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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영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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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6-04 13:57 조회2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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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덕에 당선된 링컨 남부를 연방에 가두려 노예해방 내세워 전쟁 해방한 노예 거의 없고 백인만의 미국 꿈꿔


인도인 단결시킨 간디 무슬림 포용은 거절해 결국 파키스탄 건국


그럼에도 이들이 대우받는 이유는 과보다 공이 크기 때문


지금 필요한 대통령은 위대한 지도자 아닌 원만한 국정 운영자 큰 실수하지 않고 실수보다 공적 크면 돼


며칠 뒤 나올 대선 결과 당선자 찍지 않은 쪽의 냉정함과 침착함이 새 정부 실수 막을 것


저것이 영웅인가? 종로 1번지 빌딩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의 두 인물이 눈에 들어온다. 김훈이 장편소설 《칼의 노래》를 완성해 놓고 처음 생각했던 제목이 ‘광화문 그 사내’였다는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그것이 영웅이다. 박제된 이미지,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청동으로 굳혀 놓은 형상이 숭배의 대상이다. 그들의 모든 인간적 결점은 쇠를 녹일 때 함께 사라졌다. 빛나는 청동은 현대판 신화다.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는 영웅을 기대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일 때가 많다. 후보자들이 공약을 내걸 때마다 누가 진짜 영웅이 될 것인가를 두고 경합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현혹된 지지자들이 환호하면, 환각 상태의 일시적 영웅이 탄생한다.


인류의 역사, 아니면 정치사에 영웅은 있는가? 영웅화된 인물은 많아도 영웅은 없다.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영웅은 절대적 영웅일 테니까 더욱 존재할 수 없다.


영웅화된 인물의 예를 든다면, 링컨이 있다. 북부의 몰표로 겨우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은 엄청난 희생을 초래한 남북전쟁을 선택했다. 노예 해방 때문이 아니라 이탈하려는 남부의 주들을 연방에 묶어 두기 위해서였다. 노예 해방은 정부의 권한이 사실상 미치지 못하는 지역에만 선포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의 노예들은 해방하고, 당장 해방할 수 있는 노예들은 그대로 두었다. 선언의 결과로 해방된 노예는 거의 없었지만, 해방되더라도 노예는 모두 아프리카 등지로 보내고 백인만의 미국을 꿈꾸었다. 트럼프의 공화당 정치 선배답게 당시에도 높은 관세 부과로 정부 재정 안정을 도모했다. 말도 자주 바꾸어 정직한 거짓말쟁이라는 비아냥도 따랐다. 링컨의 가장 큰 업적은 지금과 같은 통일된 대국가를 유지하게 만들었다는 것인데, 반연방파가 볼 때는 헌법을 무시한 독재였다.


하나의 예가 부족하다면, 간디도 있다. 성인이 아닌 정치인 간디는 인도 독립운동사에서 민중을 하나로 단결시킨 청렴한 인물이었지만, 무슬림의 포용을 거절해 파키스탄 건국을 초래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징병관을 맡아 인도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전장에 내보냈다. 우선 제국이 안전해야 인도의 자치(스와라지)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혁명가 바가트 싱의 처형을 영국인 총독에게 요청한 사실까지 살펴보면, 간디에게 폭력과 비폭력은 전략과 전술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개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디와 링컨이 대단한 지도자로 대우받는 것은 결과적으로 과보다 공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평가에는 운도 따라야 하지만, 두 사례와 정반대의 경우도 많다. 현재에 대한 혐오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끔 우리를 과거로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면 예능 프로 같기도 하다. 최고 인기의 연예인처럼 매력적이면서 영웅의 힘을 발휘할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한다면, 점점 비현실적 수렁으로 빠져든다. 우리 현실에 필요한 대통령은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라 원만한 국정 운영자다. 큰 실수를 하지 않고, 실수보다 조금 많은 공적을 이룰 사람이면 충분하다.


위험해 보이는 인물도 기회가 보장되면 링컨이나 간디처럼 될 수 있다. 영웅의 자질을 가진 듯한 인물도, 간디나 링컨처럼 실망스러운 선택을 할 수 있다. 링컨과 간디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현재의 모든 정치인을 지칭하는 이름들 중의 하나다. 선거 결과에 흥분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없다. 당선된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사람들의 냉정함과 침착함이 새 정부가 잘못된 길로 빠지는 실수를 막게 할 것이다.


차병직 변호사 


법률신문 2025년 5월 28일 


https://www.lawtimes.co.kr/opinion/208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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