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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호] 학술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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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4-13 16:05 조회3,5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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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 의의와 추진 경과

 

 

백민정(가톨릭대 철학과)

 

2021113일에 창비 60주년 기념 한국사상선 간행을 위한 준비 모임이 시작되었다. 10인으로 구성된 한국사상선 간행위원회는 당시 첫 회의를 열고 창비 사상선의 기획 취지를 공유했고, 간행위원회 외에 실행소위원회 체제를 갖추었다. 계간 창작과비평창간 60주년을 앞두고 기획된 한국사상선은 14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6백 년이 넘는 한국의 비판적 정신사를 포괄한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간행위의 회의에서는 창비 60주년을 맞는 2026년 초에 전체 완간을 목표로 총서 30권의 규모를 정하고 권별 배치를 상의했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순차적 발간을 목표로 하는 30권 총서의 목록은 하단과 같다. 현재는 각 권의 구성에 필요한 편찬지침-해설, 핵심저작 소개, 주석과 연보-을 마련하고 권별 편자들과 수시로 소통하며 1차분 10권의 편찬을 준비 중이다.

2022216일에는 한국사상선 1차 편자 모임이 이루어졌다. 책임 편자들이 온오프 병행 회의를 통해 함께 인사를 나누며 의기투합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그날 한국사상선 제2권 세조정조 및 제17권 김옥균·유길준·주시경 편의 작업에 대한 중간보고가 있었다. 책임 편자인 임형택은 제2권이 국왕들을 통해 조선왕조의 지향과 성취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유교국가의 문화적 이상이 국왕들의 행적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주요한 목표 중의 하나라고 했다. 특히 그는 세종의 기본정신이 문명의식과 동인(東人)의식에 입각하여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었다고 진단한다. 그는 조선의 건국이 14세기 원명 교체기라는 세계사적 전환에 대한 극적인 대응이라고 보았다. 문명의 전환기 지식인들의 참여와 실천이 조선왕조의 역사변혁으로 구현되었다고 본 것이다.

17권의 책임 편자인 최원식은 김옥균·유길준·주시경의 활동 시기가 서구 및 아시아 근대와 맞물려 조선의 근대를 성취해야 하는 시점이었던 점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당시 조선 정치는 양무개혁을 권장하며 조선을 속국화하려는 청의 정권과 변법을 권장하며 조선 지배를 노린 일본 유신정권 사이의 혼돈 자체였다. 서구의 충격이 사유의 출발점이었던 김옥균의 삼화론(三和論)과 불교론을 고찰하면서 그는 김옥균이 당대의 걸출한 혁명가였음을 강조한다. 양반제 철폐를 주장한 김옥균과 달리 유길준은 학식과 도덕을 갖춘 자라면 누구나 선비가 된다는 국민개사론(國民皆士論)을 주장, 일국주의에 그치지 않는 사해개형제(四海皆兄弟)의 이상을 추구했다고 보았다. 독립협회 세대의 국어국문론자 주시경을 소개할 때는 기독교와 대종교, 천도교와 대종교의 관계를 사유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일화도 소개하였다. 서양문명의 충격에서 고군분투했던 이들의 지적 모색을 생동감 있게 살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창비 한국사상선에서 다루는 인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급격한 문명의 전환을 목도해야 했던 이들이다. 새로운 문명의 흐름에서 한반도 지식인들은 누구보다도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들은 심각한 이념적, 정치적 혼돈을 겪으면서도 동시에 국제적, 보편적 시야를 확보하는 고된 훈련을 거쳤다. 오랜 시간 한반도는 중심이 아닌 대국의 변경과 주변이었지만 오히려 접경의 시공간에서 창조적인 사유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다. 1차 편자 모임에서 언급되었듯이, 조선의 건국도 성리학에 기반한 정치적 실험이자 도전의 산물이다. 정도전의 정치구상은 왕조 체제에서 실현 가능한 최대한의 권력견제와 균형을 구현했다. 맹자로부터 연원한 민본주의의 전범을 세웠다고도 볼 수 있다.

창비 한국사상선은 이른바 근대 이전과 이후라는 인식의 속박을 넘나들며 한국 지성사의 계보를 새롭게 조망하려고 한다. 서구근대의 강압과 주술에서 벗어나려는 숙원에서 살피건대, 우리 사유의 단절과 변화뿐 아니라 연속성을 성찰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 민이 주인이 되는 평등한 삶을 모색했던 동학의 발본적 탐색은 조선시대 사상의 연속적 흐름에서 탄생했다. 왕권과 신권의 대립은 민심을 명분으로 삼을 수밖에 없으며, 민심을 정치 권위와 정당성의 근거로 보는 기본적인 민권의식을 확장시켰다. 보편적 윤리에의 희구, 정치적 공공성에 대한 공감대의 확산, 바로 이 토양에서 조선왕조의 정체(政體)에 대한 날카로운 회의와 자성도 등장할 수 있었다. ‘다시 개벽을 선언하는 동학의 대오각성도 과거의 땅에 발을 딛고 한 편으로 허공에 첫걸음을 내딛으며 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사상선은 비판 정신의 계보를 연속적으로 해명하며 현대의 문제의식을 통해 과거를 소환하고 오늘의 우리와 대화할 것이다.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창비, 반세기의 역사를 넘어 이제 창간 6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현장에서 주인공으로, 우리 사회와 역사의 공공성에 부끄럽지 않고자 고심했던 창비의 부단한 노력을 돌이켜본다. ‘창조와 저항의 거점으로, 민족민중문화의 산실로, 이제 21세기를 넘어 세계적 시야를 확보해 온 창비 50년사의 페이지를 뒤로 넘기며, 미래 백 년 창비의 새로운 행보를 마음에 그려본다. 한국사상선 간행위원과 편집위원으로서 나 개인의 역량은 턱없이 부족하여 두려움이 앞선다. 하지만 선배, 선학의 넓은 어깨에 올라 세상을 보고 동학들과 나란히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 창비 한국사상선은 당대의 모든 도전에 직면했던 한국 지성의 치열한 역정(歷程)을 소개하고 이들의 새로운 문명 탐색에 귀 기울일 것이다. 창비 한국사상선이 우리 삶의 문맥에서 우리답게 사는 길에 대한 진지한 자문과 성찰에 기여할 수 있길 충심으로 소망한다.(*)

 

 

[참고] 창비 한국사상선 목록

 

01: 정도전 / 02: 세종·정조 / 03: 김시습·서경덕 / 04: 조광조·조식 / 05: 이황 / 06: 함허기화·서산휴정·경허성우 / 07: 이이 / 08: 유성룡·이항복·김육·채제공 / 09: 정제두·이충익·심대윤 / 10: 유형원·이익 / 11: 박지원 / 12: 홍대용·김정희 / 13: 임윤지당·이사주당·빙허각이씨 / 14: 정약용 / 15: 최한기 / 16: 최제우·최시형·강일순 / 17: 김옥균·유길준·주시경 / 18: 박은식·신규식 / 19: 안창호 / 20: 박중빈·송규 / 21: 김구·여운형 / 22: 한용운·신채호 / 23: 조소앙 / 24: 홍명희·정인보 / 25: 염상섭·나혜석 / 26: 안재홍·백남운 27권: 유영모·김재준·이효재 / 28권: 함석헌 / 29권: 임화·김수영·신동엽 / 30권: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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