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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호]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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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경석 작성일21-07-29 16:37 조회1,0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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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가장 주체적으로 '노년 되기’

―김영옥,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류수연(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IMF 세태를 자조적으로 담아낸 이 말의 의미는 45세면 정년, 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3포 세대, 88만 원 세대처럼 청년 세대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세대론에서 밀려난 지 이미 오래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영옥의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교양인, 2021)은 이 말을 ‘사오정, 육십도’라는 새로운 의미로 활용하고 싶게 만든다. 45세에는 노년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서 정년인 60세에는 자신만의 노년이 갈 길(道)을 찾아야 한다, 라는 의미로 말이다.


  이 책이 던지는 화두는 바로 주체적으로 ‘노년 되기’이다. 그것은 ‘잘 늙기’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기에 수동적인 의미에서의 ‘늙어 가기’와는 결코 동일시 될 수 없는 개념이다. 늙음의 과정을 단지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을 요구하는 개념인 것이다. 어떻게 우리는 우리 각자의 노년을 마주할 것인가?


  저자가 가장 먼저 주목하는 것은 바로 ‘돌봄’이다. 노년의 삶에서 돌봄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간혹 돌봄을 일방적인 관계로 오해하고는 한다. 그 때문에 돌봄에서 오는 피로와 고통에만 집중하기도 한다. 이것은 특히 남성서사에서 두드러지는데, 영화 <화장>(2014)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이 영화는 ‘고통의 한가운데 있는 환자의 몸에 대해 치열하게 질문하거나 정밀하게 관찰하지 않은 채 오직 보호자의 피로와 욕망에만 주목함으로써’(58쪽) 오히려 돌봄의 가치를 왜곡한다. 그것은 “삶에 철들지 않은 채 나이가 들고, 삶에 철들지 않았는데 ‘아는 사람’의 위치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발언”(59쪽)하는 것에 따른 위험성을 보여준다.


  그 반대 지점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아이리스>(2001)와 <어웨이 프롬 허>(2006), <아무르>(2012)와 같은 영화이다. 알츠하이머와 치매, 뇌졸중까지. 질병의 원인은 다소 다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저자는 질문한다. ‘한 사람은 어떻게 ‘그 자신’으로 죽을 수 있는가?’(154쪽) 여기서 돌봄의 의미는 “한 사람의 존재(Being)를 계속 존중하는 것”(105쪽)에 있다. 이는 환자를 위한 것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보호자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오랜 세월 쌓아온 환자와의 관계를 영속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세이며, 그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의미를 지켜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국 노년까지 한 사람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것은 “그/그녀와 함께 같은 시공간을 살았던 사람이 건네는 지속적인 인정과 관계 맺기”(105쪽)에 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보다 중요한 것은 고독이라는 명제와 친숙해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외톨이가 되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직 자신만의 시간을 스스로 영위하는 힘을 키워냄으로써 오히려 주변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방법을 내재화 하는 과정이다. 이 말은 어찌 보면 모순적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노년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제시되는 것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둘러싸여 늙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193쪽) 하지만 거기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오히려 노년의 삶은 고립된다. 타인에게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독 속에 거하는 능력’(194쪽)은 역설적으로 노년의 자존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젊은 시절처럼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도 ‘자신만의 시간’이라는 자유 속에서 자신의 서사를 영위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이 ‘누림’이야말로 노년의 진정한 인권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김영옥이 말하는 페미니즘 역시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다시 사유된다. 주체적으로 ‘노년 되기’의 핵심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나’로 살고 ‘나’로 죽기 위한 노력이다. 더 나아가 누군가의 삶이 ‘그/그녀’로 살고 ‘그/그녀’로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노년의 고독과 돌봄의 문제는 모두 이와 연관되어 있다. 노년에 대해 편협하고 왜곡된 사유들이 넘쳐나는 이유는 사실상 제대로 된 질문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년의 문제를 그들의 눈으로 들여다보지 않는 것, 가부장적인 속박 바깥에서 여성과 남성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질문하지 않는 것, 더 나아가 노년의 돌봄이 어떤 관계 맺기를 통해 소통되고 지속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 노년의 페미니즘은 바로 이러한 질문을 이끌어내는 사상인 동시에, 그것을 억압하는 모든 권력에 저항하는 안티테제이다. 더 나아가 ‘함께’ 그러나 ‘따로’, 가장 적극적으로 ‘노년 되기’를 성취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한 생명의 탄생이란 필연적으로 죽음을 전제한다. 하지만 보다 분명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죽음이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완전히 강탈하기 전까지, 우리는 '살아 있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 노년을 사유하고 그 시간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년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필연적 미래이며 삶이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다면, 가장 능동적으로 즐기자.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진정한 ‘누림’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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