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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근] 북토크를 하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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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12-04 11:36 조회4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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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에 책을 냈다. 주간지에 연재한 역사 에세이를 묶은 대중서다. 멀리 떨어진 나라, 서로 다른 시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이 서로 연루되는 이야기들이다. 전공 분야가 그렇다 보니 제국과 식민지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들이 주종을 이룬다. 조각조각 에피소드들이라 보완했지만 역시 주제의 통일성이나 밀도는 떨어진다. 대중 교양서니까 괜찮다고 핑계를 대 보지만 좀 더 충실하게 내면 좋았을걸,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출간 후 선배 세대 사회학자 한 분이 소셜 미디어에 독후감을 올렸다. “논문 쓰기에서 해방된 사회학자만이 쓸 수 있는 글들”이라는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논리적 규칙과 엄정한 실증적 근거를 요구하는 논문식 글쓰기의 기준에서 보면, 시대와 나라를 넘나들고, 인물들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내 책의 글쓰기는 낙제점일 수밖에 없다.


반면 그런 자유로운 글쓰기 덕분에 연결될 것 같지 않던 사건들, 사람들이 연결되기도 하고, 생각해 보지 못했던 주제를 고민할 수도 있게 된다.


책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직접 1차 자료를 찾아 쓴 부분도 있지만,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은 연구자들의 학술서와 논문에 빚졌다. 후주에 참고 문헌을 밝혔지만 다 망라하지 못했다. 아쉽다. 필자와 심사자 말고 아무도 읽지 않는다며 논문식 글쓰기의 효용에 대한 폄훼가 적지 않다. 업적을 위한 업적일 뿐인, 공장 생산품 같은 논문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각광받지 못하는 이 지루하고 끈질긴 학술적 글쓰기의 두터운 지반이 없다면, 나같은 사람의 자유로운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대학과 당국이 사실상 등재 논문만 업적으로 인정하는 편협함을 비판하는 것일 뿐이다.


대중서를 출판하면 독자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북토크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번 책은 꽤 여러 곳에서 북토크를 하게 됐다. 동네 서점, 도서관, 책읽기 모임, 시민단체 등이다. 북토크에 찾아오는 청중이야말로 적극적인 독서 대중이다. 도서관 행사가 아니면 대부분 참가비도 내야 하는데 굳이 저자를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독자를 만나는 일은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된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라 설레고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니 긴장된다. 어느 작은 도서관에서 열린 북토크에서는 팔순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책을 다 읽었다며 열성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깊이 읽고서 던지는 질문이라 내심 놀랐다. 몇 분 넘겨 끝냈더니 안 보이길래 사서에게 물어보았다. 도서관 대출 실적이 300권이 넘는 열성 독자인데, 집이 멀어 차 시간 맞춰 나가며 아쉬워하셨다고. 


부산의 한 서점에서 만난 중년 남성은 소개 때 생애 첫 북토크 참가라고 밝히는 바람에 모두 박수를 쳤다. 포털 사이트에서 내 책을 검색하는데 그의 블로그가 검색됐다. “퇴근하자마자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서점으로 향했다고 한다. 생애 첫 북토크에서 “살아오면서 속해보지 못한 낯섦, 밍숭함과 고소함과 미지근함과 따뜻함”을 느꼈다고 적혀 있었다. 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가 고소함과 따듯함을 더 기억해주면 좋겠다.


북토크를 하다 보면 학교 시절의 강의가 생각나곤 한다. 나는 강의 시간을 사랑했다. 학교에 끝내 적응하지 못했지만, 수업만큼은 좋았다. 수업을 하다 보면 슬프고 노엽던 마음이 어느덧 사라져 있었다. 가끔 학생들 탓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지만, 엉뚱하고 빛나는 질문을 던지는 학생 덕에 신이 나기도 했다.


대신 평가는 늘 고역이었다. 한 번도 같은 문제를 내지 않았고, 보고서 주제도 인터넷 속 자료 복사하기로는 절대 쓸 수 없을 자기만의 소설 쓰기 같은 걸로 매번 바꿔서 내느라 힘이 들었다. 진지함이 묻어나는 학생들의 답안과 레포트에 학점을 매기기가 쉽지 않았다. 


북토크의 청중과 대학 수업 시간의 학생은 지식을 찾아가는 두 모습이다. 전자는 곧잘 배움을 향한 주체적 모습으로 이상화되고, 후자는 취업용 공부라는 낙인이 찍히곤 한다.


하지만 학사 관리 엄정화와 취업의 압박감조차 배움의 기쁨을 완전히 앗아갈 수는 없지 않을까? 대학에서 읽고 쓰면서 배움의 기쁨을 몇 번이라도 경험하게 된다면, 그 젊은이는 훗날 북토크의 열성적인 독자가 되지 않을까? 문득 이렇게 팔순의 할머니와 중년 남성의 얼굴 속에서, 그 시절 학교에서 만났던 젊은이들의 빛나는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다.


조형근 사회학자 

교수신문 2024년 12월 3일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28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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