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호] 학술동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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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07-13 11:50 조회3,3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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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2
전후 일본보수주의의 다각적 이해
김형수
지난 6월 24일에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이 주최하는 ‘일본이라는 난제’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있었다. 한일관계가 평탄하지 못한지는 이미 오래 된 일이지만 작금의 상황은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이라는 표현이 조금의 과장도 아닐 정도이다. 특히 2019년 여름에 시행된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공업 소재 수출 규제 이후 한국에서의 반일감정은 극도에 달했고 연이어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인해 양국 간의 인적 교류마저 극히 제한적이 되어버렸다.
한일 양국의 관계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고 그 책임 또한 어느 일방이 아닌 양측 모두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책임의 소재와 요인들을 따지기에 앞서서 한국 사회의 일본에 대한 이해가 과연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가 하는 문제도,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더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역의 방향, 즉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이해의 정도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필요하다.) 나아가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과연 그 관계의 회복 내지는 개선을 위한 한국 사회의 노력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가의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2019년 7월 15일자 <중앙일보>는 한국의 일본연구의 현황을 비판하는 의견 기사를 실었는데, 이 기사는, “이곳만큼 종합적이고 조직적으로 일본을 연구하는 곳”이 한국에 달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에 대한 정부 지원이 끊어졌다는 점을 비판적인 논조로 전달하고 있다. 매체의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당시 정권에 대한 비판의 수단으로 ‘한국에서의 일본연구’가 사용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의 일본연구의 현황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기사의 지적은 유효하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심포지엄은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특히 역사나 문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의 접근을 통한 전후 일본 보수주의에 대한 이해’라는 의도로 보이는 발표 주제들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행사였다. 다만 미리 밝혀두고 싶은 것은, 온라인으로도 공개가 된 이날 심포지엄에 필자는 사정상 실시간으로 참가하지 못하고 발표문들을 엮은 자료집만을 읽어보았다는 것이다. 발표들만이 아니라 이어지는 토론들을 직접 접하지 못한 탓에 보다 현장감 있는 흥미로운 관점이나 지적 그리고 논의들을 소개할 수 없었다는 점은 아쉽다.
첫 발표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의 장인성 교수의 발표로, ‘일본문화회의’의 성립과 해체를 역사적으로 조명하면서 일본 사회에서의 문화적 보수주의의 연원과 전개, 그리고 그 쇠락을 정리한다. 장인성에 의하면 문화적 보수주의란, “일본의 사회와 국가를 지탱하고 현대 일본인의 보수적 심성과 일본 사회의 보수성을 뒷받침하는 (중략) 유력한 이념 내지 성향”이며 바로 그런 점에서 리버럴한 보수주의를 상징하던 ‘일본문화회의’의 쇠락은 일본 사회에서의 “문화의 유연성”의 소멸을 상징한다. 특히 2000년대 이후의 이른바 일본의 ‘우경화’와 작금의 극단적 배타주의는 건전한 보수주의적 문화 운동의 부재에서 비롯된 바가 없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도 일본의 문화적 보수주의에 대한 흥미로운 정리라고 하겠다.
제2발표를 담당한 성공회대학교 일어일본학과의 권혁태 교수는, 한일관계를 둘러싼 가장 커다란 “난제”는 “역사 혹은 역사인식을 둘러싼 양국의 어긋남”이라고 지적하면서, 작가 오다 마코토(小田実, 1932-2007)의 ‘난사(難死)’사상을 중심으로 ‘전몰자’에 대한 기억의 방식을 분석한다. ‘난사’란 오다 마코토의 조어로 “‘헛된 죽음’, ‘무의미한 죽음’이라는 뜻”이다. 즉 “자신들의 뜻과 관계없이 전쟁터로 내몰”린 전쟁의 희생자로서의 죽음이 바로 ‘난사’이며 이는 옥쇄(玉砕)나 산화(散華) 같은 ‘국가(혹은 천황)를 위한 숭고한 죽음’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오다는 1995년의 한신대지진 이후 지진으로 인한 희생을 또한 ‘난사’로 규정하는데, 다시 말해 스스로의 의지에 반하는 국가 권력에 의한 죽음을 통틀어 ‘난사’로 보는 것이라 하겠다. 매년 8월 15일에 개최되는 일본의 ‘전국 전몰자 추도식’은 물론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전쟁관”이 드러나는 행사이지만, 결국 ‘전몰자’를 어떤 방식으로 기억/망각하는가가 전후 일본 사회의 ‘역사인식’의 형성의 토대인 동시에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발표였다.
제3발표는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황호덕 교수가 담당했다. 황호덕은 전후 일본의 번영의 절정기였던 1980년대부터 2020년에 걸쳐 일본 혹은 일본인을 등장시킨 소설들 네 편(*)을 통해 당대의 일본과 한국의 세계사적 위치와 관계, 그리고 주로 한국 사회의 일본(혹은 일본인)에 대한 시각의 변천을 분석한다. 그래서 오늘, “한반도”에서 “열등감의 노예”는 사라졌고 일본의 “우월감 역시 ‘죄의식 콤플렉스’와의 갈등 속에서 ‘혐오’로 전환”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한국의 입장에서 더 이상 “결정적인 주제는 아니”라는 황호덕의 주장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의 분석을 통한 일본관(観)의 변천과 실체에 대한 정리는 무척 눈길을 끄는 접근이다.
제4발표는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의 남기정 교수의 발표로, 패전으로 인해 붕괴되었던 일본의 우익과 구일본군 출신자들이 한국전쟁을 계기로 어떻게 ‘전후우익’화 되었으며 이들이 이후 일본의 평화헌법과 미일안전보장조약의 “기묘한 동거” 체제인 ‘9조-안보체제’를 지탱하는 중심세력이 되어가는 경위를 여러 자료들을 이용하여 제시한다. 특히 그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각각 “전장국가”와 “기지국가”로서 공생적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지적은, 민주화 이후 “전장국가”로부터의 탈피를 시도하는 한국의 움직임이 늘 좌절되어온 최근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매우 의미심장하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한국 사회의 일본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연구는 점점 쇠퇴하고 있다. 경제력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국력’의 측면에서 일본이 더 이상 한국을 압도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리고 일본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부터 우리가 얻게 될 실익이 (표면적으로) 미미하다고 해서 일본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거두어도 되는 것인지의 문제는,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성격과 전체로서의 지향을 드러내는 주제일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단 일본 연구자들만 고민해야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개최된 이번 심포지엄은 그 구체적 내용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의 대표적인 일본 전문가들이 한자리에서 서로의 문제의식을 공유할 기회였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복거일, 『비명을 찾아서』(1987); 이지형, 『죽거나 망하지 않고 살 수 있겠니』(2000); 최은영, 「쇼코의 미소」(2013/2016); 박민정, 「세실, 주희」(2017/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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