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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언] 억압을 푸르게 물리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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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8-08-24 10:42 조회56,9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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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솟구쳐 오르기 1’
<흰 나무 아래의 즉흥>(나남,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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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라고 해서 물로 구멍을 뚫을 수 없는 건 아니다. 한두 방울의 물이라면 바위 사이사이에 나 있는 조그만 틈에 고이는 정도겠지만, 그 물방울들이 오랜 시간을 거쳐 물줄기를 이룬다면 바위는 틀림없이 처음과는 다른 생김새가 될 것이다. 깎여나가고, 바뀔 것이다. 이는 그 어떤 권세를 누리고픈 자가 무시하고자 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당연한 질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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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의 한복판을 가득 채워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에 반발하고, ‘여성에겐 국가가 없다’고 외치며 국가는 여성에게 공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절박한 목소리들이 언젠가는 앞서 언급한 ‘당연한’ 사실을 역사의 현장에서 이룰 것이라 믿는다. 그 목소리들을 떠올리며 오늘의 시를 읽는다. 같은 구절이 나란히 서 있는 이 시의 원래 형태를 상상하며 읽다보면 글자들이 마치 물줄기처럼 벼랑 위에서도 겁내지 않고 기꺼이 점프를 하는 듯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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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을 뚫지 않으면/ 억압을/ 억압을/ 억압을// 악업이 되어/ 악업이/ 악업이/ 악업이// 두려우리라// 절벽 모서리에 뜀틀을 짓고/ 절벽의 모서리에 뜀틀을 짓고/ 내 옆구리를 찌른 창을 장대로 삼아/ 하늘 높이/ 장대높이뛰기를 해보았으면// 눈썹이 푸른 하늘에 닿을 때까지/ 푸른 하늘에 속눈썹이 젖을 때까지// 아, 삶이란 그런 장대높이뛰기의 날개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상처의 그물을 피할 수도 없지만/ 상처의 그물 아래 갇혀 살 수도 없어// 내 옆구리를 찌른 창을 장대로 삼아/ 장대높이뛰기를 해보았으면/ 억압을 악업을/ 그렇게 솟아올라/ 아, 한 번 푸르게 물리칠 수 있다면”(김승희, ‘솟구쳐 오르기 1’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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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억압의 창이 옆구리를 찌를 때 그것을 그대로 두면 상처가 썩어나갈 뿐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 같다. 반복되는 억압은 더 큰 악업을 불러올 뿐이라고. 그러니 이를 “푸르게 물리”치고자 하는 시의 바람은 고통과 긴장의 시간을 뚫고 뛰어오를 도약의 순간을, 또는 바위의 모양새조차 바꿔낼 언젠가를, 끈질기게 추구할 줄 아는 시인의 심지에서 발아한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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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판결을 처음 들었을 때, 법제도의 편향적인 해석과 판단에 실망을 금치 못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참담한 기분이 든다는 얘기를 나눴었다. 참담에서 그칠 수 없을 일이다. 많은 논자들이 판결의 부당함을 짚기도 했거니와, 제도의 언어가 굼뜨게도 포착하지 ‘않으려 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감수성은 강자에게만 유리하게 집행되는 법질서로 운영되는 억압적인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목청껏 말하고 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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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언 문학평론가
(한겨레신문, 2018년 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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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58990.html#csidxdac97f327db5d079ddca97827f334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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