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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근] 연구자공제회를 바라보는 어떤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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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7-16 11:01 조회3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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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쯤이던가, 함께하던 연구자 동호인들의 연말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학원생부터 중견 교수까지 20~30명이 담소와 노래로 흥겹게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젊은 연구자들의 불안정한 처지가 화제로 떠올랐다. 걱정하고 공감하며 대화가 이어졌다. 문득 한 선배 연구자가 화를 냈다. 독재 시절 운동권 경력 탓에 박사과정 입학도 거부당하고 현장에서 오래 활동한 이였다. 학계에 자리 얻겠다는 꿈 따위 없이 공부와 실천에 매진했는데, 그 경험이 외려 자산이 되어 정규직 교수가 됐다는 취지였다. 교수 자리에 목매지 말고 공부와 활동에 힘쓰라며 나무랐다.


시대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노오력’하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제자 격 후배 연구자들이 반발했다. 서로 물러서지 않았고 논쟁은 결론 없이 끝났다. 그는 꼰대였을까? 실은 열린 이였다. 그러니 논쟁도 했던 것이다. 보통은 논쟁은 엄두도 못 낸다.


내가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던 무렵이 생각난다. 1980년대에 공부를 멀리했던 나는 동기들보다 2년 늦게 졸업반이 되면서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주변의 만류가 많았다. 미국 유학이 아니라면 취직이 매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유학 반대파가 아니다. 다만 한국의 자료와 연구자들에 절대 의존해야 하는 내 관심사를 감안하면 한국에서 공부하는 게 맞다고 믿었다. 순진하다며 선배들이 혀를 찼다. 박사학위 취득을 앞둔 한 선배는 따로 불러서 근년의 교수 채용 현황을 알려줬다. 평생 불안정한 삶을 살려는 것이냐며 말렸다. 그래도 진학하겠다고 버티자 결국 선배는 내 손을 잡았다. “환영한다. 합격해서 동료가 되자.” 


이 미담(?)에는 반전 같은 후일담이 있다. 나를 걱정해주던 선배들은 대부분 대학 정규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것도 꽤 빨리. 김영삼 정권의 대학설립 준칙주의, 정원 자율화 정책과 맞물려 대학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덕분이다. 하지만 대학의 팽창은 오래가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규직 취업시장의 문에는 공고한 빗장이 걸렸다. 그 문이 닫힐 즈음 시장에 나서게 된 우리 세대 동료 중에는 나처럼 오랫동안 비정규직 생활을 감내한 이들이 적지 않다. 


어려움을 각오한 것은 같았으되 삶의 경과는 꽤 달랐다. 그 차이를 만든 결정적 요인은 능력도 성실성도 아니고, 태어난 시기가 몇 년 빠르고 늦은 우연이었다. 21세기가 되자 한국은 완연히 선진국이 되었다는데 학계의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됐다. 풍족해진 한국사회는 더 간절히 돈을 원했다. 기업화된 대학에서 인문사회계는 돈이 안 된다며 갈수록 축소되고, 내부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신분제적 차별 원리’ 위에 작동한다. 비정규 노동자, 비정규 교수의 값싼 노동력 없이 한국의 대학은 유지되지 못한다. 지금의 젊은 연구자들은 그 비정규 교수 자리마저 얻기 어렵다.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등 약간의 지원제도가 있지만 선정률은 20~30%, 다수는 탈락하는 구조다. 계속 선정된다는 보장은 더욱 없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보고서 ‘대학 밖 학술단체에 대한 현황조사와 불안정 연구자를 위한 지원 및 연구안전망 구축 방안 연구’(2023)에 따르면, 비정규, 불안정 연구자들의 월 소득은 100~200만 원 미만이 33.8%로 가장 많다. 그해 최저임금이 월 201만 원이었다. 300만 원 미만이 76.4%로 3/4을 넘는다. 일시든 상시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는 응답도 67.8%에 달한다. 64%는 정신과 치료의 필요성을 느낀 적이 있다. 84%가 은퇴 후의 삶에 불안감을 느낀다. 평생 불안정한 삶이다. 


2021년 11월, 1천700여 명의 연구자들이 ‘연구자 권리선언’에 동참했다. 연구자의 책무와 권리, 국가의 의무를 공공의 의제로 제시했다. 이듬해부터는 연구자복지법 제정 등 연구안전망 확립도 요구하고 나섰다. 대학도, 국가도 응답하지 않고 있다. 목마른 자들이 서로 돕는 법이다. 올해부터는 연구자공제회를 만들어 서로 돕자는 움직임이 추진 중이다. 어떤 내용인지 찾아보니 십시일반 회비를 모아 상조와 의료지원 등 일상 서비스와 연구데이터베이스 이용 등 연구지원에 사용하자는 안이다. 소박한데 절실한 것들이어서 마음이 저렸다.


정규직 교수도 힘든 시절이다. 인문사회계는 더욱 그럴 것이다. 겪어봐서 조금은 안다. 하지만 정년도, 연금도 보장받은 이들이 어렵다고 외면하면 누가 나설 수 있을까? 공제회 안을 보니 후원도 할 수 있고, 무이자로 기금을 기탁할 수도 있다. 말과 글로 함께할 수도 있다. 세상을 탓하기는 쉽지만 바꾸기는 어렵다. 그 쳇바퀴 안에서 우리는 맴돈다. 거기서 빠져나와 후학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어떨까? 그마저 어렵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조형근 사회학자 


교수신문 2025년 6월 17일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36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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