목소리, 그러나 여전히 촛불을 들었던 마음에서는 변하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 그런 것도 우리가 좀더 들을 수 있어야겠다 싶습니다.
강 : 세교연구소가 2006년 1월 창립했으니 올해로 열여섯해를 맞았습니다. 지학(志學)을 막 넘긴 연구소의 정체성이나 방향을 새롭게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이야기 같습니다. 이밖에 갖고 계신 계획은 무엇인지 또 회원들에게 인사 겸 전하실 말씀 들으면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백 : 잘 아시다시피 코로나19 때문에 연구소 활동이 예전 같진 못했어요. 염무웅 선생님이 신년특강에서 ‘냉담자’란 표현도 하셨잖아요. 저 역시 그동안 기획운영위에는 참여했지만 화상회의로 열리는 포럼에는 그리 열성적이지 못했던 냉담자 출신 소장 같아요.(웃음) 코로나19 영향뿐 아니라 대선을 앞두고는 시급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획을 바투 잡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근래 세교 활동을 보면 하나하나는 의미가 있고 알찼지만 한발 떨어져 보면 그 활동의 중심이 무엇인지 잘 들어오지 않는 면도 있어요. 올해부터는 테마를 갖는달까, 세교의 활동 방향을 잡아볼 수 있는 키워드를 하나씩 가져보면 어떨까 합니다. 세교가 창비가 해온 큰 담론들과 지금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흐름들을 연결하면서도 너무 경세론이나 정치담론, 현안대응에 매몰되지 않는 큰 화두가 필요하다 싶습니다. 이사회 등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지만 올해는 그걸 ‘기후위기’가 되면 어떨지… 이번 대선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이 기후위기와 성장의 문제잖아요? 그것이 정치개혁과도 연결되고 또 시민의 일상적인 실천에도 이어질 수 있는 키워드로서의 기후위기가 좋지 않을까 합니다. 신임소장으로서 욕심을 부리자면 대면모임을 확 늘리고 싶은 유혹도 있지만 급할수록 단계를 밟아가고 회원들을 한분한분 만나면서 연구소에 바라시는 바, 대선을 보면서 생각하신 바를 듣고 방향을 잡아가려고 합니다. 앞으로 여러 자리를 만들 테니 참석을 바란다는 당부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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