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호] 회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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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2-11-01 12:56 조회2,64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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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인터뷰
기후운동의 티핑포인트
김현우 회원을 만나다
박주용(창비 인문교양출판부)
박주용(이하 박) : 지난 9월 24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올해 기후정의행진이 열렸습니다. 주최측 추산 35,000명의 시민이 참여해 예년을 뛰어넘은 성과로 주목을 받았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민이 나선 것은 코로나19, 폭염, 폭우 등 각종 기후재해가 이미 닥쳤고 앞으로는 더 큰 재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그만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기후운동의 최일선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오신 김현우 선생님을 이 자리에 모신 이유이기도 한데요. 우선은 세교연구소 회원들께 근황부터 들려주시지요.
김현우(이하 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10년 재직하고 3년 전에 사임했습니다. 연구기획위원은 필요에 따라 결합하는 비상근자에게 주는 직함이에요. 자유롭게 제가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나이가 50이 넘어가니까 마지막 10여년의 사회활동을 뭘 할까 궁리하고 여행도 다니고 싶어서 사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코로나가 온 거예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졌죠. 아무튼 2019년 기후위기비상행동이 만들어진 뒤에 요청에 따라 이것저것 돕기도 했고 강의를 하거나 책을 몇권 같이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탈성장과대안연구소’를 시작했습니다. 남은 사회활동 기간 동안에는 탈성장이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생산적인 얘기가 되게 하는 이론이나 연구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노년도 준비하고요.(웃음)
박 : 지난 9월 기후정의주간과 그에 이은 기후정의행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컸는데요, 이렇게 활발한 참여가 이뤄진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김 : 저는 사실 이번에 시민들이 관심이 그렇게 큰 것이었을까, 생각하게 돼요. 기후변화를 설명할 때 제가 요즘에 많이 쓰는 말은 ‘장기비상사태’ 또는 ‘정상성의 종말’입니다. 우리의 기존 삶의 기반이 서서히 무너진다는 의미에서요. 그런데 기후과학자들의 보고와 우리 체감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어요.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처음 시작된 2019년에 비해서는 커지긴 했지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해요. 단적으로 최근 진행되고 있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기후위기가 어떤 상임위에서든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잖아요. 말도 안되는 간극이고 공백이죠. 그래서 저는 이 정도로 자족하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시민들이 활발히 참여한 것은 코로나 때문에 너무도 답답했는데 이제 좀 모여보자는 게 컸고, 그 과정에서 열심히 조직화를 한 활동들이 효과를 본 것이죠. 계속 말하고 동참하자는 캠페인이 필요했다는 점이 확인된 것입니다.
박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자리에서도 기후위기 문제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나요?
김 : 주목을 받을 만한 이슈 위주로 다뤄지는 국정감사 자리에서 장기적 과제인 기후위기가 다뤄지기는 어렵습니다. 또 최근 여야 대립 국면에서는 서로 부딪칠 만한 주제가 주목을 받기 마련인데, 지금까지 기후문제로 여야가 대립한 경우가 사실 거의 없었습니다. 당적이 달랐던 역대 정부들이 말은 조금씩 달랐지만 기후와 탄소감축 정책에서는 큰 차별점은 없었고요. 공히 위기의식을 크게 안 느꼈죠. 그러니 이슈가 생기지 않고,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습니다.
박 : 한국정부도 작년에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씨나리오를 발표했습니다. 이제 정책 추진 단계에 있는 한국의 씨나리오를 지금 시점에서 평가해주신다면요?
김 : 작년에 수립한 한국의 탄소중립 씨나리오는 2050년까지 산업 부문의 에너지 소비량이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어요. 거기에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여서 대응하는데, 그래도 남는 배출량은 산림 흡수원 조성이나 국외감축, 탄소포집저장(CCS) 등으로 해결한다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 세가지 방안은 언제 실현될지도 모르고, 국외감축의 경우 파리기후협정의 미해결 협상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거기에 에너지 소비는 물론이고 산업부문의 생산량, 한국의 인구 감소 등을 적극적으로 투입할 생각도 전혀 없고요. 그러니 씨나리오와 지금 진행되는 상황 사이에 비현실적인 간극이 남아 있는 것이죠.
박 : 국제적인 흐름은 어떤가요?
김 : 대세는 바뀌었다고 볼 수 있어요. 적어도 유럽에서는 좌우 정부‧정당을 막론하고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죠. 물론 그것이 국가 운영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인지는 따져봐야 하지만요. 미국의 경우 바이든 대통령 자신이 진심인 것은 사실이지만 코로나와 뒤이은 인플레이션 경제위기, 그리고 곧 있을 중간선거 분위기가 좋지 않게 되면서 많이 후퇴하고 있어요. 그래도 유럽은 좋은 선례를 통해 논의가 이어지는 것 같고, 미국은 기업들이 먼저 바뀌고 있습니다. 에너지를 많이 써왔거나 판매하는 회사들이 이제는 고탄소 에너지로는 전망이 없다고 판단하는 흐름이 만들어졌어요. 적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박 : 윤석열정부 들어 탈원전 정책을 폐기한다는 정부여당의 말이 무성한 한편 기후위기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정권교체 이후 기후와 에너지 정책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시는지요?
김 : 윤석열정부 안에는 기후‧에너지 전문가가 없어요. 정부 내에서 조언하는 핵공학자들은 기후와 핵발전이 어떤 상관이 있는지, 또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핵발전이 어떤 경향을 보이는지 거의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거나, 정부가 듣고 싶은 말만 하고 있습니다. 2050년 탄소중립과 관련해서도 원자력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그에 따르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말해줄 수 있는 인사가 없습니다. 따라서 문제점과 이견이 점차 부각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재생에너지 비율은 어느새 10%가 넘어가고 있는 반면에 원전이 가진 문제들은 하나씩 드러날 것이거든요.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도 그렇지만, 거대한 기계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따르는 예기치 않은 문제들도 등장할 겁니다. 사실 탈원전 폐기하자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신고리 3~4호기 재개밖에 없어요.
박 : 기후위기 극복의 주체를 설정하고 발견하는 측면에서 ‘기후위기의 최일선’이라는 표현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세교연구소의 관심사이기도 한데요. 한편으로는 당자사성을 강조하는 기후운동이 대다수를 ‘당사자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도 생깁니다. 기후위기 돌파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 : 당사자 문제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기후취약국인 제3세계 국가들이 배제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어왔어요. 기후위기의 피해는 기후취약국이 가장 많이 받는데 결정은 미국과 중국이 하는 구조를 지적한 거지요. 실제로 중남미‧아프리카의 제3세계 국가에서 피해 사례들이 생겨났고요. 그런데 최근 들어 이들 취약국의 피해자들이 단순히 피해자가 아니라 말하자면 ‘토착민의 지혜’를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유기농 소농들이 실제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땅을 지속가능하게 경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든지, 아메리카 선주민 공동체가 ‘어머니 지구’라는 개념을 가지고 땅과 바람의 소리를 들어왔다든지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어요.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북반구 선진국이잖아요. 오히려 가해자 국가에 가깝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기후위기의 최일선을 말하자면 농민, 어민, 발전노동 종사자 등을 언급할 수 있겠지만, 저는 우리의 경우 ‘최일선의 악당’을 얘기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다국적기업이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하는 기업들, 그리고 산업부. 이들이 최일선 악당들인데 지금까지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사자성을 강조할 때 대다수는 당사자 아닌 것처럼 인식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도 공감합니다. 최일선에서 피해 받지 않는 사람들, 가령 서울시민들 중에서 적당히 괜찮은 주거환경에 살면서, 가끔씩 비가 많이 와서 놀라긴 해도 큰 피해는 받지 않는 사람들은 당사자가 아니냐 하면 그렇지 않죠. 그래서 ‘최일선’이나 ‘정의’가 잠재적으로 좋은 슬로건이기도 하지만 자명한 것처럼 제시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기후문제는 모든 개개인이 연결되어야 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요즘 많이 쓰는 표현이 ‘기후운동의 티핑포인트’예요. 지구온난화에만 티핑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후운동도 파편화됐던 정보와 행동이 맥락으로 묶이고 사람들이 이 문제를 나의 일로 여기게 되는 티핑포인트를 넘어가게 되면 의미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떼어가면서 조금씩 수정해가는 단계가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에리카 체노웨스는 성공한 사회운동은 절정기에 인구의 3.5%가 참여했다고 하잖아요? 이번 기후정의행진에 35,000명이 참여했다지만 3.5%는 아직 멀었죠. 그러나 일단 기후행동에 관심을 가진 집단 안에서 3.5%를 먼저 움직이는 데 목표를 두고 활동을 하면 동기부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2030년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40%도 중요하지만, 먼저 그때까지 기후운동의 티핑포인트를 넘어보자고 제안하는 중입니다.
박 : 세교연구소는 환경, 에너지 문제에 대해 점차 관심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끝으로 선생님의 최근 관심사 중에서 세교연구소 회원들과 공유하고 싶은 문제의식이나 함께하고 싶은 활동이 있으신지요?
김 : 탈성장입니다. 창비와 세교가 다뤄왔던 여러 이슈와 문제의식, 작업이 있는데, 저는 거기에 탈성장과 접속할 수 있거나, 참고할 만한 작업들이 이미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을 재발견, 재해석, 연결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탈성장이라고 하면 이제는 공감한다는 시선도 있지만 현실적이지 않다는 눈으로 보는 경우가 아직은 훨씬 많아요. 세상의 다수는 비현실적이고 어리석다고 말해도 세교연구소와 구성원들께서는 이런 문제제기와 발언이 필요하다고 공감하시고 함께 탐색해주신다면 너무 감사하겠죠. 세교연구소에는 전문 연구자뿐 아니라 작가와 문화예술인도 함께하시잖아요? 아미타브 고시라는 사람이 쓴『대혼란의 시대』의 한국어판 부제가 ‘기후위기는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다’인데, 저는 이 말이 위기를 압축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상상력이 차단되어 있거나 스스로 억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진실을 말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색을 하지 못하게 하는 문화 때문에 우리가 기후과학을 받아들이거나 해석하지 못하고 필요한 행동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접근을 세교연구소 같은 곳에서 잘해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최근에 연극, 음악, 시 등 창작 영역에서 기후위기가 많이 다뤄지는 것이 반갑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 쉽지 않은 전망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변화를 상상하는 희망에서 끝나 한편 뿌듯하지만, 뒷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내 삶을 움직일 티핑포인트는 어디쯤일까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값진 말씀 들려주신 김현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202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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