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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특권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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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3-05 14:35 조회6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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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관 존재 이유는 개인 권리 보장이기에 권력 기구의 권한은 권리이자 의무


불체포, 불기소 특권은 범법자의 특전이지만 죄를 짓지 않음으로써 상징적 힘을 발휘 거부권 또한 마찬가지


특권의 역설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여야 사이의 신뢰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서로 약속 지켜야 가능


권리, 권한, 특권인 의결·거부·소추·선포권 적정선은 아무도 몰라


혼란이냐 안정이냐 새 질서가 해결할 문제


권리는 그 특성 중 배타성 때문에 만족감을 준다. 권리의 고유 영역에서 타인의 간섭을 배제하여 자유라는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권리가 개인에게 속하는 것일 때 배타성으로 얻는 만족감은 행복이다.


국가기관의 권리는 개인의 권리와 확연히 다르다. 헌법의 국가기관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권력기구의 권리는 권한이라고 표현한다. 권한도 고유의 범위 내에서 배타성이 인정되지만, 그로 인한 결과는 국가기관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권한을 배타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권리지만, 그 효과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장에 지향되어 있다는 측면에서는 의무다.


특권이란 것이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나 면책특권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헌법 조문에 특권이라는 표현은 없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오직 현역 국회의원에게만 부여되는 권리이므로 특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특정한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만 인정되는 것을 특권이라고 한다면, 헌법상 국가기관의 권한은 모두 특권이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대통령, 사법부 등의 권능은 특권일 수밖에 없다. 보통의 권리와 다르다는 점에서 특권을 가진 자가 특별해 보일 때도 있다. 그 지점에서 특권의 운명이 갈린다. 아니면 특권이 행사자의 운명을 결정한다.


영국은 입헌군주제의 전통에 따라 모든 의회의 결정에 대한 추인권을 왕이 가진다. 그런데 왕은 특권처럼 부여된 추인거부권을 단 한 번도 행사하지 않는다. 한편 국왕은 모든 기소 대상에서 제외된다. 불기소특권이다. 그러나 왕은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음으로써 불기소특권을 유지한다.


호주는 영국 왕을 국왕으로 삼는다. 영국 왕이 임명하는 총독은 헌법상 통치기구의 하나다. 의회에서 의결하는 모든 법률안은 왕을 대리하여 총독이 승인하거나 보류한다. 총독이 승인한 법률도 왕이 1년 이내에 불승인하면 효력을 상실한다. 지금도 여전히 왕과 총독의 헌법상 특권은 변함 없다. 헌법이 탄생한 이후 단 한 차례도 불승인권 행사가 이루어진 예는 없다.


불체포나 불기소 특권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 향유할 수 있는 특전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음으로써 그 상징적 힘을 계속 발휘하게 한다. 승인할 때 승인권은 일상의 권리처럼 보이지만, 거부할 때 비로소 특권으로 드러난다. 거부권 역시 좀처럼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특권은 온전하게 유지된다. 특권의 역설이다.


역설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정치적 관행이다. 관행은 여야의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합의한 약속을 서로 지킬 때 가능하다. 헌법이 규정한 권한이라고 예외적 특권을 행사하는 순간, 정치적 상황은 복잡하게 돌변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되고, 결국은 일반 법률의 권리처럼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로 달려가 결말을 요구한다.


헌법이나 법률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진 우리에게 정치적 관행은 아주 비논리적이어서 불합리한 것처럼 보인다. 주어진 권리나 권한은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본분에 충실한 것으로 여긴다. 법률안 의결권과 거부권, 탄핵소추권, 비상계엄 선포권 등은 한쪽 측면에서 보면 법적 권리요 권한이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 정치적 특권이다. 어디까지가 행사의 적정 한계선인지 아무도 모른다.


무엇이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무엇이 안정을 가져다 주는가? 이 역시 미래의 새로운 질서가 해결할 문제다. 지난날 프랑스 헌법학자의 한마디가 의미심장하게 들릴 뿐이다. “프랑스 정부의 강력함과 안정성은 헌법보다는 단결력과 규율이 있는 의회 다수파의 존재에 더 의존하고 있다.”


차병직 변호사 

법률신문 2025년 2월 5일 

https://www.lawtimes.co.kr/opinion/20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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