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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근] 음모론과 민주주의의 기초 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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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2-05 13:28 조회1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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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두 개의 대형 집회가 열렸다. 하나는 ‘윤석열 퇴진 사회대개혁’ 집회였고, 다른 하나는 ‘태극기 집회’였다. 총궐기한 우익의 모습이 궁금해서 태극기 집회에도 가 보았다. 예비역 장성이라는 이가 연설을 하는데 대단한 선동가였다. 피 토하듯 절규하는 내용이 부정선거 규탄이었다. 작년에 치러진 총선이 선관위와 북한이 개입한 부정선거였다는 것이다.


계엄은 부정선거를 밝혀내기 위한 불가피한 비상 조치였다며 비장하게 총궐기를 호소하는 것이었다.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굉음, 음악 소리, 청중의 열렬한 호응이 뒤섞여 귀가 먹먹했다. 전광훈 목사가 등장하며 광장이 뒤흔들릴 무렵 발길을 돌렸다. 아득해졌다.


직접 본 현장은 미디어 속 이미지와는 차이가 컸다. 추운 날 길 위에서 피 끓는 목소리로 부정선거 규탄을 외치는 이들을 보니 확신이 대단했다. 진심이 넘쳤다. 그들은 선관위 등 국가권력의 핵심부가 좌파에 장악당했다며 분노에 치를 떨었고, 부당하게 유폐된 지도자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에 피눈물을 흘렸다. 


이들이 일당 받으러 나오는 가난하고 무지한 노인에 불과하다며 비웃는 이가 적지 않다. 최소한 세 가지 점에서 옳지 않다. 첫째, 잘못된 신념을 비판할 일이지 가난과 무지를 비난할 일이 아니다. 둘째, 이들은 일당이 아니라 신념을 좇는다. 실은 그래서 더 심각하다. 셋째가 치명적이다. 부정선거론의 원조는 저들이 아니라 소위 ‘진보’ 진영이라는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이 박근혜에게 패배하자 이른바 ‘k값 이론’을 앞세운 부정선거론이 등장했다. 논문과 영화까지 제작하며 수년간 집요하게 논란을 이어갔다. 내 주위에도 음모론을 믿는 이들이 적잖았다. 한국은 애초에 전자개표가 아니라 수개표이며, 그런 식의 부정선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상식적 반론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존재의 정당성을 부정당한 선관위가 진 쪽이 비용 전액을 부담하자며 전국 재검표를 제안하자 이들은 침묵했다.


다음번 대선에서 k값은 더 커졌다.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더 심각한 부정선거였지만 문재인이 이기자 이들은 부정선거론 선동에서 조용히 철수했다. 수년간 큰 혼란을 일으키고 심각한 불신을 조장했지만 사과했다는 소식은 끝내 없었다. 대신 우익에 후계자를 남겼다.


탈진실의 시대, 음모론의 시대라고들 한다. 우리가 사실로 알고 있는 것들이 실제로는 사실이 아니며, 참된 사실은 권력에 의해 은폐되고 있다는 믿음이 창궐하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지구가 평평하다거나 아폴로 11호가 달에 가지 않았다는 음모론이 유명하다. 값싼 개 구충제로 암을 고칠 수 있는데 값비싼 항암제를 팔려고 의약계가 숨겨왔고,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하며, 코로나19 백신 속 스파이크 단백질이 흘러나와 미접종자에게 코로나19를 옮긴다는 따위의 음모론이 횡행했다. 유대계 자본이 황우석 박사의 기술을 탈취하기 위해 MBC를 움직여 황우석 박사를 공격했다는 음모론을 믿은 이들도 많았다. 그 중에는 분신으로 항의한 이도 있었다. 


교육 수준이 낮은 이들이 음모론을 잘 믿는다는 믿음이 있다. 그럴까? k값 이론을 설파하던 이들 중에 스스로 깨어 있다고 자부하는 고학력자가 적잖았다. 그 자부심이 오히려 문제가 아니었을까? 제프리 코헨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작년 10월 『실험 심리학 저널』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흥미롭다. 학력이 높든 낮든 뉴스를 판단할 때 정보의 정확성보다 ‘자신의 믿음’을 우선시하는 건 똑같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시대다. 더 배웠다고 다르지 않다. 


사회학자 전상진은 저서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자는 비합리적이기보다 오히려 합리주의의 과잉에 시달린다고 보았다. 이 세상에는 어떤 우연도 있을 수 없고, 모든 중요한 사건의 배후에는 누군가의 의도와 개입이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음모론자들은 오히려 과잉 합리주의자라는 진단이다. 이 세계에는 우리가 이유를 다 알 수 없는 고통이나 비극이 존재한다. 사실 앞에 겸손해져야 하는 이유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추』는 음모론을 믿는 이들이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음모에 맞춰 사실을 ‘창조’하다가 결국 파국에 이르는 비극을 보여준다. 윤석열 탄핵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응급 처방이라면, 음모론을 넘어서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초 체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보수와 진보가 다를 수 없다.


조형근 사회학자 

교수신문 2025년 1월 20일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3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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