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 분쟁의 코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10-24 10:25 조회17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그랜드슬램 단식경기 한때 심판 최대 14명
장호배 주니어대회는 심판 없이 경기 경기 진행 멈추면 공 떨어진 곳 선수가 즉시 스스로 판정 의심스러울 때는 상대방에 유리하게
규칙 제대로 지키면 불복 사태 없어 국제 연맹도 권장
강제로 하는 소송 심판 앞에 가기 전에 자율판정하면 서로에게 도움
불가능에 가깝지만 AI에 맡기기 싫을 때 화해의 장 될 수 있어
테니스는 선수에 비하여 가장 많은 심판이 참여하기도 하고, 심판이 아예 없기도 하다. 과거 그랜드슬램 단식 경기를 예로 들면, 선수는 두 명이지만 심판은 최대 14명이었다. 주심인 엄파이어 외에 선심만 12명이었다. 양쪽 코트의 베이스라인과 서비스라인에 한 명씩 네 명을 건너편까지 배치하면 8명이다. 거기에 사이드라인을 전담하는 선심을 양쪽 코트에 두면 4명, 마지막으로 네트 부심까지 하면 모두 14명이었다. 심판 전원이 제복을 입고 직사각형의 코트 위에 서면 그것만으로도 압도적이었다. 경기가 길어질 때면 도중에 선심 전원을 교체하는데, 근위병 교대식을 방불케했다.
지금은 그런 광경을 볼 수 없다. 부심은 사라진 지 오래고, 선심은 줄어들었다. 그나마 분쟁이 생기면 AI가 즉시 해결하는 챌린지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남아 있는 몇 명의 심판도, 결단만 내리면 언제든 모두 집으로 보낼 수 있다. 전자장치가 판정해 주는 대로 전광판만 쳐다보며 경기를 치르면 된다.
컴퓨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던 시절에 심판 없는 경기가 열렸다. 1957년 시작한 장호배 주니어 테니스대회로, 지금도 존속한다. 어린 선수들에게 진정한 스포츠 정신과 윤리 의식을 심어 준다는 취지에서 심판 없이 모든 경기를 시작했다. 지난날 단신으로 미국 진출을 시도했던 이덕희나 요즘 예능 프로에 얼굴을 비치는 이형택도 그 대회 출신이다.
판정은 자율이다. 선수들 스스로 한다. 다만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경기가 멈추면 공이 마지막으로 떨어진 코트의 경기자가 판정한다. 네트 너머의 상대방이 자기 주장을 하거나 의견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 아웃 또는 폴트의 판단 결과는 큰소리로 알린다. 상대방이 들을 수 있어야지 혼자 중얼거리면 곤란하다. 판정은 즉시 해야 한다. 공이 떨어진 자리를 한참 쳐다보고 있거나 생각에 잠기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가까이 있는 관중이나 다른 사람에게 물어도 안 된다. 그런 경우를 예상하여 애매한 모든 순간에 적용할 수 있는 마지막 원칙이 있다. “의심스러울 때는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복식 경기에서는 공이 마지막으로 떨어진 지점에 가까이 있던 선수가 판정한다. 일일이 줄자로 재 가며 순간의 심판을 정할 수 없는 노릇이므로, 같은 편의 두 사람이 동시에 판정할 때가 생긴다. 결과가 같으면 문제 없지만, 두 사람의 판단이 다를 때 곤란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때도 마지막 원칙을 동원하면 깨끗하게 정리된다.
자율 판정 테니스 규칙은 국제테니스연맹에서도 윤리규정으로 확립해 권장한다. 어떤 규정도 마찬가지만, 제대로 지키면 판정에 불복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 불만은 많겠지만, 경기장 밖에서 해소해야 한다. 상대방의 의도적인 오심으로 경기에 졌다는 불만은 상대방이 의심스러울 때 자기에게 유리하게 판단했다는 의심 때문이다. 결국 양쪽 선수 모두 자율 심판 규칙을 어겼을 때 생기는 불상사다.
소송 분쟁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사건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경기와 다르다. 강제로 동원된 한 판이다. 그런 경우에도 심판들의 사무실인 법원에 찾아가기 전에 자율 판정의 방법이 없는지 생각해 보면, 삶의 만사에 도움이 된다. 당연히 양쪽 모두 방식에 동의해야 가능하다. 당장은 불가능에 가까운 극적 방안이라고 속단할지 모르나, 최후의 심판을 감정 없는 AI에게 맡기기 싫은 사람끼리는 가능한 화해의 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코트에도 싸움이 너무 많다.
차병직 변호사(법률신문 편집인)
법률신문 2025년 9월 17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