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 카터의 솔라 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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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2-05 13:28 조회9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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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100세를 일기로 서거한 직후 미국의 몇몇 언론 매체는 그가 설치했던 태양광 패널의 행방을 알려주는 기사로 추모의 뜻을 보탰다.
미국의 39대 대통령으로 1977년에 임기를 시작한 카터는 중동발 에너지 위기와 환경 파괴 문제를 진지하게 대했다. 취임 직후 집무실의 난방기 온도를 내리면서 국민에게 호소한 에너지 절약 연설과 1979년 백악관 서쪽 지붕에 32장의 솔라 패널을 올린 행사는 그의 의지를 잘 보여준 역사적 장면들로 꼽힌다. 이 솔라 패널은 정확히 말하자면 전기가 아니라 온수를 생산하는 장치였는데, 당시로서는 제법 첨단 기술에 속했다. 카터는 개막 행사에서 해외 석유에 대한 의존을 벗어날 필요성을 알리고자 했다. 아무도 태양 빛이 내리쬐는 걸 금지하거나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을 백악관이 직접 실험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 솔라 패널은 성능이 나쁘지 않았지만, 카터가 재선에 실패하고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면서 7년 만에 철거되고 만다. 지붕 보수공사를 하면서 그저 쓸데없는 물건으로 간주되어 치워졌던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 교외의 창고에서 수년간 버려져 있던 이 패널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그중 다수는 1991년에 메인주의 유니티칼리지로 옮겨져 식당 지붕에서 2010년까지 온수를 생산했다. 애초 백악관에서는 2만8000달러를 들여 설치되었지만 칼리지가 지불한 인수 비용은 500달러였다. 다른 한두 장은 2007년에 태양에너지를 다룬 다큐 제작 과정에서 애틀랜타의 카터 도서관으로 옮겨졌고, 또 한 장은 2009년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중국 더저우의 태양과학기술원으로 간 것도 있고 버몬트주의 청정에너지 제조업체에서 전시되고 있는 것도 있다.
카터는 패널뿐 아니라 에너지 정책에서 여러 유산을 남겼다. 재생에너지 개발에 초기 동력을 제공했고 취임 즉시 에너지부(DOE)를 설립해 오늘날 시행 중인 많은 에너지 제도와 지속 가능한 에너지 기술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최초의 국가 수준 종합 에너지 계획을 수립했는데 2000년까지 미국 에너지 사용량의 2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한다는 목표를 포함했다. 퇴임하고 나서는 조지아주 자신의 농장에 3852장의 태양광 패널이 설치될 수 있도록 해서 플레인스 마을의 전력 50% 이상을 공급하게 했다. 알래스카를 화석에너지 개발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조치를 취한 것도 그였다.
카터는 백악관의 태양열 장치가 한 세대가 지나고 나면 그저 호기심의 대상이 되거나, 박물관의 전시품이 되거나, ‘가지 않은 길’의 한 사례가 될 수도 있고, 또는 미국인들이 시작한 가장 위대하고 흥미로운 모험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고 연설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되었다. 카터의 뒤를 이은 보수파 정부들에서 재생에너지 예산을 삭감하고 그의 정책을 약화시키곤 했지만, 지금 평가하자면 그의 행보는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 시대에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는 의미가 가장 클 것이다. 카터는 지구와 인간의 경제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 이 때문에 무한한 생산과 소비가 아니라 조절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국가와 사회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행동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지미 카터의 안식을 기원한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경향신문 2025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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