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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언] 시간을 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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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7-12-15 11:04 조회58,6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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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23583.html

 

김학중, ‘강을 굽다’
<창세>(문학동네, 2017) 

 

관용어가 새삼스러울 때가 있다.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말에도 그 말이 생겨나기까지 저마다의 역사가 있다는 걸 모르지 않으나, 사람들이 어떻게 그 표현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에 골몰하다보면 ‘왜 꼭 그 표현일까’ 싶은 호기심이 일기도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표현도 그렇다. 추상적인 ‘시간’이란 개념 옆에 왜 ‘흐른다’는 말을 두었을까. ‘흐름’이 갖춘 운동적인 속성을 떠올리면, 우리는 어쩌면 매 순간 방금과는 다른 다음에 이르기를 기대하며 사는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얼마만큼 나아갔고 나아가고자 한 거리만큼 스스로를 잘 감당하며 살았나. 나는 강물이 흘러가듯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고 있나. 이는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시간’이란 말을 할 수 있는 한 잘 부여잡아 조물조물 주물러도 보고 깎아내기도 하면서 제법 괜찮은 꼴의 무언가로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우리를 찾아오기에 갖는 질문들일 것이다.

​

김학중 시인의 ‘강을 굽다’는 도자기를 굽는 사람의 손끝에서 흐르는 강(江)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그린다. 이는 시를 읽다보면 완성품으로서의 도자기와 거기에 새겨진 물결무늬가 구분되어 읽히지만은 않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도자기가 곧 강이고 강이 곧 도자기인 세계를 시인이 발견한 것 같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런 세계에선 흐르는 강을 굽는 행위란 곧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제멋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조심스레 ‘삶’으로 빚어내는 행위와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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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차다/ 빛을 받은 물비늘 너머로 희미하게/ 조약돌이 보일 듯 깊지도 얕지도 않은 강/ 물살은 방금 방생한 치어처럼 가쁘게/ 그 모가지를 확 잡아챈 병목 아래에서/ 선 채로 바둥거리는 강. 누군가/ 강을 구웠다. 가마 안의 열기만으로/ 강물을 붙잡았을까. 모를 일이다/ 물레 위에서 물결 안에/ 내면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손을/ 미끈거리는 날것을 붙잡으려 할수록/ 자꾸 새어나갔을 물결. 손가락 사이에서/ 격한 물소리가 났을 것이다. 그 소리에/ 베었을 것이다. 대지가/ 끌어안고 있는 강을 구우려 하다니/ 태초부터의 불경을 잇고 있는 자여/ 물소리에 베인 손가락은 물결의 내면에/ 가라앉았을까. 도자기가 순간 웅크린다/ 살의를 가진 짐승처럼 노려보는 강/ 누군가 흐르는 강을 구웠다. 그는 없고/ 도자기 하나만이 남아 있다. 그 아래/ 병을 떠받치고 있는 손이 있다/ 유약이 잘 발린 손이 있다/ 강이 천천히 굽이친다.”(김학중, ‘강을 굽다’ 전문) (후략)

 

 

양경언 문학평론가
(한겨레, 2017년 12월 14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23583.html#csidxb788d3f9d14e255bdf10b3c0f2864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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