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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특이점의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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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12-12 14:18 조회8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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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구조는 매끄럽고 안전하지만 그림자에는 뾰족한 모양 생겨 대수기하학에선 이를 '특이점'이라 하고 수학자들은 이를 해소하려 골몰


현실 개혁도 이와 같아 특이점 해소에서 출발 하지만 뾰족한 부분은 힘으로 도려낼 수 없어 


단순한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우리의 지혜이고 실체


롤러코스터를 쳐다보기만 해도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망설이던 끝에 올라탔다가 아찔한 경험을 하고는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그러나 롤러코스터는 여러 역학적 지식을 동원해 안전하게 설계한다. 휘고 뒤집히는 곡선은 매끄럽다. 간혹 전기 장치 등의 고장으로 멈추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모든 조건이 정상 상태라면 절대적으로 안전하다.


햇빛이 찬란한 대낮에 과장된 비명 소리가 요란한 롤러코스터 아래 땅바닥을 보면, 단순화된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리운다. 허공에 얽힌 입체의 레일이 흑백의 평면 도형으로 나타난다. 그림자의 선이 겹친 부분에는 날카롭고 뾰족한 모양도 보인다. 그것이 실제 궤도라면 열차가 달리다가 레일을 이탈해 허공으로 날아가버릴 것이다. 그 뾰족한 부분을 대수기하학에서는 특이점이라 부른다.


보통 특이점이라 하면 기존의 기준이나 해석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특별한 지점을 말한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초지능 AI가 등장해 우리의 사회를 예측불가능하게 만드는 미래의 어느 시점을 가리킨다. 다양한 관점을 포괄해서 간략히 정의하자면, 기존의 틀을 넘어서 전혀 새로운 국면이 열리는 전환점이다.


선과 선이 교차할 때 나타나는 뾰족한 대수기하학의 특이점은 대수 방정식으로 만들어진 많은 도형에 나타나는데, 수학의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불편하고 까다로운 존재다. 수학자들은 성가신 특이점이 있는 도형을 특이점이 없는 도형으로 변환시키기 위해서 골몰한다. 특이점을 제거하는 일을 ‘특이점의 해소’라고 한다. 수학자들의 특이점이 보통 사람들이 상식으로 아는 특이점과는 상반되는 성격의 개념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수학에서도 특이점을 해소하면 결국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므로, 많이 다르지 않다.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대수다양체의 특이점 해소 정리를 증명해 1970년 필즈상을 받았다. 한때 서울대 초빙 석좌교수로 근무한 적도 있다. 한국의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가 그때 제자였는데, 이렇게 회상했다. “20대 중반에 히로나카 교수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악보만 읽던 사람이 처음으로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


히로나카는 특이점 해소를 물체의 본질과 그림자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에 비유했다. 매끄러운 곡선으로 열차가 신나게 달릴 수 있는 롤러코스터 궤도 자체인 본질과, 뾰족한 부분이 나타나 신경 쓰이게 하는 그림자 사이의 관계를 떠올리면 된다. 히로나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붓다가 사는 세계를 물체의 본질, 사람이 사는 세계를 그림자의 은유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일상에서 갈팡질팡하며 고민에 빠지고 불합리한 행동을 일삼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과 망상을 해소해야 할 특이점으로 봤다. 붓다의 차원에 도달해서 그림자를 지배하는 인과관계의 발견을 자기 학문의 목표로 삼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를 기대한다. 보다 나은 차원에서 멋지게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어떤 식이든 어느 분야든, 개혁은 그런 희망의 수단이다. 개혁은 거기에 방해되는 요소, 즉 현실의 뽀족한 장애물 같은 특이점을 해소하는 데서 시작한다. 수학의 특이점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소수의 수학자들이 해소하고, 현실의 특이점 제거는 힘이 있는 정치가들이 담당한다. 그런데 그림자의 뾰족한 부분은 힘으로 도려낼 수가 없다. 레일의 배치를 바꿔도 해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단순한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은 열린다고 보아야 할까? 그 정도가 우리가 가진 지혜의 전부이고, 우리 자신의 실체다.


차병직 변호사(법률신문 편집인)


법률신문 2025년 11월 19일


https://www.lawtimes.co.kr/opinion/21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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