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 법률의 눈으로 보는 중국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4-12-04 11:36 조회437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헌법 없이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 스탈린 조언 따라 1954년에야 헌법 선포 덩샤오핑 개방선언 뒤 시장경제 도입하며 오늘날의 헌법 탄생
중국의 법률은 정치와 밀접한 관계 같은 사안이라도 환경 따라 결론 달라
연재 시작하는 ‘김명호의 중국 파일’ 흥미로운 우화 될 것
“헌법이란 것을 만든 적은 있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한다. 일이 터질 때마다 헌법인지 뭔지 뒤적거린들 해답이 나올 리 없다. 우리 몇 명이 모여서 결정하면 그만이다.”
1970년쯤, 마오쩌둥이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에게 한 말이다.
오랜 내전 끝에 장제스를 타이완 섬으로 내쫓고, 1949년 10월 1일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 창건을 선포했다. 의용군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 한가운데 오성홍기가 휘날렸고, 인민해방군은 열병했다. 저녁에는 노동자, 농민, 학생 들이 붉은 깃발을 흔들며 환호했다. 중국 대륙에 새 역사가 펼쳐지는 개국대전의 현장에, 모든 것이 있었으나 헌법은 없었다. 장제스의 국민당은 정부를 구성하기도 전에 헌법부터 반포했지만, 중공은 국가를 세우면서 헌법을 생략했다.
마오쩌둥은 헌법은 사회주의 혁명 단계에 들어설 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건국 당시에는 그 이전 단계인 신민주주의 혁명이 목표였다. 식민지와 봉건사회에서 벗어나 독립한 민주주의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 신민주주의였다. 항일전쟁도 그 일환이었지만, 신민주주의 혁명의 주체는 무산계급인 농민이라야 한다는 조건이 중요했다. 신민주주의가 완성되면, 그것을 발전시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건설의 최고 단계에 도달한다. 민주주의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한 준비단계이고, 사회주의 혁명은 민주주의 혁명의 필연적 추세다. 논리는 명확했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는 정부조직법을 먼저 만들고, 수도 명칭을 베이핑에서 베이징으로 되돌린 다음, 원칙을 정리한 공동강령을 채택했다. 1단계에서는 임시헌법에 해당하는 강령으로 충분하고, 헌법은 필요하면 2단계에 들어서서 제정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1952년 마오쩌둥의 지시로 류사오치가 소련을 방문했을 때, 스탈린이 조언했다. “서방 세력이 신중국을 반대할 빌미를 줄 수 있으니, 빨리 헌법을 제정하라.”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헌법,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 중화민국 헌법까지 참조하여 초안 작업을 서둘렀다. 1954년 9월에야 헌법을 선포했다. 마오쩌둥 사망 전후 부분적 개헌이 있었지만, 진짜 혁명적 사건은 1978년 덩샤오핑의 개방 선언이었다. 오늘날 중국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신헌법은 1982년 작품이다.
대학입시를 부활하고 시장 경제를 도입한 이후 중국은 상전벽해 그 자체였다. 가전 제품을 만들어 매출 세계 1위에 오른 하이얼은 일약 최고 기업이 되었는데, 1984년 장루이민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실시한 첫 번째 사내 규칙이 공장 내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의 대소변 금지였다.
우리를 위아래로 감싸고 있는 두 나라는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비극적 운명의 씨앗이었다. 남북 분단만 하더라도, 일본이 식민지 침략으로 원인을 제공했다면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으로 현실화했다. 두 국가 모두 원수에서 결코 멀리할 수 없는 이웃이 되어 함께 미래를 엿본다.
크기만 하고 실체를 알 수 없는 중국을 그나마 흥미롭게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글이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였다. 근거 있는 야사로 중국 근대사의 짙은 풍경들을 그려냈다. 두어 달 전 17년 만의 10권 완간을 기념하는 간담회에서, 앞으로 “중국 법조인들을 주인공으로 중국의 법과 재판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밝혔다. 그 첫 회가 바로 오늘 본보에 실린 <김명호의 중국 파일>이다.
중국은 재판을 정치와 떼내어 생각할 수 없다는 법률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일한 사안도 결론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헌법이건 사내 규칙이건, 중국의 법과 재판 이야기는 흥미로운 21세기의 우화가 될 것이다. 법률신문이 독자들께 드리는 창간 74주년 기념 선물의 하나다.
차병직 변호사
법률신문 2024년 11월 30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