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 순간과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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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12-04 11:35 조회44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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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삶이고 어디부터 죽음인지 그 경계는 불분명
명확함 좋아하는 이들 자주 ‘법대로’ 외치지만 그도 쉽지않아 법조문의 취지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때도 있기 때문
정치 결정도 마찬가지 선거로 하던 심판을 거리투쟁이 바꾸기도
시간은 변화를 가져와 영웅들이 이끌던 역사 이젠 배우가 움직이면 시민들이 반응해 현대사를 쓰는 느낌
최근 죽음을 소재로 한 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다. 불치의 병에 걸린 여성이 스스로 안락사를 결행하기로 하고, 친구에게 옆방에서 지내며 도와주기를 부탁한다. 죽음은 순간인 줄 알았는데, 하나의 과정을 보여준다.
실제로 죽음은 순간이 아니다. 태어난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은 확정적이지만, 죽는 시기는 불확실하다. 죽은 사람도 정확히 언제 죽었는지 모른다. 의학적 죽음과 법률적 죽음이 다르고, 그 안에서도 학설이 나뉜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극히 불분명하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임사체험》에 수록된 사례만 하더라도, 그 경계를 넘나들다 돌아온 경험자들의 증언은 실감 나게 만든다.
삶과 죽음이 혼재된 모습은 뇌사와 심장사 사이에서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장기이식에서 명확히 본다. 죽음이 한순간에 끝나버리면 불가능한 절차다. 죽음의 신에 대항하여 인간이 거두는 부분적 승리다. 죽음의 과정에서는 마치 슈뢰딩거의 상자 안에 든 고양이처럼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며, 산 것이기도 하고 죽은 것이기도 하다.
태어날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언제쯤 출생했는지 말할 수는 있어도, 몇 분 몇 초인지는 어렵다. 태아의 기간을 고려하면 인간 생명의 시작이야말로 기나긴 과정이다. 태아는 엄연히 살아 있지만,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삶 이전의 상태가 섞여 있다. 상속과 관련해서 태아는 미리 인간의 지위를 법적으로 부여받기도 한다.
명확한 것을 선호하는 우리는 자주 “법대로”를 외친다. 그러나 꽤 노력을 기울여도 법대로 하는 일은 쉽지 않다. 희한하게도 무엇이 법대로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장으로 서술되는 조문의 의미는 시간과 상황에 따라 흔들린다. 제정 때의 취지는 잊히거나 무시될 때도 있다. 법문의 해석과 적용은 일의적이지 않아 그 자체가 재판이라는 지난한 과정이 된다.
옳고 그름도 순간에 판단할 수 없다. 따지고 설득하고 이해하고 양보해야 비로소 어느 지점에 도달한다. 확장하면 윤리 영역에까지 이른다. 선과 악도 문화적 분위기의 영향을 받는다. 순간은 없고 순간이 이어진 과정만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은 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정치적 결정도 예외가 아니다. 유권자로서 개인은 투표 행위를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시한다. 거기에는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심판까지 포함된다. 하지만 개인의 정치적 판단은 투표소에서 기표를 하는 순간의 행위가 아니다. 선거 기간 중 여론조사의 동향을 비롯한 온갖 보도와 함께 직간접적으로 정치 바람을 맞는다. 투표가 끝나고 당선자가 결정되고 나면,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임기 동안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지난날 알았던 민주주의의 대원칙이었다. 선출된 자로 인하여 어떠한 고통을 당하더라도, 임기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심판은 다음 선거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언젠가부터 그 원칙도 무너졌다. 임기 중이라도 참을 수 없다면 거리로 나서 투쟁하게 되었다. 직접행동이 민주주의 원칙의 일부로 변환되었다. 투표권을 가진 국민 개인의 정치적 선택 역시 순간이 아닌 끊임없는 과정으로 바뀌었다.
시간은 변화를 가져온다.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는 바뀐다. 그 시간을 흐르게 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 아닌 것 같다. 우리의 마음, 의지, 행동이 시간을 흐르게 한다. 법도 정치도 거기서 발생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정치적 삶과 죽음이 뒤엉킨다. 우리가 역사를 만들어 간다.
과거에는 정치적 영웅이 등장해 역사를 이끌어가는 듯했는데, 요즘은 정치 무대의 희비극 배우들이 움직이면 거기에 반응하는 시민의 행동으로 현대사를 써 가는 느낌이다.
차병직 변호사
법률신문 2024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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